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IN

 

논리가 터부시되고 이성이 감히 끼어들 수 없는 '감정의 왕국'이 존재할까?

 

윤리학자는 사고 실험을 자주 활용한다. 예를 들어 병원에 말기 환자가 4명 있다고 하자. 필요한 장기가 각자 다른데 기증자는 없다. 그런데 병원에 있는 건강한 남자 한 명을 죽이면 말기 환자들 모두가 필요한 장기를 얻을 수 있다. 한 명의 희생으로 네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건강한 남자를 죽여서 그 사람의 장기를 이용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올바른 일일까?

 

모두 아니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윤리학자는 한 발 더 깊이 들어가고자 한다. 왜 그러면 안 되는지 묻는다.

 

칸트의 원칙 때문에? "자신과 다른 사람의 인격을 수단으로 삼지 말고 항상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칸트의 원칙을 정당화시킬 수 있을까? 예외란 없는 것일까? 예외를 고민하게 하는 가상 시나리오를 상상해 볼 수 있다면...

 

즉, 말기 환자들이 다름 아닌 베토벤, 셰익스피어, 아인슈타인 그리고 마틴 루터 킹이라면? 이럴 경우 집도 친구도 없는 부랑자를 한 명을 희생시키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다른 예를 들어 보자. 폭발로 탄광에 광부 두 명이 갇혔다. 살릴 수 있지만 비용이 적어도 백만 달러가 예상된다. 백만 달러면 굶주려 죽는 수천 명을 살릴 수 있는 돈이다. 그 수천 명을 살리기 위해 광부들을 포기하는 행동이 윤리적으로 옳을까? 대부분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어떤가? 아니면 이런 질문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나?

 

이런 딜레마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불편한 사안을 직시하고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게 윤리학자의 임무이다. 윤리학자인 친구에게 이메일을 받았는데 두 광부에 대한 가상 질문을 한 후 비난과 항의 편지가 쏟아졌다고 한다. 또 사고 실험에 따라 학생들의 의견이 나뉜다는 것이다.

 

일부 학생은 실험의 전제가 되는 상황이 아무리 혐오스러워도 받아들이고 토론을 하는 반면 다른 학생들은 감정이 너무 격해져서 그런 가정 자체를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귀를 막고 대화 참여를 거부한다.

 

"유전적으로 특정 인종이 지적으로 더 우수할 수 없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걸 다 잊고 그런 주장이 사실이라는 전제에서 잠깐 고민해보자. 그런 상황에서는 고용차별이 문제가 될까? 등등." 내 친구는 이 문제도 강의에 자주 이용하는데 학생의 절반 정도는 이런 가상 조건을 전제로 논리적인 토론을 벌이는 데 문제가 없지만, 나머지 반은 감정적으로 반응하며 토론에 참여하기를 아예 포기한다고 한다.

 

우생학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고문은 어떻고? 엄청나게 큰 핵폭탄의 시한장치가 가방 안에 들어있다. 그 가방이 있는 장소와 시한장치를 푸는 방법을 아는 첩자가 검거됐다. 그런데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진실을 알기 위해서 그를, 아니 아무 죄 없는 그의 아이들까지도 고문하는 게 윤리적으로 용납되는가? 그 폭탄이 지구를 완전히 멸망시킬 수 있는 어마어마한 무기라면?

 

이런 달갑지 않은 가상 문제를 토론할 수 있는 논리적 사고를 매우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감정적인 반감 때문에 그런 대화 근처에도 못 가는 사람이 있다. 또 이런 사람 중 일부는 그런 종류의 대화에 참여하는 것 차체를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더 나가서는 자신들이 혐오스럽다고 느끼는 사고 실험을 진행한 윤리학자를 마녀사냥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여자는 자기 몸에 대한 완전한 권리가 있으며 그 권리는 몸 안에 있는 태아를 포함한다. 태아에게 시를 읊을 만한 의식이 있다고 해도 여자 몸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낙태를 하든 말든 그녀의 의지에 따라야 한다." '자궁 안의 시인'에 관해 논리적으로 토론할 것인가 아니면 감정 때문에 어느 방향으로도 대화는 진행될 수 없는 것인가? 여성의 권리는 절대, 절대, 절대적이라고 하며 대화를 끝낼 것인가? 아니면 낙태는 악, 악, 악이며 살인이라고 하며 더 이상의 대화는 중단할 것인가?

 

"식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을 일부러 죽이지 않고도 먹을 수 있다면 그게 왜 꼭 나쁜지 토론해 볼 수 있을까? 사고로 죽어 길에 있는 인육은 왜 안 먹을까? 물론 죽은 이를 아는 사람 입장에선 매우 끔찍하겠지만 만약에 친척도 친구도 없다고 가정하면 왜 그를 먹지 말아야 하느냐는 질문을 할 수 있다. 그게 파멸의 길이라도 되는 것일까?" 윤리학 교수와 이런 문제를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토론할 것인가 아니면 격한 감정에 울화통을 터뜨리며 강의실을 뛰쳐나갈 것인가?

난 비종교인이자 이성주의자로서 이런 질문을 논리와 이성으로 대해야 한다고 믿는다. 불편한 가상 질문에 강제로 사고하게 하는 것도 안되지만 반대로 그런 토론에 참여하는 사람을 마녀사냥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옳지 않다. 나는 요즘 사회 일부에서 이성은 개입할 수 없고 감정이 '왕'인 터부의 영역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아 두렵다. 이성이 두려움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도 못하는 영역 말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자세는 이미 종교 추종자들에게서 충분히 보아왔다. 종교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이런 '감정의 터부 영역'에 현혹된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럼 이제 가설에서 현실로 옮겨보자. 여성 생식기 절제(female genital mutilation, FGM, 할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절반 정도의 사람은 "그럼 남성 포경수술(할례)은 어떻고?"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질문에는 여성 할례 반대 운동에 제동을 걸고 훼방을 놓으려는 의도가 깔려있기 일쑤다. 만약에 "어린 남자아이에게 할례를 시키는 것도 나쁘지만 여성 할례는 훨씬 더 나쁘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대화가 중단된다. 왜냐하면 둘 다 방어 능력이 없는 아이에 대한 폭력이기 때문에 어느 게 더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어떻게 그런 고통에 감히 등수를 매기려고 할까?

