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평가 순위 안 매기자, 업무 몰입도 높아지더라부스터! / 김종수 지음 / 클라우드나인 펴냄
기사입력2014.05.30
1959년 설립돼 일본 제조업의 대표 기업으로 우뚝 선 교세라주식회사. 정보기기, 태양전지, 세라믹 등 광범위하게 확장해 성공한 비결 중 하나로 인간 경영이 꼽힌다. 교세라그룹의 창업자 이나모리 가즈오는 직원들이 더 나은 직장을 찾아 떠나고 일에 몰입하지 못하는 것을 보며 고민하다가 결심한다. 직원들의 정신적 행복을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겠다고. 이후 교세라는 직원들의 정신적 행복을 충족시키는 여러 가지 제도를 내놓았고, 화목한 기업 문화는 외부의 시련에서 교세라를 지켜주는 방패막이 됐다.
경영의 기본은 사람이다. 그러나 많은 경영자들이 아주 간단한, 기초적인 진리를 잊고 산다. 여러 회사에서 조직 관리를 맡아온 저자는 경영의 기본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한다. 저자는 2005년부터 2013년까지 동화홀딩스에서 일하면서 6년3개월 만에 사장으로 승진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전쟁터 같은 기업 현장에서 쓸 수 있는 실전 매뉴얼을 이 책에서 공개한다. 직원들 안에 용암처럼 들끓고 있는 열정을 길어올리는 `부스터 전략`의 실체가 담겨 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인간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기존 경영학은 사람을 게으른 존재라고 본다. 그래서 당근과 채찍으로 관리하려고 한다.
미국의 산업심리학자 에이브러햄 H 매슬로는 "모든 인간 존재는 아름다움, 진실, 정의 등 고차원적인 가치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가 있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승진을 뛰어넘는 고차원적인 가치를 바란다. 바로 인정이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업무 실적에 따라 1등부터 꼴찌까지 순위를 매겨 평가하던 기존의 평가제도를 폐지한 이유다. 경쟁이 없어진 자리에는 인정이 들어선다. 조직에서 인정은 그 어떤 인센티브보다도 강력한 보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통제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통제하려 들기 전에 가치 있는 일을 쥐여주고 주도적으로 할 수 있도록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척박한 현실에 비해 저자의 주장이 이상적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책에 가득 담긴 생생한 사례는 불신을 거둬낸다. 사고의 틀에 갇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경영자에게 쥐여주고 싶은 책이다.
화려함과 절제. 둘은 분명 상충되는 가치지만 역설적이게도 조화가 가능하다. 화려하되 항상 절제를 잊지 않는 스타일은 프랑스 패션 브랜드 `지방시(Givenchy)`의 상징과도 같다. 이 브랜드를 창시한 디자이너 위베르 드 지방시도 "창조에 있어 대담함은 통제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오래전 현업에서 물러났지만 현재 지방시는 리카르도 티시라는 걸출한 디자이너에 의해 전 세계 명사들에게 사랑받는 패션 아이템으로 통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지방시의 경영 철학 역시 창시자 위베르 드 지방시의 이념과 맞닿아 있지는 않을까.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는 과도함이 아니라 복수의 경영가치에 `균형`을 주는 것 말이다.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매일경제신문은 서배스천 술(Sebastian Suhl) 지방시 최고경영자(CEO)를 단독으로 만났다. 그는 지난달 초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지방시 플래그십 스토어(표준모델을 중심으로 관련 라인 상품을 진열한 매장) 그랜드 오픈을 기념해 한국을 찾았다. 흡사 만화경을 연상케 하는 지방시 매장은 지난해 문을 열긴 했지만 1년 만에 대대적인 기념식을 했다.
-지방시에 한국 시장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한국 경제 규모가 크게 성장했을 뿐 아니라 이 나라에 지방시 같은 명품을 선호하는 소비자도 늘어났다. 지방시에 한국은 대단히 중요한 시장이다. 지난해 문을 열어 최근 파사드(외벽) 디자인을 완성한 청담동 플래그십 스토어가 세계에서 유일한 단독 건물 형태의 지방시 매장이라는 점이 그 중요성을 단적으로 잘 드러낸다. 단독 건물 형태의 매장은 한국을 시초로 올해 안에 일본 도쿄와 미국 뉴욕ㆍ라스베이거스, 중국 등에 차례로 선보일 계획이다. 무엇보다 한국 소비자들은 취향이 매우 다양하다. 기성복뿐 아니라 신발과 가방 등에 전방위적으로 관심 있는 이들이 많다. 지방시도 한국 매장을 통해 토털 패션에 대한 모든 경험을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고 싶다.
-지난해 전 세계 럭셔리 시장이 침체를 겪었지만 지방시만 매출이 증가한 이유는.
▶럭셔리 시장의 침체는 사실이지만 너무 비관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않다. 다만 지방시는 특별히 이어져오는 유산(heritage)이 있는 브랜드고 늘 그걸 승계하려고 노력한다. 그 유산은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오트 쿠튀르 하우스(고급 여성의상점)`가 있다는 점이다. 심미안이 높고 재능이 넘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 리카르도 티시가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것도 중요한 성공 요인이다. 제조에서부터 유통ㆍ판매에 이르는 모든 사업 부문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점 역시 높이 사고 싶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마련된 지방시 플래그십 스토어. 최근 개장 1주년을 맞은 이곳은 전 세계 지방시 매장 가운데 유일한 단독 건물 형태로 들어서 있다. [사진 제공=지방시]
-지방시 브랜드 DNA는 뭔가.
▶1950년대 처음 출발한 지방시의 오트 쿠튀르 하우스는 역사가 깊다. 모던함과 시크함, 우아함과 대중성을 대조시키면서도 서로 잘 조화시킨다는 지방시의 브랜드 가치는 그러한 역사를 바탕으로 형성돼 있다.
-여성복으로 유명한 지방시가 최근에 남성복 사업을 확대하는 이유는.
▶여성복만 디자인하던 디자이너 리카르도 티시가 2008년부터 남성복도 함께 디자인하면서 조금씩 변화가 시작됐다. 여기서 지방시의 성공 요인을 밝히자면 바로 `균형(balance)`이다. 이는 지방시 비즈니스의 핵심이다. 일단 지방시는 전 세계 많은 시장에 지리적으로 균형 있게 진출하며 제품군 역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발전시키고 있다. 고객들에게 다양한 토털 컬렉션 제품군을 선보이며 사랑받고 있다. 남성 제품에 있는 무늬가 여성복에도 들어가고 여성 제품에 있는 디자인 요소가 남성 제품에도 채택된다. 이처럼 대조되면서도 균형적으로 이뤄지는 비즈니스가 지방시의 강점이다. 지방시 남성 비즈니스는 특히 지난 5~6년간 크게 성장하며 자사의 주요 전략이 됐다. 청담동 플래그십 스토어가 좋은 예다. 남성 제품군이 매장 한 층을 모두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균형만 강조하니 지방시 하면 딱 떠오르는 대표 제품이 적어 보이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지방시는 제품군을 확장하는 게 아니라 각 카테고리를 좀 더 깊이 있게 구성해 간다. 지방시에도 핸드백과 슈즈, 목걸이 등 아이코닉(iconic) 제품들이 있지만 스테디셀러와 신제품을 항상 비슷한 비율로 함께 선보인다. 신제품을 소비자들에게 내밀 때 그게 곧 스테디셀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늘 실현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걸 선보이며 도전한다. 이건 지방시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다.
-럭셔리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뭔가.
▶이 사업에는 복잡한 요소가 정말 많다. 일단 카테고리가 화장품, 주얼리, 패션의류 등으로 다양한 데다 카테고리별로 제품군도 엄청나게 많다. 지방시 같은 패션 하우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성과 비즈니스 사이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다. 브랜드를 경영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경영 자체에만 몰두하면 창의성에 대한 시야가 좁아진다. 반대로 창의성만 생각하다 보면 재무나 유통ㆍ판매 전반에 필요한 자질도 부족하게 된다. 이 둘을 조화시키는 게 힘들고도 복잡하지만 그만큼 패션사업이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패션기업이 창의적 시야를 넓히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창의성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는 타고난 재능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재능을 끄집어내고 풀어내는 능력이다. 창의적인 재능이 사업으로 이어지려면 창의적인 사람 주변에 이들을 후원하고 때로는 이끌어갈 지원팀원이 꼭 필요하다. 패션은 예술이 아니라 산업이기 때문에 예술을 어떻게 판매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럭셔리 시장에서 이 둘의 조화를 잘 이루면서 많은 브랜드를 성공시키는 회사는 많지 않다. 지방시가 속한 루이비통모에에네시(LVMH)그룹은 수많은 브랜드를 다양한 방식으로 성공시키고 있는 유일한 회사라고 생각한다.
-SPA(제조ㆍ유통 일괄 의류) 업체가 럭셔리 브랜드와 협업(컬래버레이션)하고 럭셔리를 패러디한 패션이 인기를 끄는 등 럭셔리 산업 경계가 점차 모호해지고 있는데.
▶흥미로운 컬래버레이션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SPA 브랜드가 럭셔리 브랜드와 협업해도 그들이 럭셔리 시장에 진입한 건 아니다.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이 럭셔리 브랜드 디자이너의 창조적인 재능을 빌려 다양한 가격대 제품을 출시하려는 시도는 좋다고 본다.
-지방시는 전 세계 스타들에게 인기가 많기로 유명하다.
▶지방시는 어떤 경우라도 협찬을 목적으로 스타에게 돈을 지불하지는 않는다. 이런 브랜드는 사실 몇 안 된다. 스타들이 지방시를 좋아하기 때문에 우리 의상이나 액세서리를 걸치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선택 기준이 좀 까다롭다. 슈퍼스타라고 해서 아무에게나 지방시 옷을 입히지 않는다. 지방시 이미지를 잘 드러낼 수 있는 스타를 골라 그 특성에 가장 어울리는 아이템을 선택한다. 유명 스타만 찾기보다는 오히려 갓 데뷔한 신인에게 지방시 옷을 입힌 후 그들이 슈퍼스타가 돼서도 계속 함께 작업하는 방식을 더 선호한다.
-패션기업 CEO에게 필요한 리더십은.
▶직원들의 열정과 창의성을 자극하고 키워나가는 것도 좋지만 회사 시스템을 잘 구축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유통ㆍ판매 전략을 짜고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패션기업에는 능력 있는 CEO나 디자이너보다는 손발이 서로 잘 맞는 사내 팀원들이 얼마나 많으냐가 더 중요하다. 작은 그룹이어도 함께 일하면서 쌓아가는 단결력이 꼭 필요하다. 이걸 CEO는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패션 CEO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회사에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판매 실적이 좋지 않은 제품은 당장 판매를 중단해야 하는가, 아니면 시장 반응을 더 지켜봐야 하는가.
▶시장 반응에 앞서 제품 기획 단계부터 회사가 성공을 확신한 제품은 당연히 시장 반응을 더 기다려야 한다. 그러지 않은 채 단기적으로 실적이 낮은 제품을 회수하기 바쁘다면 모든 패션업체는 잘나가는 베스트셀러 상품만 갖게 될 거 아닌가. 그런 기업은 결국 고객을 위한 제품을 내놓지 못하게 된다. 패션기업에는 넓은 시야가 꼭 필요하다.
