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스마트홈] [special report 2]“주인님 오신다 불 넣고 목욕물 받자” 글로벌 기업 격전지 부상한 스마트홈
Insights & Trends/Technological/Scientific 2014. 9. 15. 10:59해킹 등 보안 문제 해결되지 않으면 자칫 엄청난 재앙 될 수도
# 1.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A씨는 아파트 안으로 들어선다. 별다른 동작이 없어도 엘리베이터가 자동으로 내려온다. 굳이 층수를 누를 필요가 없다. 주변 센서가 A씨를 인식하기 때문이다. A씨가 스마트워치에 “커밍 홈”이라고 말하면 이내 집 안 조명과 에어컨이 자동으로 켜진다. “목욕”이라고 말하자, 목욕물이 채워진다. 씻은 후 소파에 앉으면 TV가 자동으로 켜지면서 원하는 채널을 맞춰준다. A씨는 잠시 외출을 위해 집을 나선다. 스마트워치에 “고잉 아웃”이라고 말한다. 조명, TV, 에어컨 등은 일제히 꺼진다. 조용히 있던 로봇청소기는 A씨가 나가자 청소를 시작한다.
# 2. 경기도 용인시 동천동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김영희 씨(42)는 전기요금 확인을 위해 벽에 부착된 ‘월패드(Wall Pad)’를 본다. 월패드 에너지 조회 기능을 이용하면 지난 1년간 전기 사용량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달 예상 사용량, 요금, 단지 평균 사용량도 점검 가능하다. 김 씨는 “전기를 얼마나 사용하는지 정확히 몰랐다. 이 시스템을 이용하니 전기요금을 한눈에 비교해 금액까지 알 수 있다. 전기를 아껴 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직장인 김민희 씨(36)는 최근 홈네트워크 기능이 갖춰진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는 간혹 급하게 출근하느라 가스밸브를 잠그지 않고 집을 나선 경우가 있었다. 이사한 뒤에는 스마트폰을 통해 난방, 가스밸브, 에어컨, 전등까지 제어할 수 있어 안심이다. 김 씨는 “맞벌이를 하다 보니 출근하느라 바빠 전등을 켜고 나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젠 밖에서 끄면 된다. 무엇보다 가스밸브 걱정을 안 해서 너무 좋다”고 만족해한다.
‘#1’은 향후 몇 년 안에 상용화 가능한 스마트홈 가상 시나리오다. ‘#2’는 현재 국내 일부 아파트에서 실제로 선보인 홈자동화 서비스다.
사물인터넷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스마트홈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스마트홈은 집과 IT 기술을 결합해 인간 중심의 삶을 실현하는 주거 환경을 말한다. 이를 위해 가구, 가전 등 집 안 모든 기기는 네트워크로 연결된다.
집 밖에서 사용자는 냉장고에 채팅 등 여러 형태로 “우유와 사과가 남아 있나?”라고 물어볼 수 있다. 냉장고는 “우유와 사과 모두 다 떨어졌습니다. 주문을 할까요?”라고 답한다. 사용자는 “우유 1.5ℓ 2개, 사과 1박스를 주문해”라고 명령 내린다. 즉, 집 안에 있는 모든 기기가 지능을 갖고 사용자와 소통하는 시스템이 바로 스마트홈이다.
원래 스마트홈이란 ‘자동화를 지원하는 개인 주택’을 의미했다. 홈오토메이션(홈자동화)이란 용어로 통용됐다. ‘홈자동화’는 이미 1980년대 말부터 등장했던 개념이다.
최근 스마트홈 개념은 홈자동화라는 한정된 의미에서 벗어났다. 에너지관리, 엔터테인먼트, 보안 등을 결합한 통합플랫폼 형태로 진화 중이다. 관련 산업 범위도 넓어졌다. 홈자동화는 물론, 스마트 가전, 스마트홈 헬스케어, 스마트홈 보안, 스마트 그린홈, 홈엔터테인먼트 등을 포함한다.