 

연예계의 어느 유명인사가 소아성애(페도필리아)로 처벌을 받았다고 하자. 이럴 경우 "성기로 삽입한 건가? 아니면 손으로만 만졌나? 손으로 만진 것은 나쁜 행위지만 삽입은 훨씬 나쁘다." 식으로 얘기할 수 있을까? 어떻게 감히 소아성애 범죄에 등수를 매기려고 할까? 당신 뭐야? 숨어 사는 소아성애 가해자 아냐?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매우 난해하고 끔찍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대화하다 보면 다음과 같은 반응을 많이 보게 된다. 친구 중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유대인 국가 설립은 우리에게 필수였어. 왜냐하면 홀로코스트 이후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거든. 우리는 너무 오래 짓밟혀왔어. 그래서 앞으로 우리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보호할 거야." 그러면 나는 가끔 이렇게 대답한다. "나도 그건 이해해. 하지만 내 질문은 히틀러의 범죄 때문에 왜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이 당해야 하느냐는 거야. 왜 팔레스타인이냐고? 바이에른이나 마다가스카르를 겨냥하지 않고 그 조그만 지역을 공격하는 이유로 무슨 성서적인 핑계를 대지는 않겠지?" 그러자 아주 진지하게 한 친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리처드, 이 대화는 여기서 마치는 것이 좋겠어." 또 하나의 터부 지역에 내가 실수로 발을 디딘 것이었다. 즉 토론이 금지된 신성한 감정의 영역 말이다. 홀로코스트로 인한 극단적인 감정적 번뇌 때문에 그런 질문조차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친구 사이라도 그런 영역에 대한 대화를 나누느니 아예 중단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번 이스라엘·가자 사태에 관한 이런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가자가 입고 있는 파괴범위는 가당찮다. 가난한 사람들. 그들은 집, 가족, 모든 걸 잃었다."

이 글을 올리자마자 친 이스라엘 친구들은 날 맹렬하게 비난했다. 그래서 샘 해리스의 "하마스는 모든 유대인을 죽이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는 말을 인용하며 그의 가상 질문을 던져 봤다. 만약 처지가 바뀌어서 하마스가 이스라엘만큼의 무력을 갖고 있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까? 이스라엘의 폭격은 사실 상당히 절제 있는 행동이라는 얘기인데, 이번에는 샘과 내가 가자의 어린 아이를 겨냥한 폭격을 두둔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또 샘의 "이스라엘이 유대 국가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을 인용하자 친이스라엘 세력은 바로 샘과 나를 겨냥해 별의별 독설을 퍼부었다. 나는 크리스토퍼 히첸스의 인터뷰 내용을 인용하면서 내 입장을 설명했다. "과거 이스라엘 국가 설립을 개탄하는 동시에 지금 그 국가를 파괴하려는 것을 개탄하는 자세는 매우 논리적이다." 이 말을 한 직후 감정에 치우친 사람들은 문제의 양면을 고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런데 내 교훈이 충분치 않았다는 것이 또 하나의 트위터 논란으로 증명됐다.

"모르는 사람에게 강간당하는 것은 나쁘다. 믿었던 친구에게 강간당하는 것은 더 나쁘다." 이 문장을 읽고 내가 낯선 사람의 강간을 옹호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당신은 어디 가서 제대로 사고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나는 가상의 상황을 얘기한 것이다. 즉 믿는 사람이자 친구에게 그런 참사를 당한다면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당했을 때보다 더 배신감과 분노가 큰 게 당연하지 않겠냐는 추론이다. 예전엔 반대의 가상 질문으로 똑같은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

"데이트 상대에게 강간당하는 것은 나쁘다. 칼을 겨눈 모르는 사람에게 강간당하는 것은 더 나쁘다. 이 문장을 읽고 내가 데이트 강간을 권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어디 가서 사고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상반되는 이 두 가정은 아래 트위터에 올렸듯이 일반적인 형태이다.

"X는 나쁘다. Y는 더 나쁘다. 그렇다고 내가 X를 권장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당신은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간단한 논리적 차원의 문제였다. 어떤 것을 나쁘게 여기고 다른 것을 더 나쁘게 여긴다고 둘 중 덜 한 악을 권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둘 다 나쁘다는 것이다.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어느 한 쪽이 덜 나쁘다는 표현을 한다고 해서 덜 나쁜 쪽을 옹호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성폭행에 대한 가상 문장이 논리의 문제라는 것을 이해 못 하고 화내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내가 어느 종류의 강간이 더 극악무도한지를 정의하려고 하는 걸로 착각하는 것이다. 논리적인 면을 이해하는 일부조차도 나를 심하게 다그쳤다. 왜 감정적으로 예민한 강간을 예를 들었느냐는 것이다. 한 무신론자 블로거가 이렇게 물었다. "이렇게 했어도 되었잖아. '누구의 뺨을 때리는 것은 나쁘다. 코를 부러뜨리는 것은 더 나쁘다.' 왜 하필이면 강간이야?"

 

맞다. 코를 예로 들 수도 있었다. 내가 왜 강간을 선택했는지 설명하겠다. 절대 피해자의 경험을 비하하거나 그들에게 상처를 입힐 의도는 아니었다. 피해자들은 이미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충분히 상처를 받고 있다. "그 여자는 매우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그게 '나 좀 잡아먹으세요'가 아니면 뭐야. 하하하"라는 말을 일삼는 부류 말이다. 그럼 왜 내가 코를 부러뜨리는 예가 아닌 매우 불편한 강간을 주제로 선택했는지 이야기하겠다.

