나홀로 ‘일과 가정’ 성공 힘들어…주변과 ‘품앗이’하세요
톰 티어리(Tom Tierney)는 베인앤드컴퍼니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후 비영리 단체를 위한 컨설팅회사인 브리지스팬(Bridgespan)을 창업한 컨설팅업계의 거물이다. 세계적인 컨설팅펌의 대표에다 창업까지 했으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빴다. 그러나 그는 직장과 가정에 모두 충실했다. 그는 직장 생활에 방해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족을 위해 하나의 약속만을 꼭 지켰다. 주말에는 출근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고, 이를 고집스럽게 고수했다. 두 자녀와 공놀이를 함께하고 느긋하게 식탁에 앉아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다.
톰 티어리가 이렇게 일과 가정을 모두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주말엔 가족과의 시간에 몰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임직원보다 뛰어난 성과를 올렸기 때문이다. 그의 컨설팅은 클라이언트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했으며 베인앤드컴퍼니가 1980년대 휘청거릴 때 그는 가장 강력한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그리고 그가 창업한 브리지스팬은 빌게이츠가 만든 빌&멀린다 게이츠재단 같은 쟁쟁한 클라이언트를 자문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2012년 한국의 한 대선후보의 슬로건인 ‘저녁이 있는 삶’은 우리 사회에 잔잔한 울림을 남겼다. 이는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어려우면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공감하는 국민이 많았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일에만 매달리는 워커홀릭 방식의 노동을 하다가는 가정생활이 피폐해지는 건 물론이고 직장에서도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도 커지고 있다. 최근 경영학의 화두가 ‘일과 삶의 균형’이란 개인적인 영역으로 옮겨간 것도 임직원이 일과 삶에서 균형을 이룬 생활이 장기적으로 기업 전체에도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있어서다.
그러나 이는 말처럼 쉽지 않다. 과중한 업무 부담, 직장상사로서부터의 눈치, 성과와는 상관없이 일단 자리를 지켜야 할 거란 자기검열까지 우리를 가정으로부터 격리시키고 직장에 묶어두게 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다. 성취동기가 강한 사람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일단 일과 삶 두 가지는 한쪽을 희생시켜야 한쪽을 얻을 수 있다는 제로섬 게임이란 의식이 만연해 있다.
그렇지만 양쪽을 모두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 스튜어트 프리드먼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매경MBA팀과 최근 인터뷰에서 양쪽의 경계선을 현명하게 지키면서 일과 가정을 모두 성공적으로 이끌어간 여러 사람의 예를 들며 해법을 제시한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일에 침범받지 않는 가정의 영역을 지키려 했고 자신이 가능한 한 모든 인적 네트워크, 금전적 자원을 현명하게 동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중시하는 가치를 지키려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시켰고 서로 돕는 인맥도 구축했다. 그는 “일과 삶의 균형이라고 하면 둘이 상충되는 영역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두 가지를 모두 달성할 수 있다. 오히려 행복한 삶을 위해선 직장, 가정, 자아, 공동체를 위한 시간이 모두 골고루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음은 프리드먼 교수와 일문일답.
―모두가 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균형 잡힌 생활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가정이나 자기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상사나 동료와 얘기해 업무시간을 조정하기를 두려워한다. 합리적으로 조정해 시간을 낼 여지가 충분히 있는 상황에서도 일은 협상 불가한 영역이라 생각한다.