-럭셔리 산업에서 많이 파는 것과 비싸게 파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지방시는 분명 높은 가격대 브랜드다. 우리는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팔기 위해 지나치게 저렴한 가격을 책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더 많은 사람이 구매할 수 있도록 진입가격(entry price)대 상품도 함께 갖고 간다. 사람들은 비싼 악어가죽 가방이나 모피 코트를 원하지만 그보다 저렴한 다른 몇몇 상품도 함께 갖고 싶어 한다. 중요한 건 각 제품에 맞는 품질과 패션 요소를 갖추는 일이다. 다만 여기서 모든 제품은 반드시 지방시다워야 한다. 우리는 결코 대중적인 브랜드가 아니기 때문이다.
▶ Who he is…
미국 뉴욕 태생인 서배스천 술 지방시 최고경영자(CEOㆍ45)는 미국과 스페인에서 각각 정치경제학과 경영학을 전공한 후 기업 전략 컨설턴트로 활약하다가 1997년부터 패션 업계에 몸담고 있는 젊은 기업인이다.2001년 프라다에 입사해 프랑스 지역 매니저와 아시아 지역 대표 등을 거치며 11년간 프라다의 외국 사업 확대를 위한 핵심 인재로 활동해 왔다. 특히 2009년 서울 경희궁 안에 각종 전시회와 건축물을 선보이는 `프라다 트랜스포머` 행사를 기획해 화제를 모았다. 지방시 CEO로는 2012년에 임명됐다.
리더십 대가 키스 머니건 노스웨스턴대 교수 권한은 완전히 직원에 주고 간섭말고 끝까지 믿어줘라 리더는 의사결정 빨리하고 조직 잘 굴러가도록 지원만 때론 푸시하고 때론 다독이고…리더는 `거친 사랑`해야
기사입력2014.05.30
# 1중견기업 최고경영자(CEO) A씨에게 사실상 `휴가`란 없다. 휴가지에서도 수시로 이메일을 체크하고, 전화를 하며, 피드백을 직원들에게 보내기 때문이다. 심지어 해외여행을 가서도 당장 급하지 않은 사안을 처리하기 위해 전화 회의를 소집하기도 했다. A씨는 회사에서 가장 늦게 퇴근하는 사람 중 하나지만, 가장 일찍 출근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직원들이 자신처럼 회사에 헌신하길 바라지만, 그렇지 않음에 때론 절망하기도 한다. 그는 `내가 없으면 안돼`라고 생각하며 직원들을 믿지 못하고 세세한 일까지 일일이 체크한다.
# 2클라우드 컴퓨팅과 네트워크 보안 분야 1인자인 시트릭스(Citrix)의 마크 템플턴 CEO는 가족문제를 이유로 작년 가을 `휴직`을 신청했다. CEO가 며칠 휴가를 가는 것도 아니고, 수개월간 휴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시트릭스 이사회와 직원들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템플턴 CEO가 없는 동안에도 시트릭스는 아무 문제없이 잘 굴러갔으며, 작년 4분기의 매출과 순익은 모두 성장세를 보였다.
`바쁨`에 중독된 CEO는 고달픈 삶을 살지만, 이를 훈장처럼 여긴다. "내가 없으면 회사는 제대로 굴러가지 않아"라고 되뇌며 스스로 혹사시킨다. 하루라도 자리를 비워야 하는 날에는 불안증세에 시달린다. 스스로를 슈퍼맨이라고 생각한다. 위기 상황에서 자신이 슈퍼맨처럼 등장해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그래서 직원들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한다. 굳이 자신이 간섭해 일일이 지시를 내린다.
이는 한국 등 아시아권 CEO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들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 직원들에게도 자신처럼 바쁘게 일할 것을 강요하다보니 회사 전체가 스트레스 덩어리다. 하지만 성과는 늘 기대에 못 미친다.
반면 시트릭스는 CEO 휴직이라는 `엄청난` 공백에도 불구하고, 그 기간에 전년보다 매출은 8.4%, 순이익은 무려 21.6%나 증가하는 성과를 냈다. 실제 미국 IT업계는 `워크-라이프 밸런스(Work-Life Balance)`를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게 여기며 그 누구보다 CEO들이 앞장서서 이를 실천하고 있다. 회사에는 통상적으로 큰 변화가 없으며, 문제가 일어나는 일도 없다.
리더십의 대가인 키스 머니건(Keith Murnighan) 노스웨스턴대 켈로그 경영대학원 교수는 결국 최고의 리더십은 `두 낫싱(Do Nothing)`, 즉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다소 극단적인 주장을 펼친다. 적게 일하면서, 더 나은 성과를 올리는 것이 그가 말하는 리더십의 핵심이다.
머니건 교수는 "리더는 리더의 일을 해야지 직원들의 일을 대신해선 안 된다. 그러나 대부분 리더들은 리더의 일보단 직원의 일을 대신하며 바쁘게 산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리더의 일`은 일상적 업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잘 `리드(Lead)`해 더 나은 성과를 거두게 하고, 최종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는 "많은 리더들이 일 중독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말라(Do Nothing)`는 주장에 펄쩍 뛰며 어려움을 느끼지만 실제로 이보다 더 효과적인 리더십은 없다"면서 "일도 잘 돌아가게 하고, 리더와 직원 모두 스트레스 받지 않고 행복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머니건 교수는 매경MBA팀과 인터뷰를 통해 `두 낫싱`이 최고 리더십인 이유와 이를 위한 전제조건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래는 그와 한 자세한 인터뷰 내용.
-`두 낫싱`, 즉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최고 리더십이라고 주장했는데.
▶수많은 리더, CEO와 수십 년간 일해보고, 관찰한 후 내린 내 나름의 결론이다. 이들 중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하루 24시간이 너무 짧다고 하소연하며 항상 바쁘게 움직였다. 하지만 이들과 이들의 조직을 들여다보면, 성공은 이 리더들이 얼마나 일을 많이 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이 리더들이 이끄는 팀과 팀원의 습관에 좌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리더들은 그렇게까지 바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리더가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작은 일에까지 간섭할 경우 능력 있는 팀원들이 일할 수 있는 여지를 잘라버려 큰 비효율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았다. 리더들은 오히려 느긋하게 앉아서 실제 일하는 업무량을 줄일 때 회사나 조직 전체의 효율성이 커졌다.
-그렇다면 리더가 해야 할 일은 뭔가.
▶`두 낫싱`의 리더가 할 일은 실제로 두 가지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째 의사결정을 빠르게 해주는 것, 둘째는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고, 이들이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즉, 조직이 잘 굴러가도록 윤활유를 발라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결국 리더 역할의 핵심은 직원들의 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 그리고 스스로를 `슈퍼맨`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능력을 맹신하지 말고 자신이 고용하고 뽑은 사람들을 믿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리더가 `두 낫싱`할 수 있는가.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닐 것 같다. 전제조건이 있다면.
▶먼저 직원들의 능력치를 파악해 회사에 최적화된 상태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 부분은 회사마다, 조직마다 다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를 행하는 방식이다. 훌륭한 리더라면 팀을 구성하고 배치할 때 `공개적으로` 해야 한다. `나는 A직원이 가지고 있는 능력치와 기술 때문에 감동을 받았고, 그렇기 때문에 이 직원을 B팀의 C직급으로 임명한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것이다. 아무 이유도 설명해주지 않은 채 리더가 마음속으로 판단해 결정을 내려버리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면 직원들은 당황한다. 패닉상태에 빠지고 낙담하기도 한다.
반면 `공개적으로 발탁`하면 `나는 리더가 이렇게까지 생각해주는 사람이구나`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동기부여를 받아 더 열심히 일하려고 하게 된다. 두번째, 특정 업무를 그 직원에게 맡겼다면, 끝까지 믿어주고 이 부분에 대한 권한은 전적으로 그 직원에게 줘라. 수시로 간섭하고 질책하면 효율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심지어 그 직원마저 잃게 된다.
-하지만 CEO가 개입해야 할 일이 없을 순 없다. 특히 원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땐 권한위임을 이유로 손놓고 있을 순 없지 않나.
▶리더에게 중요한 건 일상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팀원들이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이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돕고 조정하는 것이 리더의 일이다. 당장 성과가 안 날 수도 있고, 실적이 내리막일수도 있다. 그렇다고 성급하게 관여해서 닦달하는 것과 몇 가지 문제점들을 알려주고 다시 한번 `너를 믿는다`고 말하는 것 중 어떤 것이 효율적일까. 두 번째다. 리더도 인간이기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되뇌어라. 나 스스로 이 일에 대해 직접 개입을 하지 않고, 팀원들을 믿어서 생기는 여유시간에 사람들을 `이끄는(Lead)`일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지금 이 팀이 이 과제를 완벽하게 해내지 못할 수 있지만, 이들을 믿고 독려함으로써 이 과제와 연결된 더 큰 과제를 훌륭히 수행해내 장기적으론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CEO가 특정 분야 전문가라면 개입하지 않기가 더 어려울 것 같다.
▶나는 승진을 하고 높은 직급에 올라갈수록 리더 스스로의 전문기술은 감추라고 조언한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기술과 디자인 개발에 일일이 관여했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디자이너들을 리드해 창조적인 제품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매일 수많은 환자들을 진료해야 하는 의사가 병원장이 될 수 있는가. 학생들을 풀타임으로 가르쳐야 하는 교수가 대학의 총장이 될 수 있나. 아니다. 결국 위로 올라간다는 것, 리더가 된다는 것은 일상의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개입` 자체를 아예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에게 부여한 권한을 침해하지 말고, 이들의 기술과 능력치를 존중하라는 것이다. 일이 잘 굴러갈 수 있는 작은 `터치(Touch)`를 해주는 건 좋다. 리더가 반드시 해야 할일은 최종 결정, 그리고 이에 대한 책임지기다. 이 부분에 있어서 리더는 확실히 역할을 해야 한다.
-`리더가 해야 할 일` 중 직원과의 커뮤니케이션이 1순위로 꼽힌다. 하지만 직원들은 리더와의 대화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리더도 직원과의 대화를 형식적인 것으로 여기기 일쑤다. 모든 사내 커뮤니케이션 문제는 여기에서 출발하는데.
▶그래서 나는 리더, 특히 기업의 CEO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로 `복도 걸어다니기(Walk the Floor)`를 내준다. 애브러쇼프 함장의 방법이기도 하다. 사무실에 앉아있는 건 절대 금물이다. 팀원들이 일하는 공간을 어슬렁거리며 그들과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질문해야 한다. 처음엔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이런 방법을 써봐라. 먼저 가볍게 대화를 건네라. 이름을 부르며 "잘 지내요? 요즘 가족들은 어때요?"라고 친근하게 말을 건네는 것이다. 내가 리더이고 CEO이지만 팀원 하나하나에게 개인적 관심을 갖고 있으며, 인간적으로 대우하고 있다는 제스처다. 그다음은 "지금 하고 있는 OOO하는 일이 잘 되나요?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없을까요?"라고 물어라. 팀원들의 업무에 대해 내가 잘 알고 있지만, 그 업무에 `직접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업무를 잘 수행하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질문이 가져다주는 효과는 뭔가.