 

우선 나와 같은 이성주의자는 감정의 틀에서 벗어나 윤리적인 가상상황 설정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충분히 설명됐기를 바란다. 식인, 어둠에 갇힌 광부, 장기 기증, 낙태, 할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등은 모두 논리가 발을 디딜 수 없는 감정이 절대적인 힘을 행사하는 영역에 해당한다. '코 부러뜨리기'는 그런 영역이 아니다. 그렇지만 강간은 그 안에 존재하고 소아성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것도 사고와 토론의 장에서 배제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난 사실 위의 주제가 얼마나 터부시되는지 몰랐다. 물론 지금은 아주 잘 안다. 난 진심으로 논리와 이성에 대한 열정이 높다. 식인이나 광산에 갇힌 광부 같은 주제에서도 냉철한 논리와 이성이 배척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강간과 소아성애도 논리와 이성이 개입할 수 없는 터부의 영역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고뇌했다.

 

"강간은 강간이야." 어떤 종류의 (말하자면 친구에 의한) 강간이 다른 (말하자면 모르는 사람에 인한) 강간보다 더 나쁘다고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돼. 강간은 강간이기 때문에 어떤 강간이 더 나쁘고 덜 나쁜가에 대한 생각 조차가 부적합해. 이런 끔찍한 대화는 듣고 싶지도 않단 말이야. 데이트 강간이든 아니든 강간을 무슨 순위를 매긴다는 자체가 부당하고, 치욕적이고 말도 안 되며 그건 터부라고. 강간이라는 범죄에 차이를 둔다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짓이야.

 

만약에 이 말대로라면 판사가 강간사건을 판결할 때 어떻게 강간이 이루어졌는지 고려하지 말아야 한다. 그럼 모든 가해자에게 같은 처벌(예를 들어 종신형)을 내리자는 건가? 여자를 술에 취하게 해서 겁탈한 가해자이건, 어두운 골목에서 칼을 들이대고 여자를 강간한 정체 불명한 가해자이건? 판사가 형을 결정할 때 다양한 상황을 무시하기를 진정으로 바라는가? 나는 반대다. 그리고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적어도 내가 요즘 트위터를 보면 그런 경향이 짙은 것 같다. 그들은 내게 "죄에 정도란 없다. 정도를 논하는 것 가체가 당신이 사악한 괴물이라는 것을 입증한다"고 했다.

 

나는 이성주의자와 회의론자 입장에서는 논리와 이성이 출입 불가능한 터부 영역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가상의 식인과 도로의 시체를 먹는 것에 대한 토론이 가능해야 한다. (당연히 거부해야 하지만 적어도 토론은 하자는 것이다) 우생학도, 할례도 마찬가지다. 또 강간 관련해 나쁜, 매우 나쁜, 극심하게 나쁜 식으로 죄가 평가될 수 있는지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코를 부러뜨리거나 뺨따귀를 때리는 것도 예외는 아니다.

 

코를 부러뜨리는 것으로는 논리를 펼 수 없었던 것은 "코를 부러뜨리는 것이 뺨따귀를 때리는 것보다 더 나쁜 행위"라는 발언을 듣고 내가 따귀를 권장한다고 착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Y가 X보다 더 나쁘다"의 예치곤 너무 사소하면서도 당연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간이나 소아성애의 경우 사람들이 그렇게 당연히 여기지 않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에 바로 그 주제를 선택한 것이었다. 데이트 강간이 음침한 골목에서 벌어지는 낯선 사람에 의한 강간보다 더 나쁘든 그 반대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또 소아성애와 마찬가지로 강간이 예민한 주제라는 것을 몰라서도 아니었다. 난 예민한 주제에 대한 토론을 터부시하는 사회 현상에 맞서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가상 문제로 소아성애와 강간을 택했다. 이성주의자는 아무리 혐오스러운 주제이고 또 나중에 그 결과를 거부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강간과 소아성애가 이런 자유토론의 범위에서 점점 더 멀어져 터부시되고 있다는 것을 난 알아차렸다. 나는 자유로운 토론을 막는 모든 터부에 맞서는 차원에서 금기에 도전한 것이다.

 

그 어떤 것도 토론의 장에서는 금지돼선 안 된다. 아니, 조금 고쳐 말해보자. 만약에 어떤 주제가 대화 주제로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함께 앉아서 바로 그 얘기부터 해보자. 감성이 왕인 지역을 침범했다고 무조건 토론을 묵살하고 그들을 모욕해서는 안 된다.

 

무신론자를 포함한 일부 사람들이 강간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로 위협을 당하는 것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또 개탄스러운 사실은 무신론자 커뮤니티 내에서조차 내가 이 글에 쓴 가상 질문 같은 것이 용납되지 않는 생각과 말의 규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 농담이 아니다 - 마녀사냥당하는 것이다. 그들은 조지 오웰의 '사상경찰'에게 신성모독자로 몰려 사냥당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UK에 실린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출처: http://www.huffingtonpost.kr/richard-dawkins/story_b_5660875.html?utm_hp_ref=tw

Posted by insight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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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뇌 01

너보다 ''가 더 사랑해

    사랑에 빠진 사람의 뇌에 관한 연구   

 조 상 아     

 

  며칠째 장마와 태풍으로 뜨거운 태양을 보기 힘든 요즘이지만 비가 오든지 말든지 뜨거움 속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마 사랑에 빠진 사람일 것이다물론 지난 봄부터 혼자였던 솔로들의 눈도 '이글이글타고 있을 테지만 사랑만큼 사람을 핫(Hot)하게 만들까사랑에 대해서라면 문학이나 예술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겠으나 당연하게도 심리학에서도 사랑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이번 칼럼을 시작으로 3회에 걸쳐 심리학이 말하는 사랑특히 사랑에 빠진 ''에 대한 재미있는 연구들을 알아보자칼럼을 시작하기 앞서 넓고도 광범위하며 모호하고 불확실한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한 연구를 선정하고 이해하는 방식은 오로지 '필자마음대로라는 점을 밝힌다. ( 유감스럽게도 필자도 사랑 연구에 대한 전문가도사랑에 대한 전문가도 아니다)

 

 

      사랑은 황홀하다마치 마약처럼

 

