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남규 교수의 창조경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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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경제의 미래 성장률에 대한 예측치들이 계속 나빠지고 있다. 지난 1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3.7%로 전망했던 국제통화기금(IMF)은 불과 3개월 만에 다시 3.3%로 하향 조정했으며, 내년 경제성장률 역시 3.9%에서 3.5%로 수정하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미국 농무부가 지난 10일 발표한 '전 세계 거시경제전망' 자료를 보면 2021년의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예상치는 2.91%로 낮아지고, 2030년은 예상 GDP 성장률이 2.06%에 불과하다. 

경제성장률을 이끄는 매우 중요한 동력은 바로 기업이다.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경제시스템을 구성하는 개별 주체들은 각각 자신들이 맡은 본질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 그렇다면 기업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70~80년대 대학에서는 기업은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조직이라고 가르쳤다. 기업의 본질을 이렇게 알고 있는 경영자들은 매년 비용절감 혹은 매출 증대라는 경영목표를 수립하고,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조직관리에 혼신의 노력을 다 한다. 그런데 이렇게 기업을 경영하면 과거에 하던 일을 좀더 효율적으로 할 수는 있지만, 새로운 성장 동력들을 창조할 수는 없다. 

요즘 대학에서는 기업의 본질은 소비자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삶을 창조(New Life Creation)하고, 이런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치(Value Creation)를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강의한다. 과거 대비 소비자의 생활방식을 얼마나 다르게 변화시켰고, 이를 통해서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느냐가 매우 중요한 관건이다. 

매년 10% 이상의 매출 성장률을 유지하는 아마존(Amazon)이 대표적인 예이다. 아마존은 최근 오프라인에서의 실질적인 소비자의 삶과 온라인의 편의성을 결합시키는 대시버튼(Dash Button)이라는 새로운 혁신을 창조하였다. 소비자들이 생수, 화장지, 세제 같은 생필품들은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브랜드를 반복적으로 구매하고, 구매량 역시 거의 비슷하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온라인 구매 방식을 새롭게 혁신시켰다. 

생필품을 수납하는 공간에 해당 브랜드가 인쇄된 버튼을 부착해 두고,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모든 구매 및 결제 과정이 자동적으로 처리되고, 해당 생필품이 정해진 시간에 집으로 배달되는 방식이다. 오프라인 구매 방식을 온라인으로 혁신했던 아마존이 이번에는 온라인 구매방식을 혁신하기 위해서 반대로 오프라인 구매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소비자의 새로운 삶을 창조해야 하는 기업의 본질적 역할이 세계의 어떤 기업들보다 특히 한국 기업에 더욱 중요하다.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하고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증가할수록, 경제의 본원적 생산성은 증가하지만 일자리는 계속 감소하기 때문이다. 수출시장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들은 국내는 물론 세계 시장의 소비자들을 위한 혁신적인 가치와 삶을 창조하지 않으면, 본원적인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박남규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5&no=365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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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피자가 운영하는 머핀과 커피 프랜차이즈 '마노핀'은 주로 어디에 위치할까. 답은 강남도 강북도 아닌 '지하철역 안'이다. 

2008년 10월 미스터피자를 운영하는 MPK그룹이 사업 다각화를 위해 론칭한 마노핀은 2009년 4월 '지하철 역사 매장'이라는 독특한 운영 방식을 채택했다. 2015년 총 48개로 매장을 확장한 마노핀은 카페형 직영매장 7개를 제외한 나머지 41개 전 매장을 지하철역 안에 두고 있다. 

시작은 '저렴한 임차료'와 '고정 유동 인구 확보'라는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한 상권을 찾으면서부터였다. 마노핀이 생길 당시 이미 포화 상태라고 여겨졌던 커피와 베이커리 시장에서 돌파구는 결국 품질 대비 저렴한 가격이었기 때문. 

MPK그룹 측은 "저렴한 가격에 커피와 머핀을 제공하겠다는 목표 아래 임차료가 저렴하고 고정 유동 인구로 수익 확보가 가능한 상권을 모색하다 보니 지하철역을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잠실역점 고속터미널역점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점 사당역점 등 약 6.6~9.9㎡(2~3평) 내외 작은 매장에서 월평균 매출이 4000만~5000만원까지 나오는 곳이 속출하면서 지하철 역사 매장 운영은 마노핀의 고유 전략이 됐다. 기본적으로 출퇴근지여서 고정 유동 인구가 있었고, 진출 초기에는 역사 내에 외식 브랜드가 들어오는 사례가 많지 않아 경쟁력도 있었다.  