반면 그렇게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관계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결정은 계속 미룬다. 직장에선 시간을 내서 마감까지 일을 다 끝내고 가라는 요구를 심심찮게 듣지만 어린 아이들이라면 부모들에게 마감시간을 요구하고 부모에 대한 성과 평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과 삶을 동시에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단 직장에 최대한 많은 시간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성과가 난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오히려 일에 투입하는 시간을 조금 줄이고 이를 보충하기 위한 창의적인 방법을 찾는 과정을 통해 성과가 올라갈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마련된 시간을 가족이나 자기 자신을 위해 쓸 때 번아웃(Burn-out)을 막고 일을 더 잘할 수 있다. 한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낸 사람은 직장생활에 투입할 시간을 떼어서 가족들과의 시간에 할애한 사람들이었다. 그렇기 위해 그들은 네트워크를 만들고 주변 사람들의 동의와 도움을 구하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남들에게도 가족과의 시간을 누릴 수 있게 배려한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일과 삶 두 가지가 상충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삶은 직장에서의 성취, 가정에서의 평화,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자기만의 시간, 공동체 활동 이 네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가장 행복하다.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인 미셸 오바마는 워킹맘이지만 새벽 4시반에 일어나 홀로 운동을 해 자신을 위한 시간을 즐겼다. 그리고 지역 사회에서의 봉사를 통해 자기 커리어에 대한 방향도 정리할 수 있었다.
―직장생활 하나만으로도 벅찬데 다른 세 가지를 더 추구하다간 지치지 않을까.
▶직장에서의 성취와 가정에서의 평화,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자기만의 시간, 공동체 활동 등 네 가지 영역을 모두 추구하는 것이 더 많은 과제를 떠안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러 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시각을 얻고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 물론 네 가지 모두에 똑같은 가중치를 두면서 동시에 잘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따르면 된다. 전체가 100점이라면 직장, 가정, 개인생활, 공동체생활을 중요도에 따라 각각 몇 점으로 배분할지 생각하고 지금 현재 자신이 쓰고 있는 시간 배분과 비교해 봐라.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을 짤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나 가족을 위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모두가 바쁜 직장생활에서 나만 그런 생활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이기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동료들에게 계속 지원을 요청하고 남들도 그런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베인앤드컴퍼니 전 최고경영자(CEO)였던 톰 티어리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다른 부하직원의 근무지를 바꿔주기도 했다. 사실 도움을 주고받는 것은 가정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직장생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인 셰릴 샌드버그는 페이스북에서 처음 일하기 시작한 날부터 직원들에게 항상 도움을 청했다. 자기는 비공학도라서 기술적인 부분은 모르니 많이 도와 달라고 말이다. 이렇게 자신의 약한 점을 스스로 알리며 도움을 구하고 상대가 어려운 상황에선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면 가정생활을 위한 근무시간 조정도 동료에게 동의를 구하기가 더 쉬워진다.
―그렇지만 직장 동료에게 계속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사실 가정생활이 매끄럽게 유지되려면 직장 동료만큼 가족들 지원이 중요하다. 그러니 가족들에게 적극적인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저녁식사는 가족과 함께하는 걸로 유명하다. 이건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의 권유로 시작됐다. 너무 바쁜 부모 밑에서 아이들이 느낄 외로움을 걱정한 미셸 오바마는 백악관에 들어가기 전부터 일주일 중 5일은 저녁 6시 30분에 온 가족이 모여 저녁을 같이 먹어야 한다는 룰을 정했다. 그리고 남편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후 백악관에 들어가야 할 때도 자신은 아이들 학기가 끝날 때까지 시카고에 남겠다고 동의를 받았다. 가정생활을 잘 꾸려나가기 위해 남편 지지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낸 미셸 오바마의 현명한 선택이었다.
―직장에서는 사람들과 관계 맺기가 중요하다고 한다. 네트워킹이 가정생활이나 공동체 활동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COO는 가정과 공동체를 위해 네트워킹을 잘 활용한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는 여성 직장인으로서 자신의 경험과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담은 ‘린인(LEAN IN)’이란 책을 출판하고 ‘린인 무브먼트’란 여성 직장인들의 권익 향상을 위한 단체를 조직하기도 했다. ‘린인 무브먼트’를 통해서 여성이 직장에서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게 만든다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고 있다. 공동체에서 성취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샌드버그가 얻은 것은 많다. 직장 생활을 할 때도 인맥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은 물론 가정과 직장을 병행하기 위해선 많은 지원이 필요함을 주변 사람에게 설득할 수 있었다.