제목이 마치 '사랑만이 이 나라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니까'와 같은 중이병의 오글오글한 비유같지만 뇌 속 사랑은 마약과 통하는 구석이 있어보인다최초의, fMRI (기능성 자기공명영상)를 활용한 사랑에 대한 연구(Bartels and Zeki, 2000) 에서 피험자들은 거대한 자석 원통(fMRI)에 누워 '사랑하는 이를 응시하라'는 행복한 과제를 받는다물론 피험자들은 연구자의 말을 인용하자면 '진정으로깊이 있게 그리고 미친듯이 사랑에 빠진사람들(낭만적 사랑 척도 7.5 이상/ 9)이다평균적으로 17초 정도 응시하는 동안 피험자들의 뇌영상을 찍어본 결과 피험자들의 도파민 작용과 관련된 뇌의 부위(대표적으로 미상핵[Caudate Nucleus]과 피각[Putamen])의 활동이 증가했다이 뇌 부위는 행복감도취감보상을 통한 만족감 등과 관련된 부위로코카인과 같은 쾌감을 주는 마약에 취한 사람이 활성화되는 부위이다물론 이런 결과를 사랑도 마약처럼 중독될 수 있겠네라는 비약을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다만 마약이라는 어휘가 주는 부정적 어감이 별로니사랑하는 사람이 더 예쁘고 건강하다는 사실를 고려해 사랑은 '마성의 보약'이다 정도로 생각해주면 적당하겠다. 

 

 

     사랑하는 마음사랑하는 몸

 

 요즘 핫한 한 성인 예능에서 한 여배우가 남자들이 사랑하는 여자을 지켜주는 것에 대해 당차게 "뭘 지켜줘문화재도 아니고!" 라고 촌철살인을 날리는 장면에 공감하면 뿜었다는 지인(?)이 또 공감해줄만한 결과도 있다. 

 

그렇다고 하신다. |

 

 사랑하는 이를 볼 때 정서체감각 그리고 여러 쾌락이 관련된 뇌의 부위대표적으로 섬엽[Insula]과 전측 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가 활성화되었는데 이는 포르노와 같은 성적 각성을 높이는 자극을 봤을 때 활성화되는 부위이기도 하다


사랑과 성은 분리시킬 수 없는 주제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인만큼 쉽게 예상되는 결과지만 뇌차원에서 여자친구를 볼 때와 야동을 볼 때의 뇌가 닮았다는 것은 좀 찜찜할지도 모른다다행스럽게도(?) 연구의 피험자는 여성이 오히려 더 많았으며 뇌의 활성화 부위가 같다고 '같은 생각'을 한다고 여기는 것은 말도 안되는 주장이다 뇌차원에서도 성적 각성과 관련된 부분에 더하여 기억에 관련된 부분 및 고차원적인 기능을 하는 여러 뇌의 부위들도 활성화되었다는 점에서 사랑은 야동보다 복잡하다는 점이 확실하니 부디 오해가 없길 바란다. 

 

 

      사랑의 성공과 실패는 한 끗 차이?

 

 앞에서 말했듯이 열정적 사랑이나 성적 자극은 전측 대상 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을 흥분시켰으나 '후측 대상 피질(Posterior Cingulate Cortex)'은 비활성화되었다그런데 놀랍게도 이 후측대상피질은 최근에 실연을 당해 슬픔에 빠진 사람의 뇌에서 활성화되는 부위이다낯선 사람의 사진과 헤어진 남자 친구의 사진을 임의로 보여줬을 때 전남친을 보고 슬픔에 빠진 여성의 후측 대상 피질의 활동이 증가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대상 피질의 앞쪽이 반짝(활성화)이는 이는 사랑에 성공한 이고 대상 피질의 뒷쪽이 반짝이는 이는 사랑에 실패한 이라는 것이다정반대의 상황이 동전의 양면처럼 뇌의 특정 부위에 앞뒤로 있다는 게 참 오묘하다구조적으로 인접했다는 점이 어떤 심리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을지는 좀 더 연구를 해보아야 할 것이다다만 먼 미래에 자신의 뇌영상을 볼 수 있는 어플이 나온다면 뇌차원에서 '그린 라이트' '레드 라이트'가 이웃해서 번쩍일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상상은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의 양면이 숨어 있는 '대상 피질' (Cingulate Cortex) | 

 

      뇌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문학에 조예가 깊지 않더라도 김춘수의 '정도는 들어 보았을 것이다시의 주제와는 완벽히 일치할지 모르겠으나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의 의미만큼이나 특별해진다그대가 사랑하는 이의 이름에 설레하는 것처럼 뇌도 '그의 이름'을 좋아하는 것 같다


사람이 일반적으로 지각할 수 없을 만큼 짧은 시간동안만 자극을 보여주면 사람은 의식적으로 무엇을 보았는지 모르지만 뇌에는 그 자극이 인식될 수 있다이러한 방법을 통해 사람의 지각의 의식할 수 없는 즉외현적(Explicit)인 것이 아닌, '내현적(Implicit)' 수준을 관찰할 수 있다 


사랑하는 이의 이름과 그냥 친구 혹은 낯선 사람의 이름을 지각할 수 없는 수준으로 짧게 보여줬을 때 다른 이름 자극에 비해 연인의 이름에 대해서만 위에서 말했던 '사랑'에 관한 뇌의 부위들이 활성화되었다다시 말해피험자는 연인의 이름이 있었는지조차도 모르지만 뇌는 연인의 이름을 인식하고 반응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사랑이라는 감정은 의식차원이 아닌 매우 자동적이고 내현적인 수준으로도 반응하는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뇌가 좋아하였다면(어디까지 비유적으로그의 이름을 불러 준다면 얼마나 좋아할까혹시 만약에 만에 하나 주변에 아직 몸짓에 지나지 않은 이가 있다면 그의 이름을 불러 새로운 사랑을 시작해보기를 권한다누가 알까전에는 내게 평범했던 사람이 그의 이름을 불렀주었더니 내게 와 ''이 되어줄지.