1. 스마트홈 어디까지 왔나
성장기 지나 성숙기 초입 단계
“스마트홈 서비스는 2~3년 내 대중화가 된다. 과거 10여년간 있었던 스마트홈 산업 변화보다 앞으로 2~3년 안에 펼쳐질 변화와 혁신이 훨씬 빠를 것이다.” (홍원표 삼성전자 미디어솔루션센터(MSC) 사장 겸 한국스마트홈산업협회장)
스마트홈 산업은 2000년대 초반 인터넷 보급과 함께 꿈틀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낮은 활용성, 소비자 인식 부족 등의 이유로 확산이 더뎠다. 스마트홈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올해 1월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부터다. ‘2014 CES’에서 가장 히트한 상품은 ‘사물인터넷(IoT)’이다. 일종의 ‘사물인터넷 홈솔루션’인 스마트홈은 이때부터 더욱 주목받았다.
스마트홈 산업은 어디까지 발전했을까.
한국스마트홈산업협회는 스마트홈 산업 발전 정도를 4단계로 나눠 분석했다.
2006년까지 ‘수요자 일부만 서비스를 인식’하는 ‘도입 1기’를 거쳤다. 2007년과 2008년은 ‘수요자 상당수가 서비스 인식하나 실제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 단계’인 ‘도입 2기’에 해당된다. 이후 2009년부터 ‘시장 규모가 조금씩 확장’되는 ‘성장기’에 진입했다. 협회는 지난해 스마트홈 산업이 성장기에 본격적으로 안착했다고 분석한다. 몇 년 뒤엔 ‘서비스 이용이 일상화’되는 ‘성숙기’에 접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최상만 한국스마트홈산업협회 기획조정실장은 “현재 스마트홈 기술 완성도는 약 40% 정도 진행됐다. 올해는 스마트홈 산업 성장기 말기에서 성숙기 초기 사이 단계다. 최근 일부 아파트를 보면 원격으로 에어컨, 조명, 보일러, 냉장고를 제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스마트홈 산업 시장 규모도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협회는 스마트홈 국내 시장 규모가 지난해 6조8908억원에서 2017년 18조2583억원으로 늘 것으로 분석했다. 다만, 지난해 시장 규모는 스마트TV 등 기존 가전제품 시장과 보안 시장 등에서 중복되는 부분을 더한 수치다. 이를 제외하면 아직 국내 스마트홈 산업 시장 규모는 50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다양한 사업자간 시장 선점 경쟁 치열
올해 1월 IT 업계에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구글이 스마트홈 벤처기업 ‘네스트랩스’를 인수한 것. 인수 사실보다 놀라운 것은 인수 금액이다. 자그마치 32억달러(당시 3조4000억원)나 쏟아부었다. 지난 2006년 유튜브를 인수할 때보다 2배 비싼 가격이다. 네스트랩스는 ‘아이팟’ 개발에 일조했던 토니 파델이 애플을 나와 세운 회사다. 자동 온도조절장치 ‘서모스텟’, 화재경보기 ‘프로텍트’를 만들어 판매한다. 회사 설립이 4년이 채 되지 않았다.
구글이 이 같은 신생 벤처기업에 3조원 이상 투자한 것은 스마트홈 가능성을 높게 봤기 때문이다. 업계는 이번 인수를 계기로 구글이 스마트홈 시장 공략에 본격 나섰다고 분석한다.
스마트홈 시장이 IT(정보기술) 업계 새로운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 각지 IT 투자자들은 스마트폰 다음 큰 투자처로 스마트홈 시장을 노린다.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드인 등 여러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기업에서 일한 적 있는 엘먼 파트너는 “스마트홈은 10년 전 SNS와 여러 측면에서 비슷하다. 스마트홈 투자가 마침내 말이 되는 얘기가 됐다”고 말한다.