―직장과 가정, 공동체를 모두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사람들은 이외 어떤 비결을 가지고 있는가.
▶자기 스토리를 다른 사람에게 끊임없이 전달했다는 점이 특이점이다. 그들은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얘기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와 5년 후, 10년 후를 계속 점검할 수 있었다. 자신이 중요시하는 가치를 남들이 알게 되니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지원을 얻기도 쉬워졌다.
책과 강연을 통해 자신의 경험담을 솔직하게 알리고 사회적 영향력을 키운 샌드버그뿐만 아니라 톰 티어리도 계속 자기 일과 가정에 관한 이야기를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해 사람들과 소통했다.
꼭 유명인만이 자기의 이야기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하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다. SNS에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자기에게 직장이나 가정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알려라. 그리고 직장과 가정 그리고 개인생활 간 갈등을 알리고 조언을 구하라. 그리고 피드백을 받으면서 자기 생활을 돌아보고 개선할 수 있는 여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직장 때문에 아예 집에 못 들어가거나 가족들과 멀리 사는 예가 많다. 이런 경우라면 아예 일과 삶의 균형을 말하기도 어려운 것 아닌가.
▶부모 역할은 평생 동안 계속된다. 몇 달 또는 몇 년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부모로서 역할에 완전히 실패했다고 볼 수는 없다. 같이 살지 못하고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감정적으로도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톰 티어니는 베인앤드컴퍼니 일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살 때 전화나 메일을 통해 늘 아이들을 살폈다.
그리고 자녀와 붙어 있어도 감정적으로 떨어져 있는 경우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얼마나 많은 부모가 스마트폰을 쳐다보면서 자녀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그리고 집에 와서도 업무 관련 전화를 받느라 가족들에게 신경을 안 쓴다면 그들과 함께하는 의미가 없다.
▶ 한국에선 ‘가정’에 힘주기 어려운데…
"성과 보여주고 ‘칼퇴근’해라"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일과 삶의 균형에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워커홀릭’인 사람들이 성실한 사람이라고 좋은 평가를 받는 상황에서 가정생활도 중요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문화와 인식이 변화하는 게 어려운 건 많다. 그러나 이 변화를 앞당길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자기가 먼저 실천해 인식의 벽을 깨트리는 것이다.
먼저 직장에서 퇴근을 조금씩 일찍 하면서도 여전히 과거와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음을 보이면 된다. 이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직장 상사에게 에너지를 재충전하기 위해선 자기 자신과 가족들을 위한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솔직히 말해야 한다. 부담이 되는 실험이지만 해볼 만하다. 만일 성공한다면 자기 이야기를 동료들에게 알려줘서 그들도 용기를 얻어 가족을 위한 시간을 마련하게 해라.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초과 근무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삶은 살기 어려운가.
▶돈이 중요한 건 맞지만 돈이 모든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가족은 먹고살 돈이 있어야 하지만 교육이나 다른 인생의 즐거움을 위해서도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돈을 벌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투여하면 인생의 즐거움이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이해하고 여기에 따라서 사는 것이다. 경제적으론 일이 필요하지만 만일 자녀들이 너무나도 중요하다면 자신의 배우자나 부모 또는 친척들에게 자녀 양육을 부탁할 수 있을 것이다.
■ He is…
스튜어트 프리드먼(Stewart Friedman)교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리더십을 강의하고 있으며 일과 삶의 균형 프로젝트를 맡고 있다. 경영전문 사이트 ‘싱커스 50(thinkers 50)’가 선정하는 20013년 경영 사상가 50인 중 27위에 랭크됐다. 지난해 출간한 ‘원하는 삶을 리드하기(Leading the life you want)’는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방법을 제시한 책이다. 재작년 출간한 ‘Baby Bust’에서 만연한 저출산 추세로 인해 기업들이 직면할 위기를 경고하기도 했다.
[김제림 기자]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5&no=98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