[박인혜 기자]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5&no=263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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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라인] 구글의 배신

궁금하다. 왜 구글이 알뜰폰 시장에 진출할까. 한국에선 5년째 적자 사업인데 말이다. 돈 안 되는 알뜰폰에 베팅하는 이유는 뭘까. 남 몰래 경천동지할 비즈니스 모델이라도 발견한 것일까.

지난주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5’ 관련 뉴스가 쏟아졌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받은 뉴스는 ‘베일을 벗은 갤럭시S6’였다. 하지만 개인적인 토픽은 ‘구글의 알뜰폰 시장 진출’이었다.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다.

구글은 이미 휴대폰 제조사 모토로라를 인수했다. 마지막 미지의 땅인 네트워크(알뜰폰) 시장까지 밟으면 그야말로 ‘구글왕국’을 완성한다. ‘C(콘텐츠)-P(플랫폼)-N(네트워크)-D(단말)’로 이어진 정보통신 생태계를 모두 섭렵한 유일무이한 기업이 된다. 구글이 노리는 것이 이런 명예로운 타이틀일까. 아닐 것이다. 오히려 구글은 휴대폰 제조사, 통신사 등과 협업을 지향했다. 그것이 훨씬 실리적이었기 때문이다. 괜히 통신사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표변했다.

구글 변심에 문득 떠오른 기업이 있다. 바로 동영상 스트리밍(VoD) 서비스 업체 넷플릭스다. 넷플릭스도 일종의 배신을 했다. 지난 2013년 자체 제작한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를 전격 발표했다. 콘텐츠 유통만 하던 플랫폼 사업자가 콘텐츠 제작에도 직접 뛰어들자 콘텐츠 제작사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넷플릭스는 그 이후 아예 대형 스튜디오까지 갖추고 히트작을 쏟아냈다.

넷플릭스가 직접 콘텐츠 제작에 나선 이유는 분명했다. 플랫폼 사업을 더 잘하기 위해서였다. 자체 콘텐츠를 보유하면서 콘텐츠 사업자와 판권료 협상에서 유리해졌다. 불안한 콘텐츠 외부 의존 메커니즘에서도 벗어났다. 그 결과, 이젠 말 안 듣는 스튜디오에 계약하지 않겠다며 으름장까지 놓을 수 있게 됐다. 전통적인 미디어 시장 질서가 붕괴됐다.

구글 알뜰폰 진출도 이런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 구글이 보유한 유튜브, 검색 등의 서비스를 더 잘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는 것이다. 유튜브 동영상 소비가 늘어나려면 통신료가 내려가야 한다. 유튜브, 검색 이용자가 늘어나면 구글은 광고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결국 구글 전략은 뻔하다. 알뜰폰 사업으로 통신료 인하 경쟁을 촉발하는 것이다. 알뜰폰 자체로 돈을 벌기보다는 핵심 비즈니스를 위해 투자하는 개념이다. 구글이 ‘안드로이드 OS’를 공짜로 뿌린 것과 똑같은 원리다.

구글발 통신 시장 균열은 예상외로 빠를 수 있다. 구글 알뜰폰 진출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알뜰폰 업체 주가가 일제히 올랐다. 구글 위력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그동안 알뜰폰이 뭔지도 몰랐던 사람들도 알뜰폰으로 대거 몰릴 것이다. 통신사들이 이를 버텨낼 재간이 있을까.

통신사의 생사는 ‘도망가는 속도’에 달렸다. 꼬리 물기 게임과 비슷하다. 구글이 시장을 잠식해오는 속도보다 통신사의 신시장 개척 속도가 빨라야 살아남는 게임이다. 이번 MWC에서 선보인 사물인터넷(IoT)과 같은 새 비즈니스에 ‘제트 엔진’을 달아야 하는 이유다. 이젠 우물쭈물하면 바로 아웃이다. 몰락한 노키아 그림자가 통신업계에도 깊게 드리우고 있다.