스마트홈은 사업 범위가 워낙 다양하다. 가전, 건설, 통신, IT, 에너지, 헬스 등 여러 사업을 망라한다. 다양한 사업자들 간에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국내는 가전 기업이 중심이다. 삼성전자는 4월 2일 한국, 미국, 영국 등 11개국에서 ‘삼성 스마트홈’을 공식 출시했다. 삼성 스마트홈은 여러 가전제품과 조명 등 생활제품을 스마트폰 등으로 제어·관리 가능한 서비스다. LG전자는 지난 4월 27일 스마트홈 구축 일환으로 ‘홈챗’을 상용화했다. 홈챗은 메신저와 스마트 가전기기를 결합한 서비스다. 네이버 메신저 ‘라인’을 기반으로 가전제품을 원격 제어할 수 있다. 소비자가 “휘센 에어컨 뭐해?”라고 메시지를 보내면 “현재 온도 27도, 희망온도 23도, 냉방 세기는 강풍으로 운전 중이에요”라고 답변한다.
이 외에 SK텔레콤, KT와 같은 통신사업자와 에스원, ADT캡스 등의 보안 업체 또한 전략적으로 스마트홈 시장에 군침을 흘린다.
글로벌 기업들도 스마트홈 시장에 잇따라 뛰어들었다. 구글은 지금까지 약 150개가량 관련 기업을 인수했다. 구글은 스마트홈을 구축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거의 갖췄다는 평가다. 구글은 스마트홈 마지막 퍼즐을 맞추기 위해 네스트랩스를 사들였다.
애플도 만만찮다. 지난해 11월 홈자동화 관련 기술 특허를 출원했다. 일각에선 애플이 내년쯤 스마트워치를 홈자동화 중심 기기로 활용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글로벌 가전 업체인 BSH(보쉬지멘스), GE(제너럴일렉트릭) 등도 스마트홈 시장 참여를 선언했다. 보쉬와 지멘스가 합작 설립한 소비자가전 업체 BSH는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을 하나의 앱으로 통제하는 ‘커넥트홈’ 서비스를 선보였다.
GE는 백색 가전, 가정 내 수도 관리 시스템, 소형 생활 가전, 조명 등 다양한 방법으로 스마트홈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쿼키’와 같이 스마트홈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것도 아끼지 않는다. 쿼키는 GE의 투자를 받아 지난해 말 ‘에그마인더(Egg Minder)’란 제품을 선보였다. 70달러짜리 달걀 받이인 에그마인더는 달걀이 처음 놓인 시간을 추적한다. 쿼키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윙크(Wink)’를 통해 오래되거나 상한 달걀을 알려준다.
삼성이노베이션뮤지엄에 설치된 ‘삼성 스마트홈’ 시연 공간. <삼성전자 제공>
킬러서비스 없이 대중화 어려워
한국스마트홈산업협회는 일반 소비자 320명을 대상으로 ‘스마트홈 유용성’ 설문조사를 했다.
결과가 흥미롭다. 절반에 가까운 소비자들은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좋다”고 응답했다. 주목할 것은 ‘없어도 되지만’이란 단서다. 소비자 욕구가 확실히 담보된 서비스는 아니란 얘기다.
스마트 가전기기는 원격 제어 시스템을 탑재했다는 이유로 가격이 껑충 뛰어올랐다. 과연 소비자들이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괜찮다”는 서비스에 몇백만원을 얹어가며 지갑을 열까.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최근 스마트홈 초기 기능을 탑재한 프리미엄 가전 시리즈를 선보였다. 냉장고, 식기세척기, 오븐레인지 등 주방 세트로 구매하면 1000만원이 훌쩍 넘는다.
결국 소비자 니즈를 끌어내는 것이 큰 숙제다. 이를 위해선 ‘킬러서비스’ 개발이 급선무다. 구글이 거액을 들여 네스트랩스를 인수한 이유는 획기적인 기술 때문만이 아니다. 네스트랩스는 팔리는 제품을 만들었고 구글은 그 능력을 높이 샀다. 스마트한 온도조절기를 필요로 하는 소비자는 분명 존재했다. 네스트랩스는 세련된 솜씨로 적절한 가격의 제품을 선보였다.