▶리더는 딱딱하고 형식적인 보고 없이도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직원들과 신뢰관계도 돈독해져 `두 낫싱`하기 쉬워진다. 팀원들은 리더와의 짧은 대화를 통해 리더에게 질문을 해도 괜찮고, 때로는 제안을 해도 괜찮다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결과적으로 리더와 팀원 간에 강한 `결속감`을 만들어내 일이 잘 돌아가게 한다.
-하지만 리더가 이렇게 매번 친근한 존재일 순 없다. 때로는 엄하고 냉정한 피드백도 줄 수 있어야 하는데.
▶리더는 기본적으로 팀원들을 `푸시(Push)`해서 더 많은 것을 이뤄내게 해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팀원들을 세심하게 챙기고 인간적으로 대우해줘야 하는 의무가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아주 다른 두 가지 접근을 동시해 해내야 진짜 리더다. 나는 이를 `거친 사랑(Tough Love)`의 실현으로 이루라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을 보살피고, 신경써주고 싶지 않은가. 그러기 위해선 관심을 갖고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물론 질문은 때론 공격적이고 거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사랑할 수 있지 않겠나. 때론 상대방이 말하지 않고 숨기는 것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 `두 섬싱 리더` 자신은 성공해도 조직은 뒤처져
아무것도 하지 않는 `두 낫싱 리더`가 성공한다는 주장에는 반론이 많다. 쉴틈없이 바쁘게 살며 성공한 리더가 많다는 식이다. 또 리더가 쉬면 아랫사람들이 일에 허덕이게 된다는 주장도 대표적인 반론이다. 이에 대한 머니건 교수의 재반론을 소개한다.
-두 낫싱이 서로가 윈윈하는 리더십이라고 했지만, 수많은 `바쁜` 리더들, 즉 `두 섬싱(Do Something) 리더`들도 성공을 거두고 역사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다.
▶바쁘게 사는 리더들은 자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하지만 그다음은 어떤가. 리더가 은퇴를 하고, 회사를 떠나야 할 때가 온다. 보통 본인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바쁜 리더는 후임자를 키우려 하지 않는다. 혼자 모든 것을 고민하기 때문에 현재에는 충실할 수 있으나, 미래까지 내다보지 못한다. 단기 성과를 낼 수 있지만 이런 리더는 다른 사람이 일할 기회를 잡아먹고, 팀원들이 능력을 키우는 것을 방해하기 일쑤다. 조직의 성공은 한정적이다. 리더 자신은 성공할 수 있으나, 그 조직은 `두 낫싱`하는 리더가 있는 조직보다 장기적으론 뒤처질 가능성이 크다.
-리더가 지나치게 `두 낫싱`하면 팀원들의 업무가 너무 많아지고, 그러면 스트레스 지수는 높아질 수 있지 않나.
▶그렇지 않다. 리더는 팀원들에게 그들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의 장을 활짝 열어주고, 그에 대한 책임은 리더가 전적으로 진다는 안도감을 부여해야 한다. 그러면 팀원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실현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적절한 칭찬과 보상이 가해지면 이들은 엄청난 성취감을 느끼게 되고, 더욱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리더십의 핵심인 `동기부여`다.
물론 리더가 `두 낫싱`하는 경우, 직원들의 절대적 업무량이 많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엄청난 스트레스가 된다거나, 하기 싫은 일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커리어를 발전시킬 수 있는 `즐거운 일`이 되는 것이다. 결국 서로에게 윈윈이다.
미국의 전 해군함장이었던 마이클 애브러쇼프가 재입대 비율이 최저일 정도로 형편없는 실적의 벤폴드 함을 인계받고 한 유일한 일은 갑판 위를 하루 종일 걸어다닌 것이었다. 그러면서 만나는 사병마다 말을 걸었고, 임무 수행에 열심인 병사를 만나면 즉석에서 훈장을 수여했다. 영웅적인 일을 한 병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불러 훈장을 줬다. 훈장부여 숫자는 원래 1년에 15개였지만, 애브러쇼프는 이 제한을 풀었다. 공개적으로 칭찬하고, 공개적으로 발탁하고, 공개적으로 너를 믿는다는 사인을 준 결과 군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던 재입대 비율이 28%에서 2년 만에 99%로 늘어났고, 태평양 함대 최고 군함에 수여하는 스포캔 트로피까지 받았다.
■ who he is…
키스 머니건은 노스웨스턴 대학교 켈로그 경영대학원 교수이자 전 세계 다수의 기업에 리더십 및 리스크 관리 컨설팅을 해주는 트레이너다. 퍼듀대에서 사회심리학을 전공했으며 이곳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리노이대학과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에서 강의하다가 1996년 노스웨스턴 켈로그 경영대학원에 합류했다. 월스트리트 저널, 이코노미스트 등에 기고를 하고 있으며, 그의 연구 내용 다수가 리더십 분야에서 활발히 인용되고 있다.
2013년 11월 26일, 제네시스가 데뷔 6년 만에 신형으로 거듭났다. 현대차 FR(앞 엔진, 뒷바퀴 굴림) 플랫폼의 자존심이자 대표주자다. 디자인은 아우디처럼 고급스럽다. 성능은 BMW를 지향한다. 현대차는 “제네시스로 나날이 시장 점유율 높여가는 수입차를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제네시스가 당장 명차(名車)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진 의문이다.
오늘날 우린 매일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를 접한다. 과거 제대로 된 장난감은 해외에서 수입된 귀하고 비싼 물건이었다. 필자를 비롯한 대부분 어린이들은 놀이터 모래사장에서 뒹굴며 놀았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 냉전이 끝났다. 지구상 거의 모든 국가가 자본주의 체제에 동참했다. 우리나라도 고속성장을 거듭했다. 그 결과 유례없이 물질적으로 풍족해졌다.
다이소에서는 튼튼하고 디자인 좋은 우산이 2천 원대다. 유니클로에선 청바지가 5만 원대다. 맥도날드에선 점심시간에 빅맥 세트를 3천 원에 살 수 있다. 우리나라가 물질적으로 이만큼 풍족했던 역사가 과연 있었던가? 이제 부자와 대중이 누릴 수 있는 물질적 차이는 줄어들었다. 보유한 제품과 서비스의 브랜드 밖에 없는 듯한 상황에 이르렀다.
이처럼 제품과 서비스가 흔해지면서 ‘명품’ ‘최고급’ 같은 단어가 남용되고 있다. 스스로를 포장해 차별화하기 위해서다. 특히 자동차 분야에서 이런 현상이 심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해마다 30~40차종이 출시된다. 애태우다 한 번씩 제품이 나오는 시장이 아니란 이야기다. 자동차 역시 더 이상 귀하지 않다. 필수품에서 기호품으로 바뀌고 있다.
현대 신형 제네시스 역시 최상급 표현을 스스럼없이 앞세운 경우다. 하지만 과연 이 차가 그 밖의 대중차와 뚜렷이 구분되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다. 오히려 현대차가 라이벌로 암시한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의 경쟁 모델과 비교할 때 무엇이 빠져 있는지 눈여겨보게 된다. 필자는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바로 사람의 차이다.
제네시스가 출시되기 직전 현대차가 인사 관련 보도 자료를 냈다. R&D(연구개발)센터의 수장들이 대거 사퇴했다. 12월 말에는 현대차 북미법인 사장이 갑작스럽게 관뒀다. 어느 회사든 실적을 비롯한 여러 이유로 경영진을 교체한다. 하지만 현대차의 영업이익률은 BMW 뒤를 바짝 쫓는다. 실적이 좋은 상태에서 경영진 교체가 빈번하다는 사실은 좀 걱정스럽다.
나아가 왜 교체되었는지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듣기 어렵다. 때문에 필자는 현대차 경영 문화가 과연 건전한지 우려할 수 밖에 없다. 현대차 그룹의 주력 회사들은 엄연히 증시에 상장된 ‘상장사’다. 하지만 투명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이번 경질도 그 중 하나다. 이렇게 중요한 경영적 변화에 대해 주주들에게조차 정확한 설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반대 사례로 토요타를 들 수 있다. 토요타는 2000년대 전문 경영인들이 연거푸 3번이나 최고경영자를 맡았다. 초기엔 성장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2009년 급발진 사고 및 대규모 리콜 사태가 벌어졌다. 전문 경영인들의 단기적 성과 위주의 폐허가 들어났다. 이후 도요다 가문의 아키오 도요다가 CEO로 승진하여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토요타는 이전 경영진을 해고했을까? 아니다. ‘조용히’ 고문이나 회장으로 승진시켰다. 독일의 아우디와 BMW, 메르세데스-벤츠 또한 임원을 그렇게 쉽게 해고하거나 정리하지 않는다. 반면, 현대차는 매년 임원들을 대거 정리한다. 때문에 경영의 지속성을 운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시 제네시스 이야기로 돌아가자. 1세대만 하더라도 디자인이 나름 독창적이었다. 마치 새로운 ‘창세기’(영어로 제네시스)를 여는 듯 했다. 그러나 첫 제네시스를 디자인한 미국 디자이너는 GM으로 이직했다. 개인적으로 만난 현대차의 R&D 담당자는 “조금만 더 돈을 들였더라면 BMW를 잡을 수 있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이번 신형 제네시스는 1세대보다 무게가 200㎏ 이상 늘었다. LED 헤드라이트나 전자식 변속 레버 등 몇 가지 옵션이 마지막 단계에서 석연찮은 이유로 삭제 또는 연기 되었다. 특히 이 같은 장비는 최근 자동차의 주요 세일즈 포인트다. 지켜보는 입장에선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현대차는 신형 제네시스로 독일의 전설적인 서킷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를 달렸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과정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가령 구형 대비 랩타임(서킷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나 빨라졌는지 보도 자료 한 줄 없다. 이곳에서 담금질했다고 자랑하는 차라면 대개 이전 대비 또는 라이벌보다 몇 초가 빠른지 밝힌다.
몇 달 전 포스코(구 포항제철)의 전직 최고 임원과 이야기를 나눈 적 있다. 포스코는 현대차 그룹 산하 현대제철의 경쟁사이기도 하다. 그 분은 포철 공채 0기다. 창업 멤버 가운데 한 명으로, 포항제철의 미래 기획을 정부와 함께 수립한 엘리트였다.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 “최첨단 기계는 결국 오래된 기계가 만듭니다.”
오래된 기계로 최신 기계를 만들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바로 실력 있는 사람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대변되는 소프트웨어 기술이야 말로 최신 기계를 만들 수 있는 핵심요소인 셈이다. 그분은 덧붙였다. “최신 기계로는 중저가의 범용 제품을 만듭니다. 고가의 최신 제품은 오히려 오래된 기계를 통해 완성됩니다.”
진정한 명품(名品)은 제조사가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 스스로 명품이라고 말하는 제품이 오히려 의뭉스럽다. 명품은 시장과 소비자가 인정할 때 얻을 수 있는 자격이다. 명차는 명장(名匠)이 만들고, 명장은 결국 회사가 키워낸다. 신형 제네시스, 그리고 출시 전후의 상황을 볼 때 현대차의 현 경영방식이 과연 명장을 육성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사람을 중시하는 경영이 명품을 빚어낼 수 있다. 명차를 만들기 앞서 명장들이 마음껏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명장이 모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누구나 인정하는 명차를 지속적으로 내놓을 수 있다. 이렇게 완성된 명차는 애써 포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회사의 격을 높여준다. 결국 사람을 아끼는 회사가, 명차도 만들 수 있다.