장지영 정보통신방송부장 jyajang@etnews.com

출처: http://www.etnews.com/20150312000165?koost=worst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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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앤비, 개인 숙박 100만개 `공유혁명`

SNS로 정보교환…모바일로 편리한 결제
10조 유치해 기업가치 24조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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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앤비 CEO 브라이언 체스키.

2008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출신의 평범한 20대 젊은 산업기술 디자이너였던 브라이언 체스키(33)는 달랑 1000달러가 든 통장 하나를 갖고 샌프란시스코로 직업을 찾아 무작정 이사했다. 

가난했던 그는 아파트 임대료조차 내기 힘들자 생존을 위한 고육책을 짜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 거실을 임대하겠다는 것. 체스키는 룸메이트를 설득해 거실에 싸구려 매트리스(Airbed) 3개를 깔았다. 그리고 이 매트리스 이용객에게 아침 식사(Breakfast)까지 제공하는 이른바 '민박' 사업을 시작했다. 

10평 남짓한 아파트 거실을 활용한 민박 비즈니스가 6년 만에 100억달러 가치를 지닌 기업인 에어비앤비(Airbnb)의 창업 시발점이 됐다. 

사명 역시 'Airbed'와 'Breakfast'에서 따온 것이다. 그런 에어비앤비는 현재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해 운영하는 '100억달러 스타트업 클럽' 순위에서 우버택시, 팔란티어(빅데이터 분석회사), 스페이스X(우주선 제작사) 등에 이어 4위(100억달러)에 랭크돼 있다. 

에어비앤비의 부상은 동종업계에 '테러'에 가까운 충격을 주고 있다. 글로벌 호텔체인 하얏트(84억달러) 가치를 이미 넘어섰다. 스타트업 보기를 '돌같이 보기'로 유명한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조차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주주들에게 보낸 연례 주주 서한에서 체험기를 올리며 극찬했을 정도다. 

이제 1위 브랜드인 힐튼호텔의 아성까지 넘보고 있다. 이번에 체스키 에어비앤비 최고경영자(CEO)는 100억달러에 후속 투자 유치계획을 밝혔는데 벌써 피델리티를 비롯해 월가의 내로라하는 투자자들이 줄을 섰다. 이번 투자 유치가 마무리되면 기업가치가 껑충 뛰어 200억달러로 힐튼(219억달러)과 거의 맞먹게 된다. 한때 에어비앤비에는 '우버 짝퉁' '숙박업계의 우버'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다. 언론 대부분이 유휴 자원과 소비자를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공유경제' 대표 모델로 둘을 묶어서 비교했기 때문이다. 우버가 전 세계 택시를 하나로 연결하는 플랫폼이라면 에어비앤비는 전 세계 개인 숙박시설을 하나로 연결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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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와 모바일에서 동시에 이용할 수 있다. 이런 민박인터넷 예약 사이트가 숱하게 있지만 에어비앤비를 키운 힘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 기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서비스를 연동했다는 점이다. 

연동된 확장성이 기존 민박 온라인사이트와 차별화된 포인트다. WSJ는 "희망 여행지가 비슷한 회원들끼리 숙박 체험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데다 모바일과 선결제 시스템을 결합한 것이 폭발적 성장의 배경"이라고 말했다. 영국 등지의 성조차 민박시설로 일주일 등 기간으로 임대를 놓는 에어비앤비의 획기적인 아이디어도 또 다른 인기 배경이다. 

플랫폼과 급성한 성장력은 닮은꼴이지만 최근 행보는 우버와 분명하게 엇갈린다. 최근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에어비앤비를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반대로 우버택시는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 미국 대도시에서 줄줄이 규제 폭탄을 맞고 있다. 

체스키 CEO는 "2년 반 가까이 공무원들과 관련 업계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한 결과"라고 말했다. 지역 언론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스는 "사업에 방해되는 사람들을 바보 취급하거나 방해자 취급하는 우버의 트래비스 칼라닉 CEO와는 전혀 다른, 지나칠 정도로 겸손한 CEO"라고 평가했다. 

체스키 CEO를 비롯한 그의 과거 룸메이트이자 공동창업자인 조 게비아(최고 제품책임자), 네이선 블레차르지크(최고기술책임자) 등 세 명 모두 '거만한 우버'에 강한 반감을 갖고 있다. 