한 전문가는 “국내 스마트홈 관련 기업들이 지금처럼 기술만 앞서 가려고 하고 소비자 욕구를 등한시해선 발전이 없다. 좀 더 소비자 관점에서 접근하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통일된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삼성전자 냉장고와 LG전자 세탁기는 이대로 가면 영원히 서로 호환되지 않는다. 스마트홈 플랫폼 표준화를 위한 세계 각 기업 컨소시엄 구성을 보면 양측 신경전은 잘 드러난다. 삼성전자는 밀레, 도이치텔레콤, EON 등과 함께 스마트홈 플랫폼 개발연합체 ‘키비콘(QIVICON)’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LG전자는 키비콘에 참여하지 않는 시스코, 보쉬 등을 모아 유사한 연합체를 만들었다. 삼성과 LG 제품이 서로 대화하는 통합플랫폼이 없는 한 국내 스마트홈 산업 발전은 요원할지도 모른다.
4. 해킹·빅브라더 우려도
개인화될수록 털리기 쉬운 역설
스마트홈을 바라보는 장밋빛 전망이 줄줄이 나오고 있지만, 보안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스마트홈은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사생활 정보 데이터화로 인한 ‘빅브라더’ 등장 우려도 제기된다.
미국 보안 업체 프루프포인트에 따르면, 지난 1월 ‘씽봇(Thingbot)’이라는 해킹툴이 스마트홈 네트워크에 침입해 원격으로 10만여개의 스마트TV, 냉장고 등 가전제품에 설치된 것으로 파악됐다. 스마트 가전은 피싱과 스팸메일을 전 세계로 발송하는 데 이용됐다. 사물인터넷이 해킹 대상이 된 첫 사례였다. 지난해 8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해커콘퍼런스에선 닌텐도의 구형 휴대폰 게임기를 이용해 2010년형 토요타 프리우스와 포드 이스케이프가 해킹되는 시범을 보였다. 해커가 원격으로 핸들과 브레이크를 마음대로 조종하자 운전자는 속수무책이었다. 스마트홈에서도 보일러나 에어컨을 제멋대로 작동시키면 노약자나 영유아가 화를 입을 수 있다. 보안카메라(CCTV)나 출입문이 해킹되면 아날로그식 문단속만도 못하게 된다. 특히 사물인터넷에 연결된 의료기기가 해킹되면 환자의 목숨도 위협받는다. 당뇨병 환자에게 자동으로 약물을 투여해 주는 인슐린 펌프를 해킹해 약물을 과다 투여할 수 있다.
집 안에서의 은밀한 사생활이 데이터로 낱낱이 저장되는 것도 꺼림칙하다.
스마트홈에선 사용자가 냉장고 문을 여닫거나 TV 채널을 돌리는 등의 특정 명령을 내릴 때마다 그 기록이 통합서버로 전송된다. 해커가 이 시스템에 침입하면 누가 언제 집에 들어오고 나가는지, 무슨 프로그램을 보는지 등을 실시간으로 훤히 알 수 있다. 아직은 스마트홈이 초기 단계지만, 서비스가 고도화될수록 스마트홈이 수집하는 개인정보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해진 시간에 자동으로 개인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사용자 이용 정보를 저장, 분석한 뒤 패턴화하는 과정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서비스가 개인화되고 편리해질수록 보안 위협에는 취약해지는 셈이다.
업계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홍원표 사장은 지난 4월 수원 삼성이노베이션뮤지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 부분을 주요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 사장은 “스마트홈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서비스 이용 목적을 공개하고, 사용자 동의를 구하는 등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스마트홈의 보안을 담보할 만한 근본 해법은 제시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카드·통신 업계 개인정보 유출 사태 등 최근 빈발하는 해킹 피해들도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쳤지만 결국 ‘털렸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요구되는 배경이다.
산업연구원은 지난 4월 발표한 ‘사물인터넷시대의 안전망, 융합보안산업’ 보고서에서 보안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 수립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센서, CCTV 등 현재 스마트홈 관련 단말기는 기껏해야 비밀번호 정도의 낮은 보안 수준만 적용된 것이 대부분이어서 해킹에 취약하다는 것. 스마트홈 등 사물인터넷 발달에 따른 보안 피해 규모가 내년에는 13조4000억원, 2030년에는 26조7000억원까지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황원식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사물인터넷 기술이 확산되면서 보안 취약성도 증가하고 있다”며 “기업의 융합보안 관제 시스템 도입과 보안전문가 채용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승태·노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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