'골리앗' 쓰러뜨린 逆발상 ON 영화 서비스에서 드라마 제작까지 OFF 본방사수(정규방송)·한 편씩 방송 껐다 켰다? 미디어업계를 뒤흔들다
인터넷 스트리밍 예상하고 15년전 DVD 우편 배달 시작… 영화 팬들에 큰 인기 끌자 대여업체 블록버스터 파산, 월마트는 관련 유통업 포기
스마트폰 등 대중화 영향… 최근 자체 제작한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대히트로 회원수 4000만명으로 급증
이젠 기존 방송뿐만 아니라 유튜브까지 압도하며 인터넷 스트리밍 1위 올라
위클리비즈에서 대가들을 인터뷰할 때 다음번 취재할 인물의 힌트를 얻을 때가 있다. 이번에 인터뷰한 인물도 그랬다.
'마스터리의 법칙'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 로버트 그린씨는 "이 시대의 마스터(Master)로 주목하고 있다"며 이 사람을 지목했고, 구글·야후에 투자한 전설적 벤처캐피털리스트 마이클 모리츠씨도 "투자하지 않아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기업이 둘 있다"며 트위터와 함께 이 사람이 창업한 회사를 언급했다. 포천지는 2010년 '올해의 기업인' 순위에서 이 사람을 1위로 뽑았다. 당시 고(故)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가 3위,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가 4위였다.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이길래?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창업자가 회사 벽면에 그려진 넷플릭스 자체 제작 드라마‘하우스 오브 카드’의 배우들 그림 앞에서 활짝 웃었다. 이 대작 드라마는 지상파나 케이블TV가 아닌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공개됐는데, 에미상 3관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 폴 사쿠마 프리랜서 사진작가
바로 넷플릭스(Netflix)를 창업한 리드 헤이스팅스(53·Hastings) 회장이다. 비디오와 DVD를 택배나 우편으로 배달하는 업으로 시작해 인터넷으로 영화를 서비스하는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로 확장했으며, 최근엔 '하우스 오브 카드' 같은 드라마 시리즈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포천지가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 있다. '짐승(animal)'.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지난 15년간 차례대로 덩치 큰 '골리앗'들을 쓰러뜨리는 괴력을 발휘해 왔다. 1997년 대형 비디오 대여 체인 업체 블록버스터가 한창 잘나가고 있을 때, 그는 비디오(나중엔 DVD로 확대)를 집으로 배달해 주는 회원제 대여 사업을 시작해 영화 팬을 끌어들였다. 그 결과 한때 6000여 매장을 운영하며 승승장구하던 블록버스터가 2010년 파산했다. 세계 1위 유통 기업인 월마트도 넷플릭스에는 희생양이었다. 월마트가 넷플릭스처럼 우편으로 비디오를 배송하는 사업을 시작했다가 2005년에 포기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콘텐츠 유통에 머물지 않고 제작에도 직접 뛰어들었는데, 올해 내놓은 대작(大作)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가 에미상 감독상 등 3개 부문 상을 받아 기존 공중파와 케이블TV 업계에 충격파를 던졌다.
▲현재 미국 가정 4가구 중 1가구는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있다. 특히 스마트TV가 널리 보급되면서 넷플릭스를 이용하는 가구가 점점 느는 추세다. 넷플릭스는 계정 하나에 가족 구성원 5명까지 등록할 수 있어 개인 취향을 반영한 추천 영화 목록을 각각 관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 넷플릭스 제공
지난달 26일 넷플릭스 본사에서 만난 그에게 "블록버스터 같은 덩치 큰 경쟁자가 있는데 비디오 배송 사업을 시작한 건 모험 아니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조금도 머뭇거림 없이 말했다.
"우리가 선택한 건 블록버스터나 아마존이 보고 '아, 그건 매우 작은 사업밖에 안 될 거야'라고 했던 비즈니스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 모델에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부분이 우리를 성장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성공할 수 있으리란 확신이 있었습니다. 블록버스터는 2004년이 돼서야 비디오 배송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아마존은 2005년도에 뛰어들었지만, 영국에서였죠."
넷플릭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동안 수많은 경쟁자는 이 회사를 저평가했다. 짐 키스 블록버스터 전 사장은 2008년 "모두가 넷플릭스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헤이스팅스 회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창업자는 반드시 역발상(contrarian view)을 가져야 합니다. 모두가 바보라고 할 때, 바보 같은 그것을 밀어붙여야 합니다. 그것이 결국 성공하리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물론 바보라고 손가락질받는 비즈니스는 실제로도 바보 같은 비즈니스인 경우가 많으며 실제로도 망합니다. 그러나 종종, 아무도 믿지 않는 것에 당신이 강력한 믿음을 가진다면 그것은 현실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 당신은 가치라는 것을 가지게 됩니다."
경영자들이 그에게서 꼭 배워야 할 것 중 하나는 새로운 사업의 적절한 타이밍을 잡는 것이다. 그는 "기업이 남들보다 뒤늦게 혁신하려는 것도 문제지만, 남들보다 일찍 앞서가려는 것 역시 매우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뒷북을 치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빠른 상품화도 독이 된다는 것이다.
헤이스팅스 회장은 창업 10년 뒤인 2007년 새로운 도박을 감행했다. 인터넷으로 영화를 보는 인터넷 스트리밍(streaming)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사실 그는 스트리밍이 미래의 대세임을 창업 당시부터 예견하고 있었다. '넷플릭스'란 회사 이름 자체가 '영화(플릭스)'를 인터넷으로 서비스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왜 진작 시작하지 않았을까?
"1999년에 스트리밍은 할 수 없었습니다. 인터넷이 그만큼 빠르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DVD 우편 발송 서비스부터 시작한 겁니다. 인터넷이 더 빨라질 때까지 브랜드 이미지를 쌓기 위해서였습니다."
그의 도박은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넷플릭스에 월 7.99달러를 내고 스트리밍 서비스를 받는 회원 수는 9월 현재 4000만명(미국 3300만명을 포함해 41개국)을 넘어섰다. 올 들어서만 1100만명이 늘었다(현재 DVD 렌털 서비스 회원은 700만명이다). PC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태블릿, 스마트TV 같은 다양한 디지털 기기에서도 인터넷 연결이 가능해진 데다,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가 인기 몰이를 한 덕이다. 이 회사의 현재 주가는 연초의 4배 정도로 뛰었다. 이 회사는 일찌감치 2011년에 미국의 대표적 케이블 방송인 컴캐스트의 회원 수(2280만명)를 추월하고, 북미 지역 인터넷 스트리밍 트래픽 순위에서 유튜브를 압도하며 1위 자리에 올랐다.
"세계적으로 똑똑한 사람들은 종종 타이밍을 잘못 잡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파괴적 비즈니스의 예술은 10년 후를 상상하는 겁니다. 그 10년 후의 기술은 지금 기준으로는 빠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10년 후에 대비하는 비즈니스를 미리 만들어 가는 겁니다. '폭발 시점(explosion point)'을 기다리면 너무 늦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우린 DVD로 스트리밍 시대를 준비한 것입니다." 넷플릭스 사옥은 고급 스페인풍의 3층 빌딩 두 동이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3층 회의실에서 만난 헤이스팅스 회장은 뾰족한 갈색 구두와 청바지 차림이었다. 턱수염이 더부룩했고, 앞 단추를 두어 개 푼 티셔츠 사이 가슴 부분에도 털이 무성했다. 야생마 같은 느낌을 줬다.
―타이밍을 잘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리드 헤이스팅스는“창업부터 내 목적은 확장이었고, 그 답은 인터넷 스트리밍이었다”고 말했다. / 블룸버그
"체스를 둔다고 생각하십시오. 그건 다른 체스 고수들의 경기를 많이 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거기서 배우세요. 체스 게임엔 가장 스마트하고 핵심적인 베팅이 있습니다. 그 베팅을 하는 게이머가 게임을 이기는 것처럼, 기업이 그런 베팅을 하면 장기적으로 존속할 수 있습니다. 그 베팅을 못하면 게임은 집니다."
―세쿼이아캐피털의 마이클 모리츠를 인터뷰했을 때 그는 "넷플릭스에 투자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고 했습니다. 클라이너퍼킨스의 존 도어 회장도 회장님에게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지금 와서 뭐라고 말하고 싶으세요?
"하하. 그들을 항상 만납니다. 도어랑은 내일 조찬 모임을 하기로 돼있어요(웃음). 1990년대 말 IT 버블 때 급변하는 기술의 발전 속에 사람들은 모든 게 바뀔 거라고 믿었어요. 제가 처음 투자를 받으려고 투자자들을 찾았을 때도 그들은 '내년이면 모든 게 디지털화한다'고 했어요. 제가 인터넷 스트리밍 이야기를 꺼냈더니 그들은 '이미 그건 가능한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곧 한물갈 비즈니스로 본 것이죠. 그러나 구글 검색 서비스를 생각해보세요. 그건 초창기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는, 작지만 좋은 기능 하나에 불과했어요. 그냥 아웃소싱해서 운영하면 된다고 여긴 거죠."
―블록버스터가 파산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블록버스터가 파산했을 때 그들은 직원 2000명을 해고했어요. 저는 거기에 슬픈 감정을 갖고 있어요. 그러나 그걸 전쟁이란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블록버스터는 2005년에 우리보다 10배나 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릴 공격했어요. 그런 관점에서 그들이 실패한 것은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어쨌든 그들이 앞으로 잘되길 빌어주고 싶네요."
비디오 연체료 물고 열 받아 시작한 사업
―안정적인 DVD 배달 서비스에서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갈아탄 것 역시 큰 위험 감수 아니었나요?
"DVD 사업만 하는 것이 더 큰 위험이었겠죠. 창업부터 제 목적은 확장이었고, 그 답은 인터넷 스트리밍이었습니다. 회사의 1단계는 DVD였습니다. 2단계는 미국 내 인터넷 스트리밍 시장 성공이고, 3단계는 글로벌 스트리밍 시장에서 성공하는 겁니다. 우린 이제 41개국에 진출했어요. 전 세계 국가 수가 200개가 넘잖아요? 우리한텐 아직 머나먼 길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가 피할 때 위험을 감수하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나요?
"세상에서 어떤 사람들에겐 위험을 지는 것이 매우 편합니다. 위험은 그들에게 일상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매우 어렸을 때부터 시작되었거든요. 인생 초창기에 다양한 경험을 통해 위험 감수 능력을 극대화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좋은 리스크와 나쁜 리스크를 구별할 줄 알게 되며,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저에게 그것은 아프리카 스와질랜드에서 수학 교사를 하는 거였어요(그는 대학 졸업 뒤 평화봉사단에 들어가 아프리카에서 가난한 아이들에게 2년간 수학을 가르쳤다). 혼자 오랜 여행을 통해 독립심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그는 스탠퍼드대에서 컴퓨터공학 석사 학위를 딴 뒤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했고, 1997년에 7억5000만달러에 매각했다. 그해 어느 날 그는 비디오 대여 체인인 블록버스터에서 영화 비디오를 빌렸는데 늦게 반납하는 바람에 연체료 40달러를 문다. 불쾌해진 그의 머릿속에서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연체료 없는 비디오 렌털 사업을 하면 어떨까? 비디오를 집으로 배달해 주면 어떨까? 월회비를 받고 비디오를 반납하면 다음번 비디오를 보내주는 식으로 하면 어떨까?' 넷플릭스의 시작이었다.