체스키 CEO는 "20~30분 머물고 끝나는 운송서비스와 며칠, 장기간 체험을 제공해야 하는 숙박은 접근 자체가 다르다"며 "(우버처럼) 문제를 일으키기보다는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게 현명하다"고 말했다. 

극복해야 할 한계도 여전히 있다. 샌프란시스코와 몇몇 도시에서 합법화됐지만 한국을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불법영업 논란은 여전하다. 특히 에어비앤비가 가장 진출하고 싶어하는 중국에선 벌써 '토종' 아류작들이 쏟아지고 있다. 

여행전문 보도매체 트레블데일리에 따르면 '유톈샤(遊天下)' '마이돤주' '루메이쟈(如美家)' '샤오주(小猪)돤주' '위자(餘家)' 등 토종업체가 벤처캐피털로부터 자금을 확보해 서비스를 확장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아이루이컨설팅에 따르면 중국 숙박공유 산업은 2014년 40억5000만위안(약 7000억원)으로 커졌다.  

[이지용 기자 / 나현준 기자]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5&no=204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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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가장 혁신적인 기업’ 50곳을 발표하는 미국 월간지 패스트컴퍼니는 최근 호에서 다소 뜻밖의 순위를 내놨다. ‘핀테크(금융+기술)’로 돌풍을 일으킨 알리바바도, 자동차 개발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애플도 아닌 매출 1억달러(약 1100억원) 남짓의 안경 판매회사를 1위로 꼽았다. 주인공은 2010년 뉴욕에서 창업한 ‘와비파커’. 로버트 새피언 패스트컴퍼니 편집장은 와비파커를 1위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던 방식으로 수백년간 변화가 없던 안경 판매 시장을 바꿔놨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와비파커의 대표적 ‘혁신’은 3단계로 이뤄진 판매 방식이다. 우선 안경을 사고 싶은 소비자가 와비파커 홈페이지(www.warbyparker.com)에 가입해 착용하고 싶은 안경을 최대 5종류까지 고르면 집으로 배송된다. 소비자는 3~5일간 안경을 써본 뒤 와비파커로 반송한다. 이후 가장 마음에 들었던 안경을 고르고 자신의 시력과 눈 사이 거리를 홈페이지에 입력하면 2주 뒤 맞춤 제작된 안경을 받을 수 있다.

총 세 번의 물품 배달에 드는 비용은 모두 와비파커가 부담한다. 온라인 구매 특성상 500달러짜리 안경을 5분의 1 가격도 안 되는 95달러에 구매할 수 있다. 여러 모델을 충분히 써보고 살 수 있어 안경점에서 잠깐 보고 산 안경이 마음에 안 들어 속썩을 필요가 없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창립 첫해 2만개, 이듬해 10만개, 2013년 25만개에 이어 지난해에는 100만개 이상을 판매했다.

소비자가 본인의 시력을 측정하고 눈 사이 거리를 재는 것이 번거롭진 않을까. 와비파커는 이 같은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2013년 뉴욕을 시작으로 10곳에 오프라인 매장을 냈다. 상품 판매 이상으로 소비자 서비스를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애플의 애플스토어와 비슷하다.

온라인에서 시작해 오프라인으로 사업을 확장한 것을 두고 남성잡지 지큐(GQ)는 와비파커를 온라인 DVD 판매에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로 옮겨간 넷플릭스에 비유했다. 


와비파커의 공동 창업자는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동기생인 데이비드 길보아와 닉 블루멘털.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대부분 플라스틱으로 재료값이 비싸지 않은 데다 제작 공정도 복잡하지도 않은 안경이 왜 아이폰만큼 비싸야 하나”라는 의문이 창업의 시작이었다. 길보아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일상에서 마주치는 문제를 조금 다르게 생각했을 뿐”이라며 “혁신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다”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출처: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502165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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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적 인기였던 프리챌 갑작스런 유료화로 쇠퇴