 

 

 

참고 문헌

   Ortigue, S., BianchiDemicheli, F., Patel, N., Frum, C., & Lewis, J. W. (2010). Neuroimaging of Love: fMRI MetaAnalysis Evidence toward New Perspectives in Sexual Medicine. The journal of sexual medicine7(11), 3541-3552.

   Bartels, A., & Zeki, S. (2004). The neural correlates of maternal and romantic love. Neuroimage21(3), 1155-1166.

Ortigue, S., Bianchi-Demicheli, F., Hamilton, A. D. C., & Grafton, S. T. (2007). The neural basis of love as a subliminal prime: an event-related 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study. Journal of cognitive neuroscience19(7), 1218-1230.

   Najib, A., Lorberbaum, J. P., Kose, S., Bohning, D. E., & George, M. S. (2004). Regional brain activity in women grieving a romantic relationship breakup. 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161(12), 2245-2256.​​

 

사진 출처

문소리: http://carsteamwashing.tistory.com/208

대상 피질: http://www.glittra.com/yvonne/neuropic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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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우리 아이를 살리는 회복탄력성 / 최성애 지음 / 해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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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과 불안과 슬픔과 분노가 만연하다. 학생들도 교사도 부모도 모두가 과열된 교육 환경 속에서 피로감을 호소한다. 직장인 8명 중 1명은 소진증후군이라는 조사도 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필요한 것은 뭘까. 

심리치유 전문가 최성애 박사는 `회복탄력성` 향상이야말로 한국인들에게 시급한 조치라고 말한다. 회복탄력성이란 고난과 역경에 대처하는 힘뿐만 아니라 자신의 에너지를 비축해 주도적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회복탄력성을 기르면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몸과 마음의 균형감 및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고, 문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해 감정적ㆍ정신적ㆍ신체적 활기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심장과학 연구이론 등을 접목해 감정과 회복탄력성의 상관관계를 설명한다. 

실생활에서 쉽게 할 수 있는 감정충전법 5가지를 소개한다. 아침마다 자신의 감정에 따라 음악을 한 곡 선정하고, 심장에 손을 대고 5초간 심호흡을 해보라고 조언한다. 또 `나는 ~라서 다행이다`라고 매일 일기를 써서 긍정적 감정을 충전하고, 문제가 있으면 거리를 두고 바라본 후 마음속에 떠오르는 통찰을 조용히 관찰해보라고 말한다.

스스로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면 그 밝은 에너지를 누군가에게 보내는 상상을 해보는 것도 좋다. 저자는 "회복탄력성이 높다는 것이 스트레스나 역경을 겪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문제를 잘 다루고 처리할 수 있는 잠재력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라면서 휴식과 재충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김슬기 기자]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4&no=105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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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나우뉴스]흔히 첫째 아이가 둘째, 셋째보다 책임감이 강하고 성향 적으로 ‘보수성’을 띤다는 사회적 인식이 있지만 이 배경이 심리학적으로 명쾌히 규명된 경우는 드물다. 

다만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 명망 높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동시대 인물인 오스트리아 출신 정신 의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출생순서가 아이의 성향 결정에 상당부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정신분석학적 이론을 지난 1928년 제시한 적이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맏이가 둘째보다 보수적 성향을 가지는 이유에 대한 설득력 있는 사회심리학적 견해가 나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 과학전문매체 라이브 사이언스닷컴은 이탈리아 밀라노 가톨릭 대학 심리학 연구진이 “맏이의 보수성은 ‘가족 시스템’과 ‘부모의 관심’에 기인 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고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연구진은 이탈리아의 96가구, 총 384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부모, 첫째아이, 둘째아이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설문내용은 가정 내에서의 본인 위치, 전통·보수에 대한 견해 등이었고 이는 성별, 나이, 종교, 신앙심, 부모의 교육 수준, 첫 아이 출생 시 부모의 헌신정도, 출생순서라는 주요 기준으로 분석됐다.

이후 산출된 최종 데이터는 흥미로웠다. 평균적으로 맏이는 둘째보다 보수적으로 나타났는데 그 이유는 보수성이 맏이가 가정에서 본인 위치를 유지하는 가장 영리하고 유리한 방법이 되기 때문이었다.

연구진의 설명에 따르면, 맏이는 평균적으로 부모의 전적인 관심과 배려를 경험하는데 이는 타 형제, 자매보다 훨씬 강한 지적 우월성과 지배적 위치로 귀결된다. 실제로 지난 2007년에는 “맏이가 둘째보다 평균 아이큐(지능지수)가 더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바 있다. 그들은 한번 정해진 가정 내 위치적 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보수적 성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연구진은 해당 연구가 이탈리아 가구에 한정되어 있고 재혼 가정과 같은 타 변수를 고려하지 않았기에 완전한 것은 아니라고 언급한다. 연구를 주도한 밀라노 가톨릭 대학 심리학과 다니엘라 바르니 연구원은 “더 많은 인구와 다양한 문화적 요소가 추가된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료사진=포토리아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별난 세상 별난 뉴스(nownews.seoul.co.kr


출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81&aid=0002423663&sid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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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소설가