미래를 예단하지 말라
현재 미국 가구 네 곳 중 한 곳은 넷플릭스를 이용한다. 미국인들에겐 가족끼리 안방에 모여 넷플릭스를 보는 것이 평범한 일상이다.
헤이스팅스 회장은 "앞으로 10~20년 뒤에 사람들은 '리니어 채널(linear channel·방송 스케줄이 정해진 보통의 TV 방송)'이 있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들은 질문할 겁니다. '누군가 당신이 보고 싶은 채널을 선택해 주었다고요? 왜 당신이 선택하지 못했나요?'라고요. 그들에게 그것은 완전히 낯선 과거가 될 겁니다."
―인터넷 스트리밍 이후는 무엇일까요?
"5000년 동안 말은 인간의 유일한 이동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자동차가 생겼습니다. 그때 말 비즈니스를 하던 사람은 이런 말을 했겠죠. '5000년 동안 말은 인류 사회의 일부였어. 앞으로도 바뀔 것이 없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2세대 이후 모든 것은 자동차로 바뀌었습니다. 즉 그런 일이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뚝 떨어진다는 말입니다. 저는 언제라도 그런 때가 올 수 있다고 보고 항상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우스 오브 카드 돌풍
올해 넷플릭스에 가장 큰 사건은 '하우스 오브 카드'의 대히트일 것이다. 1억달러를 투자해 데이비드 핀처 감독에 케빈 스페이시를 주연으로 내세운 이 드라마는 여러 면에서 화제를 모았다. 시즌 1의 시리즈 13편을 한날한시에 한꺼번에 공개해 버린 것도 그중 하나다. 왜 그랬을까?
▲삼성전자·파나소닉·샤프 등 20여개사가 미국에서 판매하는 스마트TV 리모컨에는 모두 넷플릭스 전용 빨간색 버튼이 달렸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 주요 스마트 TV 제조사들과 제휴를 맺었으며, TV에 넷플릭스 프로그램을 내장시켰다. / 넷플릭스 제공
"책을 조금씩 나눠서 출간하지 않고, 완결된 책 한 권을 만들어 출간하는 것처럼, TV 시리즈도 그렇게 하길 원합니다. 미래엔 모든 것을 한 번에 보여주는 방식이 될 겁니다. 오늘 영화 두 편을 볼지, 한 편을 볼지 소비자에게 결정권을 줍니다. 소비자가 콘텐츠 소비를 모두 통제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왜 콘텐츠를 자체 제작하기로 했나요?
"'하우스 오브 카드'가 정말 위대한 시리즈이기 때문이죠. 높은 인기를 끌 것을 알았기 때문에 넷플릭스에만 독점 공급한다는 조건으로 더 많은 돈을 들여 투자한 것입니다."
―최근에 마블스튜디오와도 드라마 시리즈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인기 콘텐츠를 모두 끌어들이는 모양새입니다.
"모든 것은 아닙니다. 아직 저희가 소유하지 못한 콘텐츠도 많습니다(웃음). 앞으로 더욱 많이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모든 영화, 모든 캐릭터를 보유할 수는 없습니다. 수많은 서비스가 경쟁하는 판도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방송사들과 전쟁을 치르게 될 텐데, 그것도 이길 확신이 있습니까?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그런데 바로 그 점이 저에게 강력한 흥미를 유발하고 있습니다. 정말 비슷한 상대끼리 만난 축구나 체스 경기와 비슷합니다. 누가 이길지 모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앞엔 정말 먼 길이 남아있습니다."
―넷플릭스의 사업 구조가 독특한 것이, HBO(미국의 대표적 유료 케이블 네트워크) 같은 회사들이 경쟁자이기도 하면서 협력업체이기도 하다는 겁니다. 삼성과 애플을 연상시키는데요. 이런 생태계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합니까?
"복잡합니다. 그러나 우린 최소한 서로에게 소송을 걸진 않고 있습니다(웃음). 그런데 소비자는 스마트폰은 애플이나 삼성 둘 중 하나를 쓰지만, 비디오는 HBO와 넷플릭스를 둘 다 이용할 수 있습니다. 스포츠에서 야구와 축구가 서로 경쟁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HBO를 즐겨보는 것처럼, HBO 직원들도 넷플릭스의 콘텐츠를 즐겨 봅니다. 우리는 삼성과 애플보다는 좀 더 소프트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겁니다."
영화 추천의 비밀
넷플릭스의 강점은 영화 추천 시스템이다. 넷플릭스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의 75%가 추천받은 영화를 본다. 넷플릭스의 추천 분류는 30가지에 이른다. '당신이 좋아할 만한 최고 영화 10개' '○○ 영화를 본 당신이 좋아할 만한 영화' '기분이 우울할 때 볼 낭만적인 영화' 같은 항목으로 영화 제목과 포스터 수십 개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즐겁다' '낭만적이다' '불합리하다' 등 자기 기분 상태를 설정해 그에 맞는 영화를 추천받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철저히 개인화한 서비스다.
―저는 30대 초반의 한국 신문기자인데, 미국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픽사와 디즈니 영화를 사랑합니다. 넷플릭스는 저에게 어떻게 영화를 추천해 주겠습니까?
"당신이 어떤 영화를 봤는지에서 힌트를 얻습니다. 당신의 백그라운드나 나이보다 어떤 영화를 보는지가 중요합니다. 그 힌트를 바탕으로 우린 예측을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우리 영화를 더 많이 보면 볼수록 우린 더 정확하게 당신 취향을 영화에 반영합니다."
―"고객의 개인화가 이 게임의 핵심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 대왕의 개인 과외 교사였습니다. 알렉산더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으로 지중해를 정복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과외 교사를 두는 기분이랄까요? 앞으로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훨씬 많이 제공할 겁니다. 아마존 클라우드 시스템 이용 비용은 점점 싸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객들을 위해 더 많은 계산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영화 추천을 훨씬 정교하게 할 수 있을 겁니다."
변화를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경영하라
―창의적 기업 경영이 일반 기업 경영과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많은 기업에서 비즈니스가 성장하면 복잡해집니다. 불가피하게 무언가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때 기업이 그 잘못된 문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절차라는 것을 만듭니다. 그래서 변화를 최소화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창의적 비즈니스는 다릅니다. 창의적 비즈니스는 변화(variation)를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경영해야 합니다. 아이디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항공사의 파일럿이나 직원은 매번 똑같은 매뉴얼을 확인합니다. 그러나 창의적 비즈니스는 체크리스트를 만들면 안 됩니다."
Mark Pincus는 Zynga를 41살에 시작했습니다. Reid Hoffman은 Linkedin을 36살에 시작했습니다. Marc Benioff는 35살에 Salesforce를 시작했습니다. Robert Noyce는 41살 때, 39살인 Gordon Moore와 함께 인텔을 시작했습니다. Irwin Jacbos는 52살 때 50살인 Andrew Viterbi와 함께 퀄컴을 시작했습니다. Pradeep Shindhu가 Juniper Networks를 만들었을땐 42살이었습니다.
성공적인 회사를 시작하는데 35살보다 어릴 필요는 없습니다. 기술 업계 밖에서는 35살 이후에 잘 알려진 성공적인 회사를 설립한 예가 훨씬 더 많습니다.
한국에선 우스갯 소리로닭튀김 수렴공식같은것이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나온다는데, 실리콘 밸리의 이런 환경은 참 부럽다. 게다가 Quora 같은 곳에 직접 답변을 달아주는 창업자들이 있다는것도 멋지고 말이다.
사업에 성공해서 아주 큰돈을 번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낙후한 도심을 사들인 뒤, 거리를 단장하고, 공원과 공연장, 학교, 그리고 예쁜 아이스크림가게도 만든다. 그리고는 이곳으로 젊은 창업가들을 불러 모은다. 사업밑천을 투자하고, 일하고 생활할 공간도 제공한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레스토랑과 바도 있다. 꿈 꿔온 혁신적 아이디어를 마음껏 펼쳐보라고 말이다. 원주민들에게는 무이자로 돈을 빌려줘 작은 가게를 차릴 수 있도록 한다. 새로 온 창업가들과 원주민들이 어울려 삶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도록.
이 사람은 바로 세계최대 온라인 신발사이트 ‘자포스(Zappos)’의 창업자이자 CEO인 토니 셰이(39)이다. 현재 네바다주 라스베가스에서 이런 프로젝트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의 이름은 ‘다운타운프로젝트(DowntownProject)’. 그는 “세상을 뒤집는 혁신은 사람들이 같은 생활공간에서 마주치고, 부대끼고, 나누고, 협업하는 가운데 절로 나오는 것"이라 믿고 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의 모토도 ‘마주침(collision)’, ‘협업(collaboration)’, ‘공유(sharing)’이다.
스타트업과 소규모가게들의 삶의 공동체가 들어설 라스베가스 프레몬트거리. /사진출처:다운타운프로젝트 홈페이지(downtownproject.com)
그는 2009년 회사를 아마존에 12억 달러(약1조3500억원)에 팔아 큰돈을 벌었다.(매각 이후에도 토니 셰이가 계속 경영하고 있다.) 그는 번 돈 가운데 3억5000만달러(약 4000억원)의 사재를 털어 라스베가스 다운타운의 프레몬트 거리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이곳은, 바로 남쪽 카지노 거리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동네이다. 한때 카지노, 백화점 그리고 중산층들이 있었지만, 남쪽으로 다 옮겨 가면서, 가끔씩 돈 없는 관광객들만 찾을 뿐이다.
그는 3억5000달러중에서 2억달러(약 2200억원)는 땅과 건물을 매입하는데, 5000만달러(약 560억원)는 스타트업(이제 막 생긴 벤처회사) 투자에, 또 5000만달러는 소규모 가게들을 만드는데, 나머지 5000만달러는 교육시설과 문화사업에 쓰고 있고, 또 쓸 계획이다.
카페, 부티끄, 바, 갤러리, 커뮤니티 공간으로 채워질 컨테이너 파크 조감도. /사진:다운타운프로젝트 홈페이지
매주 테드(Ted)와 같은 강연과 뮤직 페스티벌이 열릴 공연장. /사진:다운타운프로젝트 홈페이지
그렇다고 유명 건축가를 고용해 휘황찬란하고, 잘 계획된 도심을 디자인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작은 집들, 빈 사무실, 빈 창고를 개조해서 스타트업이 입주하고, 예쁜 카페와 가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출발은 프로젝트이지만,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 사람들이 스스로 공동체를 만들어가도록 하겠다는 것. 그래서 그가 살고 있는 동네 아파트 담벼락에는 누구든 다운타운에 더 필요한 것을 제안할 수 있는 게시판이 있다.
프레몬트 남쪽 카지노의 거리 '스트립(Strip)'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다, 다운타운프로젝트로부터 무이자 대출을 받아 레스토랑을 연 나탈리 영. /사진출처:다운타운프로젝트 홈페이지
역시 다운타운프로젝트로부터 무이자대출을 받아 패션숍을 연 사라 니스페로스. /사진출처:다운타운프로젝트
다만 사람들이 지켜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되도록이면 걸어서 다닐 것. 그래야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 자주 부대낄 수 있으니까. 먼 거리를 가야 한다면 공유대의 자전거를 이용하고, 더 먼 거리를 가야 한다면 공유주차장에 마련해둔 전기차를 이용하면 된다. 그는 이미 100대의 테슬라 전기차를 주문해놓았다.