싸이월드가 바통 이었지만 모바일 시대 대응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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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양혜왕 상(上) 편에 보면 재미있는 구절이 나온다. 중국의 전국시대에 가장 강력한 국가 중 하나였던 제(齊)나라의 선왕(宣王)과 맹자(孟子)가 나눈 대화다. 선왕은 각국에서 학자들을 불러 정책에 대한 의견을 듣는 데 관심이 많았다. 하루는 그가 기존의 왕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는 과정에 대해 맹자에게 물었다. "은(殷)의 탕왕(湯王)이 하나라 걸왕을 몰아내고, 주의 무왕(武王)이 은나라의 주왕(紂王)을 타도했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그러자 맹자는 "인의가 없는 자는 지도자가 아니라 그저 필부(匹夫)다. 탕왕과 무왕이 필부를 죽였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그들이 군주를 살해했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다"고 답했다. 리더가 이미 '인의'를 저버렸기 때문에 대의(大義)에 의해 타도되었다는 주장을 한 것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IT 업계에서도 인의와 명분을 잃어버린 플랫폼은 철저히 쇠멸의 길을 걷는다. 

◆ 인의=사용자가 인식하는 정당성 

인의는 경영학적으로 '정당성(Legitimacy)'이라고 볼 수 있다. 사용자에게 사업자가 응당 돌려주어야 하는 가치, 효용을 통한 성과다. 기업이 좋은 기능과 품질의 상품을 소비자들에게 제공했다고 정당성이 확보된 게 아니다. 사용자들의 일상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게 소화되었느냐가 중요하다.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게임 중독법을 통해 아이들의 디지털 콘텐츠 남용을 막자는 것도 '정당성'과 '인의'의 문제로 치환해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IT 산업에서 하나라 걸왕이나 은나라 주왕처럼 '인의'를 잃어 타도된 플랫폼 사례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대표적인 케이스가 '프리챌(Freechal)'이다. 이 플랫폼은 관심사와 주제에 맞는 커뮤니티 형성이라는 명목으로 젊은이들의 감성에 맞는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순식간에 사용자 트래픽 수를 확보하고 성장했다. 

그러나 문제는 고정 고객을 확보한 후 보였던 행동이었다. 수익성 확보를 위해 사용자들에게 월이용료를 물게 하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그러자 사용자들은 즉각 반발했다. 자신들의 관계는 '물'처럼 흐르는 것인데, 그것에 과금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평가였다. 대중 입장에서 '인의'를 저버린 사업자의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가치, 효용을 만족시켜주기는커녕 파괴하는 전략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금세 '프리챌 떠나기 운동'이 시작됐고, 플랫폼은 결국 공동화되어 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의 마음을 잃은 서비스가 맞이한 말로다. 

◆ '명분' 획득한 싸이월드 

이 틈을 타 싸이월드가 새로운 강자로 등장했다. 미니홈피라는 사용자 개개인의 공간과 함께 음악, 장식된 캐릭터, 친구 맺기의 '일촌' 기능까지 도입됐다. 프리챌처럼 주제 중심으로만 소통하던 사용자들의 관계맺기 감성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사용자들은 철저히 편익과 비용을 따져가며 플랫폼을 선택한다. 그러나 이전 서비스 경험 과정에서 모순이 누적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왜냐하면 과거의 선택을 번복하지 않으려는 관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납득할 수 없는 비용 구조를 만들어 놓고도 핵심 기능 하나 바꾸지 않았던 프리챌은, '온라인 관계의 혁명'을 가져왔던 싸이월드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싸이월드는 온라인상에서 사용자 자신들의 이미지를 충분히 꾸밀 수 있는 도구를 주었을 뿐 아니라 여섯 단계만 건너면 모든 친구와 '일촌'이 될 수 있는 '작은 세상'을 연 것이다. 푸근한 이미지의 캐릭터와 디자인은 싸이월드가 인간다움을 표방하는, '인의'를 얻은 플랫폼이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명분을 얻어도 환경이 변화하면 그 가치는 쇠퇴한다. 전문가들은 지나친 상업적 아이템 판매와 큰 변화가 없는 인터페이스가 문제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이유는 2010년 이후 스마트폰 확산으로 인해 사람들이 싸이월드처럼 화려하고 복잡한 디자인보다 단순한 정보 배치를 원하게 됐다는 데 있다. 반대급부로 파란색과 흰색의 단순한 표현, 철저히 글 쓰기와 사진 올리기, 관계 확장에만 주력한 페이스북의 핵심 기능은 사람들의 감성을 붙잡아놓기에 충분했다. 명분을 얻었더라도 성공공식을 반복하는 마케팅 전략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 끊임없는 객관화가 핵심이다 

재미있게도 또 다른 사서(四書) 중 하나로 손꼽히는 시경(詩經)에는 은을 대체한 주나라가 오랫동안 지속된 이유 중 하나로 '스스로 생명을 새롭게 하는(其命維新)' 전략을 썼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끊임없는 자기 객관화의 길이다. 충성고객들뿐만 아니라 전혀 다른 시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새로운 시각을 받아들이기 위해 플랫폼 이미지와 경험에 대해 물어볼 필요가 있다. 