2014.05.10 


새벽 외국어 학원 강의실에는 양복 차림 직장인들이 많이 보인다. 퇴근 시간 후의 각종 학원들에도 직장인 남자들이 많이 보인다. 그들은 시간을 아껴가며 경력에 필요한 자격증을 따거나, 미래에 대비해 각종 기능을 배워둔다. 외국어나 운전, 주식 투자나 경영 회계 업무뿐 아니라 인문학 강의를 듣거나 한옥 짓기를 배우기도 한다. 남자들이 그토록 많은 기능을 배우고 자격증을 따는 이유는 한 가지,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아무리 많은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으로 사회 조직의 한 자리에서 일할 자격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더 많은 자격증에 대한 필요를 느끼게 한다. 일곱 개의 자격증을 가지고 여덟 번째 자격증에 도전하는 젊은이를 본 적이 있다. 남자들이 그토록 많은 자격증을 갖고자 하는 마음 깊은 곳에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이 무능력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감추고 산다. 그들은 사회적 역할을 잘 해내야 할 뿐 아니라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해결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성장기 내내 잘한 일을 칭찬받기보다 잘못한 일에 대해 비난받고 체벌 받던 교육 환경은 그들의 불안감을 가중시켰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남자들은 자신이 저지른 실수나 실패를 본능적으로 숨기려 한다. 실직 사실을 숨긴 채 매일 출근하는 척하고, 업무에서 저지른 과오를 덮어둔 채 넘어가려 한다. 회피해온 무능력에 대한 불안이 너무 크기 때문에 실수조차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의 무능력과 마주치는 순간에는 공포심에 압도되어 자신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생각하는 기능이 마비된다. 남자들이 여자에게 괴팍하게 구는 이유도 능력 부족에 대한 불안감에서 비롯된다. 애인이 떠날까 봐 두려워하는 남자는 자신의 성적 정복 성과를 떠벌리고, 돈을 충분히 벌어다 주지 못한다고 느끼는 남자가 아내의 가계부를 검사하며 잔소리한다.


보통의 경우 능력 부족에 대한 남자들의 불안감은 근거가 없고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남자들이 능력에 대해 느끼는 막연한 불안감이 실은 아기를 출산할 수 없는 데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남자들이 아무리 많은 업적을 성취해도 생명을 탄생시키는 그 능력에는 못 미친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바로 그 능력을 가질 수 없기에 세상에 그토록 수많은 새로운 것들을 창조해 낸다. 남자들의 경쟁심은 실은 외부 세상과의 대결이 아니라 무능력에 대한 불안감과의 투쟁으로 보인다.

김형경 소설가


출처: http://joongang.joins.com/article/203/14643203.html?ref=mobile&cloc=joongang|mnews|pc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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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경희대 강연서 미래세대 향한 조언


2013.11.17

(서울=뉴스1) 이후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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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경희대 제공). © News1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에게 필요한 즐거운 것을 망각한 채 남의 행복을 위해 살기 때문입니다."

베스트셀러 '개미', '신, '뇌' 등 저자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17일 오후 2시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강연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태어나서 어린 시절부터 남의 만족을 위해 사는 행위는 반복하면서 자신의 즐거움과 만족을 위한 행위는 하지 않는다"며 "평생 남을 위해 헌신해가며 사는 것은 실수이자 과오라고 생각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 영적 세계를 충족시키는 행위이고 이기주의와는 다르다"며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이 다음 세대를 위한 과제"라고 덧붙였다.

강연에서는 자신의 신간 '제3인류'와 관련해 "인류의 미래세대와 지구에 대해 많은 성찰을 해야 할 필요가 있고 이를 반영한 것이 제3인류"라며 "미래세대를 위해 몇몇 국가만 움직이는 것은 큰 효과를 내지 못하고 모든 국가가 좋은 뜻을 가지고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어 "예전의 우리는 수동적으로 진화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반면에 지금은 여러 정보, 수단 등을 이용해 진화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한다"며 "세상이 좀 더 올바르게 바뀔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힘의 원천이 돼야 하고 그 바탕은 상상력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강연은 경희대 인문학 대중강연 '나는 누구인가'의 8회째 순서로 열렸다. 강연에는 주최 측 추산 4500여명이 참석했다.

한편 베르베르의 신작 '제3인류'는 인류 종말과 새로운 인류를 작가 특유의 상상력으로 풀어낸 장대한 규모의 SF소설이다.


출처: http://news.mt.co.kr/mtview.php?no=2013111723518238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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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입력 2014.04.26 00:45 / 수정 2014.04.26 02:24
김형경
소설가
젊은 부부가 낳은 지 3주 만에 아이를 잃는다. 아내는 저녁 식사를 하다가, 한밤중에 잠 깨어 시도 때도 없이 잃은 아기와 자기 심정을 이야기한다. 남편은 아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이야기는 해서 뭐하겠어? 그래 봤자 아이는 이미 떠났어.” 그렇게 응대하다가 나중에는 아내가 이야기를 시작할 기미만 보이면 자리를 피했다. 윌리 렘의 소설 ‘나는 알고 있다, 이것만은 진실임을’의 도미니크 부부 이야기이다.

 “어느 날 한밤중에 아내가 거실에서 죽은 아기에게 무어라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앉아 그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이런 때 거실로 나가 아내를 안고 위로해주는 놈은 머저리일 거라고. 품위 있는 인간이라면 그렇게 해야겠지만 나는 방바닥에 발을 내려놓을 수도 없었다. 침대에 앉은 채 아내의 말을 듣는 동안 우리가 꿈꾸던 인생이 유령처럼 떠나가는 듯 느껴졌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만약 그날 밤 아내에게 다가가 어깨를 감싸안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더라면 그 순간이 우리 부부의 결혼 생활을 되살리는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수없이 하곤 한다.”

 슬픔 앞에서 도미니크는 무감각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아내가 자기 심정을 이야기할 때마다 간절히 원한 것은 슬픔의 의례에 남편이 동참해주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그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는 일이 너무나 고통스러울 거라 짐작했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그는 자신이 “정말 머저리 같은 놈처럼 굴었다”는 것을 알았다.