“우리의 목표는 서로 다른 생각과 배경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으는 것이다. 밀집된 도시에서 협업을 하고 나눌 수 있다면 혁신은 절로 일어날 것이다. 이런 매직(마법)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을 더 마주치게 하는 것(collision)이다,”
그는 이곳 인구밀도를 현재 1에이커(약 1224평)당 14.5명에서 100명으로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2004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라스베가스 외곽으로 옮긴 자포스 본사도 이곳 옛 시청 건물로 곧 입주한다. 자동차 없는 보행자 위주의 거리를 만들려는 것도, 공연장에서는 '테드(Ted)'와 같은 강연을 매주 열려는 것도 사람들이 더 많이 마주치고, 공감하고, 협업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다운타운프로젝트’ 홈페이지에는 그날그날 이 거리에서 열리는 사람들 간의 다양한 만남과 이벤트가 공지되고 있다.
스타트업들이 함께 일할 코워킹 사무실 모습. /사진:다운타운프로젝트 홈페이지
프레몬트 거리에 들어설 소규모 가게에 대한 아이디어를 불여 놓은 포스트잇. /사진출처:다운타운프로젝트 홈페이지
불모의 도시를 상대로 한 그의 거대한 혁신 실험이 그냥 꿈으로만 끝날 것 같지는 않다. 토니 셰이 외에도 이미 미국의 많은 젊은 창업가들이 예고된 성공을 뒤로하고, 더 이상 아무것도 잉태할 수 없는 불모의 땅으로 서서히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 성공한 창업가 앤드루 양(38)이 2011년 만든, 비영리조직 ‘벤처 포 아메리카(Venture for America)’를 보자. 이곳은 브라운대, 듀크대 등 우수한 대학 졸업생들을 빈곤과 실업과 씨름하는 도시로 보내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곳에서 창업을 배우고, 회사를 세우게 하자는 목적이다. 이들은 2년간 현지 스타트업에 합류해 일을 하고, 이후 펀딩을 받아 그곳에서 회사를 차리게 된다. 최근 파산을 신청한 디트로이트, 흑인들의 총격사건이 끊이지 않은 뉴올리언스 같은 곳에서 말이다.
‘벤처 포 아메리카(Venture for America)’ 창업자 앤드루 양. /사진출처:뉴욕타임스
벤처포아메리카 사업 개념도. /출처:홈페이지(ventureforamerica.org)
현재 이 프로그램을 통해 108명의 대학졸업생들이 70개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올해 신청자는 작년보다 2배 늘어난 550명에 달했는데, 이중 선발된 80여명의 평균학점이 3.6점일 만큼 선발 절차도 까다롭다. 로스앤젤레스 헤지펀드로부터 (달러로) 여섯 자리 연봉을 제안 받은, 클레몬트대 한 졸업생은 “나는 공동체에 거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면서 억대 연봉을 뒤로 하고 ‘유령의 도시’로 불릴 만큼 비참한 몰골이 된 디트로이트로 향했다. 폐허의 땅에 새로운 희망을 써보겠다는 것이다.
창업자 앤드루 양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젊고 똑똑한 젊은이라면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한다. 더 이상 은행가와 컨설턴트의 길로만 가서는 안 된다. 인적자원의 재분배가 필요하다. 불모의 도시에 가서 뿌리를 내리고, 그곳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경제를 재건해야 한다. 이런 ‘마이크로 임팩트(작지만 강한 충격)’가 모이면 전혀 새로운 경제를 건설할 수 있다. 우리는 2025년까지 1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기적 같은 현실이며, 현실 속의 기적이다. 그리고 큰돈을 번 사람이 어떤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해야하는지 정확한 지침을 주고 있다. 한국에도 많은 IT인재들이 창업의 대열에 합류하고 커다란 성공을 향해 매진하고 있다. 정부도 창조경제를 부르짖고 있다. 그러나 창업에 성공하고 창조경제를 만들어서 궁극적으로 어떤 세상을 만들겠다는 그림은 그려보지 않는다. 돈을 벌면 세상을 아름답게 바꿔야한다는 꿈도 함께 꾸면 좋겠다. 버려진 땅, 힘겨운 사람들이 행복한 도시를 만들고 살게 하는 것, 그것이 대박을 꿈꾸는 창업가들의 진짜 대박이 아니겠는가.
라스베가스 다운타운내 조형물. 토니 셰이는 화려한 카지노거리인 스트립과 3km 떨어진 이곳에서 현재 10만평규모, 100여개 크고작은 건물로 이뤄진 도시를 창업했다.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미국최대 온라인 신발쇼핑몰 자포스(Zappos) 창업자 토니 셰이(Tony Hsieh·41). 그는 직원이 늘면서 새사옥이 필요했다. 미국에서 좋다는 본사는 다 돌아봤다. 책상 언저리를 떠나지 않고도 일하고 먹고 운동하고 심지어 빨래까지 해주는 구글 캠퍼스도 근사했고, 디즈니랜드 상점거리처럼 무료 아이스크림가게, 햄버거가게 예쁘게 늘어선 페이스북 캠퍼스도 멋졌다. 하지만 그에게는 섬처럼 느껴졌다. 그 너머의 삶에는 관심 없고 세상과는 별개일 것 같은 곳.
오히려 그를 사로잡은 곳은 뉴욕대학(NYU) 캠퍼스였다. 맨해튼의 빌딩 몇 개가 캠퍼스의 전부이지만, 빌딩을 걸어 나오면 카페와 부티크, 갤러리가 줄지어 있다. 코너를 돌 때마다 각양각색 예술이 툭툭 튀어나온다. 캠퍼스는 보헤미안 문화가 숨 쉬는 동네, 그리니치빌리지에 속한 일부였다.
그는 NYU캠퍼스처럼, 도시 같은 일터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그의 문제의식은 더 발전했다. 아예 도시를 창업하기로. 그는 문 닫은 카지노모텔이 즐비한, 불모의 땅 라스베가스 구 도심을 선택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의 회사가 30분 떨어진 곳에 10년째 터 잡고 살고 있기 때문. 회사를 이곳으로 옮기고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면 된다.
그는 3억5000만달러(약 4000억원)를 놓았다. 타이완 이민자 아들로 태어난 그는 2009년 자포스를 아마존에 12억달러(1조3500억원)에 팔았고, 이후로도 경영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더 마주치고, 걷다가도 더 붙잡고 이야기할 수 있게 바와 카페, 레스토랑을 공들여 만들었다. 마주치고(Collisions), 서로 배우고(Co-learning), 연결되면(Connectedness) 혁신이라는 기적은 저절로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테크놀로지 창업가들을 부르고, 동시에 뮤지션, 예술가들도 불러 모았다. 매직은 창업가들과 예술가들이 한데 섞여 있을 때 나온다고 믿었다. 여기에다 학교와 병원까지.
자포스 창업자 토니 셰이. /사진출처=뉴욕타임스
그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짓는데 들어갔다는 4800억원보다 적은 돈으로 이 모든 것을 하고 있다. 2억달러(2200억원)는 땅과 건물 매입에, 5000만달러(560억원)는 레스토랑 같은 스몰비즈니스에, 또 5000만달러는 교육과 문화에, 나머지 5000만달러는 스타트업 투자에. 그것도 마음 먹은 지 2년 만에 미국기자들이 며칠씩 묵으며 르포기사를 쓸 정도로.
그는 허물지도, 벽을 두르지도, 유명한 건축가를 부르지도 않았다. 무슨 IT밸리를 만들겠다고 우람하게 올려놓고 분양하지도 않았다. 어떤 곳은 그냥 카지노모텔 간판도 그대로 둔 채, 또 어떤 곳은 컨테이너 박스로 만들었다. 중요한 건 겉이 아니라 안이고,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섬이 아니라 도시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도시를 창업하기 위해 세운 또 다른 회사 이름은 다운타운프로젝트(Downtown Project). 회사라고 하지만 도시공동체에 가깝다. 병원, 교통, 교육, 예술공연, 도시미디어 등 이 모든 것을 해당 스타트업들, 그리도 동네주인들과 협업하고 있었다. 2년 사이 10만평, 100개의 크고 작은 건물로 늘어났다. 남대문시장의 8배,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4배에 달하는 그 도시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다녀왔다.
건물, 조경이 무슨 상관인가. 사람과 문화가 있으면 된다 기자가 여전히 선입견으로 가득한 사람이라는 것을 또 한번 확인했다. 그래도 근사한 조경과 아름다운 도시 이미지를 기대했던 것.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문 닫은 모텔과 카지노 간판, 듬성듬성 공터도 보기가 싫었다. 여전히 버려진 땅 같았다. 하마터면 실망부터 할 뻔 했다.
그런데 다운타운프로젝트는 순서가 달랐다. 킴 쉐이퍼 대변인은 "우리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와서 커뮤니티를 만들고 살 것인가'라는 사람에 대한 문제였다. 건물을 보지 말고 사람을 보라"고 말했다. 토니 셰이도 "다른 도시를 보면서 배운 것은 아름다운 건물만 세워놓고 모든 게 잘될 거라 기대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그제야 다운타운프로젝트가 보이기 시작했다.
한 곳 한곳 문을 열 때마다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영업중지한 카지노모텔의 문을 여니 거대한 바가 있었다. 이름은 '골드 스파이크(Gold Spike)'. 한쪽에서는 누군가 노트북으로 일을 하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수십 명이 파티를 하고 있다. 세븐일레븐 자리에는 150석 규모 극장, '인스파이어 씨어터(Inspire Theater)'가 들어서 테드(Ted)식 강연이 시리즈로 열리고, 그 위로는 다시 바와 카페이다.
적십자 로고와 함께 '이머전시(Emergency)' 간판이 있어 응급병원인가 들어가 봤더니, 1층 커피숍 '더비트(The Beat)'에서는 역시 노트북 들고 일하는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위로 또 다른 세상이 나타났는데 계단과 2층에는 모든 벽마다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고, 가운데 큰 미술작업실에는 대여섯명 회의가 한창이다. 나와서 간판을 다시 보니 '이머전시 아트(Arts)'였다.
커피숍과 갤러리, 예술가들의 작업공간이 들어선 이머전시아트(Emergency Arts).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작업장(workplace)라는 팻말이 있어 들어가 보니, 다름 아닌 스타트업 코워킹(co-working) 공간. 1층 옛 차고는 이벤트 공간으로 꾸며져 있고, 2층에는 작업 테이블들이 펼쳐져 있었다. 월 50달러만 내면 이용할 수 있다. 이곳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워크인프로그레스(Work in Progress)의 니콜 마스트란겔로 매니저는 "3개 코워킹 건물이 더 있다. 일대일 멘토링을 하고, 벤처캐피탈리스트들을 초대한다. 수시로 연사들을 초청해 네트워킹 행사를 연다"고 말했다.