요즘 IT 업계에서 가장 큰 화두가 '안 쓰는 사람'에게 물어보기인 것처럼. 또 플랫폼 내부에 있는 다양한 기능과 경험 요소들이 과연 현재 사용자의 가치와 부합하는지 끊임없이 진화론적으로 추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트렌드 따라잡기 차원이 아니라 선행 수준의 사용자 경험 분석이 필요하다. 이렇게 미시, 거시 양쪽의 노력이 확보되어야 사용자의 마음을 계속 붙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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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준 연세대학교 미래융합연구원 기술경영연구센터 책임연구원]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5&no=188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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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 체인 ‘셰이크섁’ 14년만에 美증시 상장

거래 첫날 두배 폭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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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들에게 ‘쉑쉑버거’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뉴욕의 명물 햄버거로 떠오른 ‘셰이크섁(Shake Shack)’이 푸드트럭 성공신화를 새롭게 썼다. 

2001년 뉴욕 맨해튼 매디슨스퀘어공원과 월가 길거리에서 핫도그를 파는 핫도그 카트(수레)로 시작한 뉴욕의 햄버거체인 셰이크섁 주식이 상장 첫날인 지난달 30일 폭등해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이날 셰이크섁 주가는 장중 한때 사자세가 대거 몰리면서 공모가(21달러)의 2.5배인 52.50달러까지 치솟았다. 이후 차익매물 때문에 상승폭이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공모가 대비 119% 급등한 45.90달러에 장을 마쳤다. 이날 종가 기준으로 셰이크섁 시가총액은 16억3000만달러를 기록해 단숨에 1조7800억원짜리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세인트루이스에서 식당을 경영하다가 뉴욕 맨해튼에 셰이크섁을 설립한 대니 마이어 창업자 지분은 21%로 상장 후 보유 주식가치가 3억4150만달러로 확 늘어나게 됐다. 주가가 주당 매출의 몇 배 정도인지 보여주는 주가매출액비율(PSR) 기준으로 셰이크섁의 PSR는 이날 현재 14.6이다. 이는 성장잠재력이 큰 IT기업 페이스북(16.1)에 육박하는 수치이자 S&P500지수에 편입된 기업중 6번째로 높은 수치다.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에 속해 있는 햄버거를 파는 프랜차이즈업체인 셰이크섁 잠재성장성에 베팅하는 투자자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셰이크섁은 2012년 5700만달러, 2013년 82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 지난해 1~9월 매출은 8380만달러에 달해 이미 전년 수준을 넘어서는 강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상장 첫날 시장에서 성장성을 인정받은 셰이크섁의 모태는 원래 햄버거가 아니라 핫도그였다. 

셰이크섁은 맨해튼 길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핫도그 수레에서 출발했다. 핫도그를 팔아 어느 정도 목돈을 챙긴 마이어 창업자는 2004년 매디슨스퀘어공원에 햄버거를 파는 가게를 열었다. 

맞상대가 불가능한 맥도널드, 버거킹과 같은 햄버거 공룡 프랜차이즈와 맞서기 위해 선택한 전략은 바로 패스트푸드에 꼬리표처럼 붙는 저급한 이미지 탈피였다. 셰이크섁은 햄버거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고기패티 재료로 호르몬·항생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친환경 순살 쇠고기만 썼다. 또 동물복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축산업자에게서만 쇠고기를 납품받았다. 

당연히 단가는 올라갔다. 하지만 다소 가격이 높더라도 친환경과 웰빙을 선호하는 20·30대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셰이크섁의 마지막 단어를 반복해 발음한 ‘쉑쉑버거’에 대해 입소문이 나면서 잔뜩 호기심을 품은 고객들이 몰려들었고 매장 앞에 기다랗게 늘어선 줄은 셰이크섁을 상징하는 대표 이미지가 됐다. 