 사회적 역할을 해내느라 버릇처럼 감정을 억압하는 남자들은 슬픔을 경험하면서 고통을 지나가는 애도 과정을 밟기 어렵다. 그 결과 더욱 고통스러운 감정 상태에 처한다. 현대 심리학자들은 남자들이 속으로 앓고 있다는 사실을 많이 이야기한다. 테렌스 리얼은 ‘비밀스러운 남성 우울증’, 제드 다이아몬드는 ‘과민성 남성 증후군’, 존 샌포드는 ‘남성적 무드’ 등으로 남자들의 특별한 감정 상태를 설명한다. 어느 날 문득, 이유를 모르는 채로 머리 위에 먹구름이 드리운 듯 의기소침하고 우유부단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럴 때 남자들은 흔히 타인을 비난하는 돌발 행동을 하기 쉽다. 전문가들마다 용어는 다르지만 제안하는 해결법은 똑같다. 친밀한 상대에게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자기 기분이 어떤 것인지 인식할 수 있어야 하고, 자기 감정을 타인에게 투사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김형경 소설가 

출처: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4540302&cloc=joongang|mnews|pc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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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43

하재근(문화평론가) | 2014.04.29

 

트라우마

 

[서울톡톡] 세월호 참사로 인해 전 국민이 트라우마 상태에 빠졌다. 특히 유가족과 단원고 학생들이 받은 상처가 심각해서 향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2차, 3차 피해가 나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현장에서 애쓴 잠수사들이나 봉사자들이 겪는 정신적 상처도 크다고 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ㆍ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란 극도의 충격, 스트레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우울증 등 정신적 장애에 빠지는 것을 뜻한다. 충격을 받은 후 분노와 우울을 느끼는 건 대부분의 사람에게 공통된 현상이지만, 충격의 강도가 같은 상태에서 트라우마의 정도 차이는 뇌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KBS 과학다큐멘터리에서 이렇게 큰일을 당하고도 그 충격에 매몰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한 정신을 갖게 된 사람들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뇌사진을 찍어 비교한 적이 있었다. 그 결과 전두엽과 변연계에서 차이가 나타났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전두엽보다 변연계가 활성화되어 있었다. 반대로 외상 후 성장을 이룬 사람들은 변연계보단 전두엽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변연계는 분노, 공격성, 공포 등 1차원적인 정서를 담당하는 영역이다. 반대로 전두엽은 이성적인 사고를 담당하는 영역이다.

그런데 대중문화와 인터넷, 스마트폰, 게임 등은 전두엽을 약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상업적인 대중문화는 깊이 있는 성찰보다는 감각적인 재미를 추구한다. 특히 요즘 유행하는 막장드라마, 자극적인 예능, 선정적인 아이돌 등은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두엽의 사려 깊은 성찰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인터넷은 자극적이고 단편적인 뉴스가 소비되는 창구다. 인터넷에선 책과 같은 깊이 있는 정보가 유통되지 않는다. 사용자들은 그저 뉴스와 뉴스, 검색어와 검색어, 블로그와 게시판 사이를 파도타기를 하듯 '서핑'할 뿐이다. 스마트폰과 SNS도 단편적인 정보가 난무하는 공간이고, 게임에선 사고기능을 아예 끈 상태에서 몰입만 이어진다.

몰입 연구자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대중문화가 바로 몰입의 최대 적이라고 했다. 대중문화는 몰입을 유도하긴 하지만 생각하면서 하는 적극적 몰입이 아닌 그저 자극의 연쇄에 빠지는 수동적 몰입이기 때문이다. 수동적 몰입은 생각하는 힘을 오히려 약화시킨다. 적극적 몰입은 전두엽을 활성화시키지만 수동적 몰입은 그 반대다.

수동적 몰입에 빠진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자극적인 소식을 찾아다니며 악플로 분노를 배설한다. 이런 식이면 우리 사회의 상처는 치유되기 어렵다. 우리가 외상 후 성장을 이루려면 우리의 경험과 현실을 제대로 성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생각하는 힘을 갖춰야 한다.

자극적인 대중문화에 정신없이 휩쓸리고 단편적인 정보에 울고 웃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독서와 성찰을 일상화하며 전두엽을 활성화시킬 때, 그때 우리는 어떤 상처에도 지지 않는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가 될 것이다.

 

출처: http://inews.seoul.go.kr/hsn/program/article/articleDetail.jsp?menuID=001002014&boardID=185825&category1=NC2&category2=NC2_14&prePageCategory1=N&prePageCategory2=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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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Paul Guilford (March 7, 1897, Marquette, Nebraska – November 26, 1987, Los Angeles) was a United States psychologist, best remembered for his psychometric study of human intelligence, including the distinction between convergent and divergent production.

Developing the views of L. L. Thurstone, Guilford rejected Charles Spearman's view that intelligence could be characterized in a single numerical parameter and proposed that three dimensions were necessary for accurate description: operations, content and products.


Guilford's careerEdit

Guilford graduated from the University of Nebraska before studying under Edward Titchener at Cornell. In 1938 Guilford became the 3rd President of the Psychometric Society, following in the footsteps of its founder Louis Leon Thurstone and of EL Thorndike who held the position in 1937. Guilford held a number of posts at Nebraska and briefly at the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In 1941 he entered the U.S. Army as a Lieutenant Colonel and served as Director of Psychological Research Unit No. 3 at Santa Ana Army Air Base. There he worked on the selection and ranking of aircrew trainees as the Army Air Force investigated why a sizable proportion of trainees was not graduating.

Promoted to Chief of the Psychological Research Unit at the U.S. Army Air Forces Training Command Headquarters in Fort Worth, Guilford oversaw the Stanine (Standard Nine) Project in 1943, which identified nine specific intellectual abilities crucial to flying a plane. (Stanines, now a common term in educational psychology, was coined during Guilford's project). Over the course of World War II, Guilford's use of these factors in the development of the 2-day Classification Test Battery was significant in increasing graduation rates for aircrew trainees.

Discharged as a full colonel after the war, Guilford joined the Education faculty at the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and continued to research the factors of intelligence. He published widely on what he ultimately named the Structure of Intellect theory, and his post-War research identified a total of 90 discrete intellectual abilities and 30 behavioral abilities.

Guilford's 20 years of research at Southern California were funded by the National Science Foundation, the Office of Education of the former Health, Education and Welfare Department, and the Office of Naval Research. Although Guilford's subjects were recruits at the Air Force Training Command at Randolph Air Force Base, San Antonio, the Office of Naval Research managed this research.

Guilford's post-war research led to the development of classification testing that, modified in different ways, entered into the various personnel assessments administered by all branches of the U.S. Armed Services. Thus, in a generic manner, all U.S. Military qualifying exams of the 1950s, 1960s, and 1970s may be said to have descended from Guilford's research.