멀리 체크스캐쉬트(checks cashed)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카지노 관광객들 상대로 수표를 현금으로 '깡'해주는 곳이라는 뜻. 하지만 웬걸! 들어갔더니 힙합패션 컨셉의 부티크였다. 감각 있다고 지역신문에도 자주 소개되었던 여주인의 가게였다.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와서 마시고 주인과 놀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패션 부티크 코테리. 카지노 고객들에게 수표를 현금으로 '깡'해주던 옛간판을 그대로 달아놓고 있다.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인 모텔을 지나 브런치레스토랑 '이트(EAT)'. 이 가게 히스패닉계 여주인은 카지노거리 레스토랑 종업원으로 일해 오다 토니 셰이를 만나 무이자대출을 받았고, 오랫동안 꿈꿔왔던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출입문은 그저 그런 식당입구 같았는데, 안은 스타트업과 예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북적였고, 맛은 최고였다. 레스토랑 매니저인 마리사 니차르는 "평일도 300 테이블씩 꽉찬다"며 "14개월만에 대출을 다 갚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몇년전만해도 밤이면 걸어 다닐 수가 없었다. 그런데 모든 게 달라졌다, 선물포장지 같은 라스베가스 스트립거리와는 반대이다. 즐길 게 많고, 이야기할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다운타운 베가스의 수십개 크고 작은 공간들은 문을 열 때마다 새로운 것들이 기자 앞에 턱하니 다가왔다. 그것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걸로 말이다. 화려하지 않다는 이유로 문을 열어보지 않았다면, 그 안에 새로운 발견,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가득하다는 것조차 모르고 지나칠 뻔 했다. 그래서 토니 셰이는 "거리를 탐험하는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만든다"고 했던가.
예술과 스타트업, 그리고 동네 주인들. 섞여야 매직이 일어난다 온종일 걷고, 들어가 보고, 들어보았지만 하나 희한했던 게 있다. 그 흔한 맥도날드, 스타벅스가 없다는 것. 이런 빅체인은 이 도시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킴 쉐이퍼는 "다운타운의 비즈니스는 모두 스몰비즈니스이다. 주인이 직접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는 이랬다.
"작은 공간 하나라도 창의적인 것이 있어야 한다. 찾아오는 사람과 정서적 유대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받을 뿐만 아니라 커뮤니티에 줄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러면 주인이 운영해야 한다. 누가 내 커피를 만드는지, 누가 내 샌드위치를 요리하는지, 어떤 주인이 고른 옷인지 모른다면, 그건 그냥 가게일 뿐이다. 또 이렇게 해야 다운타운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의 경제도 살아난다."
듣고 보니 '아차' 싶다. 맥도날드와 스타벅스에는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사이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지 않나. 파는 사람은 규격화된 입맛만 제조하면 된다. 사는 사람은 오히려 익명성을 즐긴다. 그래서 다운타운프로젝트는 주인이 직접 운영하는 스몰비즈니스 33개에 사업밑천을 투자했고, 공간만 임대할 때도 '주인이 운영하고, 스토리 텔링이 있어야 한다'는 기준이다. 마치 송창식의 노래 '담배가게 아가씨' 속의 주인공처럼 팔기도 하지만 정서도 오가야 한다.
그렇다면 예술은 왜 또 그렇게 중요한가? 왜 이곳에는 창업가들보다 화가, 뮤지션, 사진작가, 디자이너들이 더 많은 것처럼 느껴질까? 토니 셰이는 가끔 자신이 들어본 밴드를 초대하는데, 밴드가 이곳에 반해 그냥 눌러 앉기도 한다. 그는 라스베가스의 유명 예술공연인 'the First arts Festival' 운영권도 매입했다. 홈페이지(downtownproject.com)에는 가족이벤트, 연사강연, 스타트업행사 만큼이나, 하루가 멀다하고 전시공연 스케줄이 공지된다. 패션 인큐베이터 '스티치 팩토리(Stitch Factory)'는 디자이너들의 아지트이다.
킴 쉐이퍼는 "테크 창업가끼리 어울린다고 생각해보라. 퍼즐의 한 두 조각이 없는 것이다. 매직은 창업가들과 예술가들이 한데 섞여 있을 때 나오는 것이다"고 말했다. 토니 셰이가 언젠가 인터뷰에서 했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만든다면, 이들은 통계적으로 서로 협업하고 나누려는 경향을 가진다. 그러면 기적은 저절로 일어난다."
회사가 잘되면 회사주인이 돈 벌고, 그 다음으로 직원들에게 복지가 돌아가고, 회사가 더 잘되면 문화와 예술을 이야기하는 순서를 생각한다면, 다운타운프로젝트는 그 모든 것이 얼마나 고정관념이었는지 보여준다. 이곳은 수많은 만남을 주선하는 동네주인들, 수많은 뮤즈를 선사하는 예술인들, 그리고 뭔가에 꽂혀서 태클을 걸고 싶어 하는 창업가들이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서 함께 잘사는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작년말 자포스가 본사를 이곳 옛 시청건물로 옮겼을 때, 토니 셰이는 주차빌딩과 본사건물을 연결하는 고가통로를 폐쇄했다. 땅에 발을 딛고 곧바로 동네로 들어가 부딪힘을 즐기라는 것. 구글 캠퍼스와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 모든 부딪힘들은 다운타운프로젝트의 스토리텔러들에 의해 스토리로 만들어져 전파가 된다. 홈페이지에 수많은 이벤트 소식과 후기가 바로바로 올라온다. 자포스내의 다운타운팀에는 10여명 라이터들과 사진작가들이 온라인(www.dtZEN.com)과 잡지를 통해 새로 문을 연 네일샵 주인 등 커뮤니티 사람들의 스토리를 인터뷰하고 소개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 모든 것들이 무슨 도시계획 매뉴얼이 있어서, 혹은 완장 찬 공무원들이 있어서 돌아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큰 그림은 있지만 작은 그림들과 액션플랜은 터 잡고 사는 사람들이 알아서 만들어가는 식이다. 물론 토니 셰이는 2년전 프로젝트를 처음 공개할 때 5년을 본다고 했고, 75명 직원들이 다운타운프로젝트를 돌리고는 있지만, 토니 셰이 역시 다운타운의 일개 시민일 뿐인듯 했다.
이곳 투어객들은 토니 셰이가 사는 아파트 오그덴(the Ogden)을 투어할 때면 아침 파자마 차림으로 시리얼을 씹으며 침실을 나오는 그와 종종 부딪히기도 한다. 오그덴에는 토니 셰이 외에도 자포스 직원, 예술가, 창업가들이 모여 사는데, 그는 투어객들에게 침실 빼고 다 공개한다. 그의 거실 벽에는 '도넛가게 만들자' '동물병원이 필요하다'는 등 다운타운 시민들의 소원수리를 담은 포스트잇이 수백장 붙여져 있었다. 또 저녁이면 바나 공원에서 어슬렁거리는 그와 수시로 마주치기도 한다. 마침 그가 다운타운에 없어서 기자는 그와 마주치지 못했지만, 미국기자들이 취재를 와도 길 가다 마주쳐서 인터뷰하는 식이란다.
토니 셰이의 집 거실 벽에는 다운타운 주민들의 소원수리를 담은 수백장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다.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의료, 교통, 교육도 스타트업. 도시가 스타트업 그런데 의문이 생겼다. 우연한 만남과 배움, 그리고 협업을 내재화하는 도시, 좋다. 그런데 오는 것과 사는 것은 다르지 않는가? 라스베가스는 의료, 교육이 미국에서 가장 열악한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가족이 볼 거라고는 카지노 호텔의 쇼뿐. 이런 인프라에서 살 수 있을까? 아무리 태클을 좋아하는 스타트업이라하지만, 이런 인프라까지 태클을 걸 수 있을까?
킴 쉐이퍼는 "물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고, 할 수 없는 게 있다. 시스템 전체를 우리가 뒤집을 수는 없다. 그러나 작은 스케일이지만, 이런 큰문제를 혁신할 방법은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턴테이블헬스(TurnTable Health)라는 병원. 들어가니 왼쪽으로는 주방이 있고 오른쪽엔 소파가 쭉 있고, 그 옆으로 강의실이, 다시 그 안쪽으로 들어가야 진료실이다.
이곳은 미국의료 시스템을 풍자한 랩으로 유명한 내과의사 주빈 다마니아 박사(인터넷에서는 ZDoggMD로 불린다)가 토니 셰이와 손잡고 세운 병원이자 스타트업. 그는 지난해 테드 강연에서 "좀비의사들이 미국을 접수했다. 몇시간 보험회사와 전화통을 붙잡고 있어야 하고, 또 몇시간 서류 작업이다. 실수가 나올 수밖에 없다. 병원부터 수술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보험료 비싸기로 악명 높고, 보험이 없으면 죽을 병 아니면 참는 게 낫다고 할 정도이다.
보험없이 월 80달러로 무제한 1차진료와 건강강좌를 제공하는 새로운 모델의 병원 턴테이블헬스.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그런데 이곳에서는 보험 없이 월 80달러만 내면 무제한 진료와 상담이 가능하다. 24시간 스카이프로 의사와 상담하고 요가, 건강관리, 식이요법(주방에서 만들어 보여준다)도 배울 수 있다. 이곳의 철학은 1차 진료를 가장 우선시하는 것. 매니저 엘리자베스 세발로스는 "아프기 전에 미리 돌보고, 사람들 스스로 건강관리를 하게 가르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과의 2명과 함께 헬스코치 5명이 일하고 있었다. 현재 등록고객은 150여명. 물론 큰 병 생기면 더 큰 병원을 찾아갈 수밖에 없지만 1차 진료 못 받아, 관리를 못해 큰 병 생기는 걸 생각하면 설득력 있어 보였다. 그것도 보험 없이는 감기 한번 걸려도 100달러인 미국에서 말이다.
한 블럭 지나니 고풍스러운 교회건물을 개조한 학교가 나왔다. 나인브리지(9th Bridge). 토니 셰이는 새로운 학교모델을 만들기 위해 씨티그룹 부사장이던 사촌과 교육전문가 4명으로 팀을 구성해 1년내내 교육컨퍼런스를 다니게 했다. 자포스 직원들과도 수없이 토론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학교이다. 교사들을 뽑기 위해 수도 없이 인터뷰를 했는데, 기준은 '혁신가이면서, 배움의 과정을 창조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디리머(dreamer)일 것'. 커리큘럼도 신경과학, 인지발달에 기반해서 감정표현과 조절, 기업가정신까지 가르친다. 지난해 6주에서 킨더(유치원) 학생들을 받았는데, 목표는 한국 고교과정인 12학년까지 학교로 만드는 것.
교회를 개조한 새로운 모델의 학교, 나인브리지(9th Bridge).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토니 셰이는 또 대졸자들을 공립학교로 자원봉사를 보내는 스타트업인 티치포아메리카(Teach for America)와도 협업중인데, 목표는 1000여명을 초대해 다운타운 일대에서 가르치면서 살게 하는 것.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집도 제공하면서 말이다. 자포스 직원들도 지역 초중고에서 가르치며 커뮤니티와 밀착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 한국처럼 시험으로 선발된 교사 1명이 교실 문 꼭꼭 닫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지역의 혁신가들이 공동으로 아이들 교육을 책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교통문제도 프로젝트 100(Project 100)이라는 스타트업 몫이다. 목표는 되도록이면 차 안가지고, 걸어 다니며 살게 하는 것. 필요하면 자동차든, 자전거든 공유하면서 살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기자동차회사 테슬라에 모델S 100대를 주문해놓은 상태. 단일 발주량으로는 세계 최대이다. 이미 다운타운으로 입고되기 시작했는데 군데군데 충전시설에 한두대씩 주차돼 있었다.