셰이크섁은 영국 런던, 러시아 모스크바, 터키 이스탄불,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등 전 세계 9개국에 27개, 미국 동부지역에 36개 등 총 63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마이어 창업자는 기업공개(IPO)를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매년 10개씩 매장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뉴욕 = 박봉권 특파원]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5&no=104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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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덕천역 등 2곳서 반납 가능
쏘카 “6월까지 20곳 제공 예정”

도심 차량정체와 대기오염을 줄이면서 싼값에 차량을 빌려 타는 ‘차량 공유 서비스’가 진화하고 있다.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인 쏘카는 21일 “서울에 이어 부산·인천·경기·제주에서 차량을 빌린 곳과 상관없이 도착지 가까운 주차장에 반납하면 되는 편도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쏘카는 2011년 제주를 시작으로 서울과 6대 광역시 등 지방 주요 도시에서 차량 공유 서비스를 하고 있다.

차량 공유 서비스는 차량구입비와 보험·기름값 등 차량관리비 부담을 덜면서 도심 차량 흐름과 대기오염을 개선하기 위해 1990년대 미국에서 시작돼 공유경제의 한 영역으로 자리를 잡았다.

인터넷을 통해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가 출근 또는 장기간 출장 등으로 놀려두고 있는 개인 차량을 필요한 사람한테 소개하고, 차량 주인한테 수수료와 보험료 등을 떼고 사용료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하루 기준 요금을 받는 렌터카 업체와 달리 사용시간 기준 요금을 받고, 업체를 방문하지 않아도 되는 등 대여 절차가 간단하다는 장점이 있다.

국내에도 3~4년 전부터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개인 차량을 돈을 받고 남에게 빌려주는 것이 허용되지 않고 보험상품도 개발되지 않고 있다. 이에 국내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들은 차량을 직접 구입해 영업을 하고 있다.

국내 차량 공유 서비스는 저렴한 요금과 편리성 등에 힘입어 젊은층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차량을 빌린 곳으로 되돌아가 반납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쏘카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9월 서울에서 처음으로 편도 서비스를 시작했다.

편도 서비스는 이용자가 한정돼 있다. 편도 서비스가 가능한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부산은 부산도시철도 2호선과 3호선이 만나는 덕천역과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 등 두곳만 편도 서비스가 가능하다. 또 편도 서비스를 이용하면 차량 회송비 명목으로 5000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 이용자는 택시요금에 견줘 얼마나 경제성이 있는지 비교해보고 편도 서비스를 이용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쏘카 관계자는 “부산은 6월까지 20여곳에 편도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편도 서비스는 택시요금이 많이 나오는 곳에서 출발하려는 이용자에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747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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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도 아끼고 말벗도 생기니 좋죠"


▲ 카풀을 통해 국내 여행을 할 수 있게 하는 소셜 여행 앱 '티카'를 개발한 맥거핀의 이남호(왼쪽), 박정은 대표. 김경현 기자view@

근에서 벗어나 모처럼 주말에 쉬게 된 손 대리(32·가명). 집에만 있기는 싫고 기분전환 겸 가볍게 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런데 혼자서 차를 몰고 가기는 심심하고 기름값도 부담이다. 그렇다고 관광버스 이용한 상품을 이용하자니 왠지 거부감이 든다. 
 
김 대리의 고민을 해결해 줄 서비스가 있다. 맥거핀에서 개발한 소셜 여행 앱 서비스 '티카'는 차량 소유자가 가고 싶은 곳과 인원수를 정해 카풀을 개설하면,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카풀을 신청해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해 준다.
 
지난해 2월 맥거핀을 창업한 박정은 대표(29)와 이남호 기술개발대표(34)가 제일 처음 발표한 것은 KTX 티켓 중고 장터 버전의 티카였다. 3년째 서울-부산을 오가며 장거리 연애를 하는 박 대표의 경험이 아이디어의 원천이 됐다. 