Guilford's Structure of IntellectEdit

According to Guilford's Structure of Intellect (SI) theory (1955), an individual's performance on intelligence tests can be traced back to the underlying mental abilities or factors of intelligence. SI theory comprises up to 150 different intellectual abilities organized along three dimensions—Operations, Content, and Products.

The Structure of Intellect theory advanced by Guilford was applied by Mary N. Meeker for educational purposes.

Operations dimension

SI includes six operations or general intellectual processes:

  1. Cognition - The ability to understand, comprehend, discover, and become aware of information.
  2. Memory recording - The ability to encode information.
  3. Memory retention - The ability to recall information.
  4. Divergent production - The ability to generate multiple solutions to a problem; creativity.
  5. Convergent production - The ability to deduce a single solution to a problem; rule-following or problem-solving.
  6. Evaluation - The ability to judge whether or not information is accurate, consistent, or valid.

Content dimension

SI includes four broad areas of information to which the human intellect applies the six operations:

  1. Figural - Concrete, real world information, tangible objects -- things in the environment. It includes visual: information perceived through seeing; auditory: information perceived through hearing; and kinesthetic: information perceived through one's own physical actions.
  2. Symbolic - Information perceived as symbols or signs that stand for something else, e.g., Arabic numerals, the letters of an alphabet, or musical and scientific notations.
  3. Semantic - Concerned with verbal meaning and ideas. Generally considered to be abstract in nature.
  4. Behavioral - Information perceived as acts of people. (This dimension was not fully researched in Guilford's project, remains theoretical, and is generally not included in the final model that he proposed for describing human intelligence.)

Product dimension

As the name suggests, this dimension contains results of applying particular operations to specific contents. The SI model includes six products, in increasing complexity:

  1. Units - Single items of knowledge.
  2. Classes - Sets of units sharing common attributes.
  3. Relations - Units linked as opposites or in associations, sequences, or analogies.
  4. Systems - Multiple relations interrelated to comprise structures or networks.
  5. Transformations - Changes, perspectives, conversions, or mutations to knowledge.
  6. Implications - Predictions, inferences, consequences, or anticipations of knowledge.

Therefore, according to Guilford there are 5 x 3 x 6 = 90 intellectual abilities or factors (his research only confirmed about three behavioral abilities, so it is generally not included in the model). Each ability stands for a particular operation in a particular content area and results in a specific product, such as Comprehension of Figural Units or Evaluation of Semantic Implications.

Guilford's original model was composed of 120 components (when the behavioral component is included) because he had not separated Figural Content into separate Auditory and Visual contents, nor had he separated Memory into Memory Recording and Memory Retention. When he separated Figural into Auditory and Visual contents, his model increased to 5 x 5 x 6 = 150 categories. When Guilford separated the Memory functions, his model finally increased to 180 factors.[1]


출처: http://en.m.wikipedia.org/wiki/J._P._Guilf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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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부 아니면 전무의 사고 

생활 사건의 의미를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식의 이분법적 범부로 나누어 둘 중의 하나의 생각하는 오류입니다.

예) '완벽하게 성공하지 못하면 실패한 것이다'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싫어하는 것이다'

 

- 과잉일반화  

한두 번의 사건에 근거하여 일반적인 결론을 내리고 무관한 상황에도 그 결론을 적용하는 오류입니다.

예) 한두번 시험에 떨어진 사람이 '나는 어떤 시험을 치든지 나의 노력이나 상황과는 상관없이 실패할 것이 뻔하다'라고 일반화하여 생각합니다.

 

- 의미 확대와 의미 축소

어떤 사건의 의미나 중요성을 실제보다 지나치게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오류입니다.

예) 불괘한 감정을 자주 느끼는 사람은 자신의 단점이나 약점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확대해서 해석하여 심하게 걱정하면서, 장점이나 강점은 별 것 아닌 것으로 과소평가하는 예를 들 수 있습니다.

 

- 정신적 여과 또는 선택적 추상화

어떤 상황에서 일어난 여러가지 일중에서 일부만을 뽑아 상황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입니다.

예) 어떤 교수가 자신의 강의를 열심히 듣는 대다수의 학생보다, 졸고있는 서너 명의 학생엥 근거하여 '내 강의가 재미없나 보다, 나는 강의를 잘 못한다.'하고 결론내리면 정신적 여과 또는 선택적 추상화에 해당합니다.

 

- 개인화

자신과 무관한 사건을 자신과 관련된 것으로 잘못 해석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한 좀 더 타당한 설명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이 부정적으로 행동하다는 믿는 오류입니다.

예) 화장실에 갔다가 사무실로 들어오는데 동료들이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 '나에 대해 뭔가 얘기하고 있었던 것 아냐?'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왠지 불쾌해집니다.

 

- 재앙화

파국화라고도 하는데. 미래에 대하여 좀 더 현실적인 다른 고려도 없이 부정적으로 예상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 화를 잘 내지 못하고 억누르는 사람들중에는 '내가 한번 화를 내면 폭발하고 말거고, 그렇게 되면 난 전혀 제어하지 못하고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말거야.'라고 생각하는 적지 않습니다.

 

-감정적 추론

충분한 근거도 없이 막연히 느껴지는 감정에 근거하여 결론을 내리는 오류입니다.

예) '내가 그렇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사실임에 틀림없다', '불길한 느낌이 들어 일이 잘못된 게 틀림없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독심술적 오류

감정적 추론이 자신의 감정에 근거해서 판단을 내렸다면, 독심술적 오류는 충분한 근거없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추측하고 단정하는 것입니다.

예) '그는 내가 이 계획의 기초적인 것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믿는 것입니다.

 

-잘못된 명명의 오류

덜 위험한 결론으로 이끄는 좀 더 합리적인 증거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과장되거나 부적절한 명칭을 사용하여 기술하는 것입니다.

예) '나는 실패자야.','그는 성격이상자이다.'와 같이 명명하는 것입니다.

출처: http://blog.naver.com/yjklove31?Redirect=Log&logNo=10166608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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