컨테이너파크(Container Park)는 마치 인사동 주말을 컨테이너 박스에 담아 옮겨놓은 듯했다. 40개 컨테이너 박스로 만들어진 건물들이 원형으로 늘어섰는데, 갤러리, 부티크, 카페, 레스토랑 39개가 빼곡히 입점해있었다. 원형 안쪽으로는 4층높이 미끄럼틀과 놀이터도 있다. 음악공연은 연중무휴이고, 공연장 뒤쪽으로 열차 두 칸으로 만들어진 이발소도 있다. 해가 지자 입구의 거대한 사마귀 조형물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고, 월요일인데도 수십명 아이들이 북을 두드리며 이벤트를 즐긴다. 작년 11월 만들어졌는데 벌써 30만명이 다녀갔다.
40개 컨테이너 박스로 만들어진 가족공간 '컨테이너파크'. 39개 카페, 갤러리, 부티크와 놀이시설 등이 있다.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도시가 마치 거대한 스타트업같다, 테크, 패션, 사진, 예술, 음악, 레스토랑, 바, 카페 뿐 아니라 병원과 학교, 교통, 놀이시설 등 도시의 그 뼈대까지 어떤 도시도 안해본 방법으로 혁신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수많은 스타트업들로 이뤄진, 스타트업 시티인 셈이다.
실리콘밸리 만들 생각 없다. 우리 사는 곳,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 누가 봐도 라스베가스는 도시를 창업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곳이다. 도박도시에다, 좋은 대학이 있는 것도, 돈 많은 투자자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스타트업이 몰리고 있지만 성장하면 실리콘밸리로 돌아가 버릴 수 있다. 저녁 무렵, 네온사인 안으로는 어떤 만남들이 이뤄지는지 몰라도, 네온사인 사이로 홈리스들이 쉴 곳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시청은 돈이 없어 일주일에 4일만 문을 열고, 많은 공공서비스를 중단했다. 어느 큰돈 번 젊은 재벌의 또 다른 도박일 뿐이라는 원주민들의 소외감 섞인 시선도 있다. 그런데 왜 이런 곳일까?
킴 쉐이퍼는 "토니 셰이가 여기 살고 있고, 자포스의 고향이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야 할 의무감이 있다"고 말했다. 토니 셰이는 자포스 직원이 74명이던 10년전, 본사를 샌프란시스코에서 네바다주 핸더슨으로 옮겼다. 라스베가스에서 불과 26km 떨어진 곳. 직원들 대부분이 콜센터에서 일하고, 24시간 순환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직종의 근로자들을 모으기 쉬운 곳을 선택했다. 라스베가스에 도시를 창업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바로 그와 자포스 직원들이 살아왔고, 살아갈 땅이기 때문이란다.
그렇다고, 그가 유토피아를 만들려는 것은 아니다. 킴 쉐이퍼의 설명이 인상적이다. "홈리스, 도박폐해 같은 사회문제들도 해결해달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선단체도, 비영리도 아니다. 3억5000만달러도 많은 돈이 아니다. 그리고 다운타운프로젝트는 회사이다.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모르지만 이 투자를 통해 돈을 벌어야 하고, 지속가능해야 한다. 다만 우리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고, 우리 스스로 좋은 사람들이라 믿고 있다. 물론 우리가 항상 옳을 수는 없다. 많은 경우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2년밖에 되지 않았다. 어떤 도시도 가보지 않은 다른 루트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실리콘밸리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기자가 내뱉고도 공허하게 들리는 순간이다. "물론 테크 스타트업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랩탑 하나로 20명, 30명씩 일자리를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도시를 빠르게 스케일업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실리콘밸리를 만들 생각이 없다. 이미 존재하는 어떤 것을 만들 생각이 없다."
다운타운프로젝트는 베가스테크펀드(VegasTech Fund)를 만들어 이미 68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팀리(Teamly), 무비라인(Movieline) 같은 실리콘밸리에서도 전도유망했던 스타트업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있다. 그래도 이들은 실리콘밸리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쩌면 이곳은 실리콘밸리와는 전혀 다른 궤적으로 테크 허브를 꿈꾸는지 모르겠다. 빈부격차 때문에 구글 버스를 멈춰 세우고 싶은 그런 사람들이 없는 테크 허브. 어쩌면 어떤 곳처럼 돼야 한다는 목표가 없다는 게 정답일지 모르겠다. 그냥 동네주인, 창업가, 예술가가 한 덩어리가 돼서 기적을 만드는 곳.
오늘도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인 가운데 한 사람 토니 셰이는 고층건물의 으리으리한 집무실에 앉아 있지 않을 것이다. 이 변두리 어느 골목 귀퉁이 샌드위치 가게에서 밥을 먹거나, 커피가게 구석에 앉아 일을 하거나, 길에서 만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도 이 도시의 일개 시민일 뿐이니까.
물론 그의 실험이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만드는 도시를 보면서 무릎을 치면서 깨달은 것 한 가지. 그동안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처럼 머릿속을 어지럽게 하던 그 문제에 대한 답이다. 우리가 바로 뒷북을 치고 있다는 것. 분명한 것은 우리가 지금 실리콘밸리를 따라하면 그건 짝퉁일 뿐이라는 것이다.
골드 스파이크 내부. 멀리 수십명이 파티를 열고 있다.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사진 오른쪽은 150석 규모의 극장 '인스파이어씨어터'. 왼쪽으로 연사들의 초청강연을 알리는 입간판이 서있다.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코워킹 공간 워크인프로그레스의 2층.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브런치레스토랑 이트(EAT). 카지노거리 레스토랑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던 여주인이 무이자대출을 받아 자신의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왼쪽 캠핑카처럼 쭉 늘어선 에어스트림으로 거주공간을 만드는 공사가 진행중이다.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토니 셰이가 사는 아파트에서 내려다본 거리의 건물 벽화.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이머전시아트(Emergency Arts)의 2층 전시공간.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토니 셰이가 사는 아파트 주방. 그는 침실 뺴고는 모두 공개하고 있다. 가운데 조형물은 그가 좋아하는 라마.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토니 셰이는 자포스 본사(오른쪽)와 주차건물을 이어주는 고가통로를 폐쇄했다. 직원들이 거리의 커뮤니티와 더 많이 접촉하라는 취지이다.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토니 셰이의 집 거실에 걸려 '모든 위대한 아이디어는 미친 짓에서 시작된다'는 내용의 포스터.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올해 CIO 이그제큐티브 카운슬이 선정한 전도유망한 IT리더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IT리더가 기업 IT와 외부 고객간의 거리를 좁히려고 한다고 말했다는 점이다.
닉 세웰은 CMO같은 IT리더다. 고객이 원하는 바를 파악하고, 고객 요구사항을 충족하는 제품을 전달하며, 고객을 대변해야 한다고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웰은 마케팅 매니저가 아니다. 웨스턴 유니온 비즈니스 솔루션스(Western Union Business Solutions)의 IT 프로그램 이사다. 그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송금 서비스를 제공하는 웨스턴 유니온에서 기술이 고객 만족에 없어서는 안될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세웰은 ‘기술은 확실한 시장 차별화 요소’라고 강조했다.
CIO 이그제큐티브 카운슬(Executive Council)이 전도 유망한 IT 리더들을 선정하는 프로그램인 '원스 투 워치(Ones to Watch)'는 올해 이러한 IT리더 후보 중 한 명으로 세웰을 선정했다. 세웰과 다른 많은 수상자들은 외부 고객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신제품 및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IT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14년 '원스 투 워치' 수상자로 식료품 및 약국 소매 체인인 세이프웨이(Safeway)의 IT 고객 서비스 및 지원 담당 캐리 라스무센 부사장은 "서비스에 대한 관점이 IT 중심에서 고객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이것이 지금 가장 두드러진 현상이다"고 말했다.
이 변화에는 새로운 도전들이 수반된다. 또 새로운 역량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세웰과 50명의 IT 팀원들은 웨스턴 유니온 비즈니스 고객 10만 명의 '요구사항'을 이해해, 이들이 다른 경쟁사 대신 웨스턴 유니온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전통적인 IT 부서에 새로운 '사고 방식'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고객과의 단절에서 오는 문제점 세웰은 "과거 IT 부서 직원들과 고객 사이의 거리는 너무 멀었다. 단절이 심했다는 의미다. 먼저 개발과 테스트를 담당하는 직원이 있다. 이 직원은 비즈니스 애널리스트와 협력하는 프로젝트 관리자에게 지시를 받거나 요구사항을 전달 받는다. 이 비즈니스 애널리스트는 제품 개발 담당자와 일한다. 그리고 제품 개발 담당자는 영업 담당자와 접촉한다. 이 영업 담당자가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직원이다. 다시 말해 IT에 고객이 필요로 하는 사항이 전달되기까지 5~6단계를 거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 단계를 없애고, 가능한 직접 고객과 접촉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그렇게 하고 있다. 주요 고객과 직접 대화를 한다. 또 웨스턴 유니온의 고객 상담 위원회에 IT 직원을 배정해 고객과 직접 회의를 갖도록 하고 있다.
톰슨 로이터(Thomson Reuters)의 경영 정보 시스템 부사장인 티나 게흐르트도 비슷한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게흐르트와 팀원들은 영업 회의 등 새로운 형식으로 전자상거래 고객과 접촉하고 이들에게 필요한 부분과 희망하는 접촉 방법을 파악한다.
게흐르트는 "고객의 마음과 요구사항을 더 가까이에서 파악해야 한다. 또 목표로 삼은 시장 별로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라스무센은 기술은 IT가 외부 고객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고 강조했다. 세이프웨이의 IT 부서는 쇼핑객들이 모바일 앱, 포털, 셀프 서비스 기술에서 필요로 하는 부분을 파악하기 위해 콜 센터, 현장, 기타 다양한 출처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외부 고객을 직접 상대하다 보면 기존에는 경험하지 못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예를 들어, 다양한 기술 플랫폼을 수용해야 하고, 고객마다 기술 활용 능력이 다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에 라스무센은 스마트폰과 태블릿, 데스크톱, 노트북 컴퓨터에서 공히 사용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제공하고 있다. 사용자가 기술 활용 능력과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다. 기업 외부의 고객은 내부 직원과 달리 새 시스템을 의무적으로 교육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내부 고객과 외부 고객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원스 투 워치 수상자인 소매 금융업체인 캐피탈원(Capital One)의 CIO인 짐 돌핀은 기존과 유사한 방법으로 외부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캐피탈원의 IT 직원 1,000여 명이 기술을 사용할 사용자에 구애 받지 않고 동일한 질문을 되새긴다고 설명했다. '무엇에 도움을 주는 기술인가?’, '사용자 경험은?' , '최상의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방법은?' 등의 질문이다.
돌핀은 IT 직원들이 외부 고객을 위해 기술을 개발할 때 필요한 역량과 기존 역량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현업의 요구사항을 기술과 연결해 이해하고, 커뮤니케이션 하는 능력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번에 수상한 IT리더들은 직원들이 정확한 문제를 제기하고, 고객의 반응을 탐구하며, 고객의 문제점과 목적을 파악하고, 주도적으로 고객의 수요를 충족하도록 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 모든 노력이 기존 활동의 연장선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ciokr@id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