KTX 티켓 중고 사이트로 시작  
카풀 여행 '티카' 서비스로 전환  

서울·부산 등 지역 명소·명물 소개  
동승자 간 여행 경험 공유 장점 


"KTX 할인 카드 제도가 폐지되면서 장거리 연애에 교통비 부담이 커지게 됐어요. 중고나라 같은 데서 저렴한 KTX 표를 찾는데, 찾는 것도 불편하고 쪽지를 확인해서 구매하는 게 불편하더라고요. KTX 티켓 중고장터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박 대표의 예상은 적중했다. 티카는 안드로이드 마켓에서 1만 건이 넘는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하며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런데 추석을 앞두고 열차표 재판매 등을 점검하던 코레일 측이 문제의 소지가 있다며 서비스 중단을 요청해 갑작스럽게 서비스를 접게 됐다. 

그렇게 해서 8월, 맥거핀은 '트래블 앤 카풀(Travel & Carpool)'을 약자로 하는 지금의 티카를 시작했다. 2013년 문화관광부 국민여행 실태조사에 따르면 연간 국내 여행은 30대가 6.69회로 1위를 차지했으며 여행 수단으로는 자가용이 75.8%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여행 경비 또한 35.4%로 1위를 차지한 식·음료비에 이어 교통비가 24.4%로 2위를 차지했다. 즉, 30대는 두 달에 한 번 이상 꼴로 자가용을 이용해 국내 여행을 다니지만, 여행에서 식비와 함께 교통비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것.

티카는 이 점에 착안했다. 카풀을 통해 여행을 함께 떠나면서 운송 수단을 공유하고 경비를 아끼는 것이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블라블라카(Bla Bla Car)'가 이런 여행 카풀 서비스를 통해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투자를 통해 연평균 200% 성장하며 연 66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공공데이터를 이용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티카의 장점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제공한 공공데이터 정보를 활용해 서울, 부산 등의 지역 명소와 명물을 소개한 후 그 아래 카풀 개설하기 메뉴를 달았는데, 이는 지난해 6월 '공공데이터 활용 우수 사례 이달의 앱'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물론 모르는 사람과 여행을 떠나는 것이 염려스러운 면도 있다. 티카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운전면허증 진위 조회 서비스와 소셜인증제도, 전자지급결제 대행서비스를 도입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박 대표는" 카풀을 통해 차량을 공유한다는 점도 있지만, 다른 공유경제 분야와 달리,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경험을 공유하는 서비스라는 점이 티카의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이를 위해 앞으로는 여행이 아닌 시내 드라이브나 국내 서비스 '마이리얼트립'과 같이 지역 주민이 가이드하는 여행 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공유경제라는 분야가 언급은 많이 되고 있지만, 사람들에게는 아직 생소하므로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서비스를 우선 만들고 싶다"면서 "이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고 공유 경제의 문화를 활성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박진숙 기자 true@busan.com


출처: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5012100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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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at a Glance – 전략,마케팅 

  

아모레퍼시픽의 성공 요인

1) 미와 건강(Beauty & Health) 등 본업에만 집중했다. 

2) 명확한 아이덴티티를 바탕으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3) 중국 시장에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심었다.

4) 소비자의 트렌드 변화를 미리 읽어서 유통망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이정완(경희대 경제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은 1932년 서성환 창업주의 어머니 윤독정 여사가 개성에서 머릿기름을 만들어 팔면서 출발했다. 서성환 창업주는 1945 9월 서울 남대문시장 부근에 태평양화학공업사를 세웠고 처음으로 상표를 붙인 메로디크림(1948)과 식물성 원료를 사용한 ABC포마드(1951) 등을 팔았다. 경쟁 업체들과는 달리 메로디크림은 해방 후 일본인이 남기고 간 고급 원료를 사용했고 ABC포마드에는 당시 제품에는 드물게 향료를 섞어 제작했다. 제품명도 메로디(Melody)’ ‘ABC’ 등 부르기 쉬우면서도 당시에는 고급스럽게 느껴지는 영어 단어를 사용해서 소비자를 파고 들었다. 1954 8월에는 국내 화장품업체에서는 처음으로 자체 연구실을 만들었다. 1958 8월 국내 최초 월간 미용 정보지 <화장계>를 창간했고 1966년에는 세계 최초의 한방 화장품인 ‘ABC인삼크림을 출시했다. ‘최초의 행진은 경쟁이 치열한 업계에서 강력한 무기였다. 아모레퍼시픽은 초창기부터 꾸준한 자체 제품 개발로 대기업 계열의 화장품회사와 경쟁하면서 오랫동안 업계 1위의 자리를 굳건하게 유지하고 있다. 1997년 출시한 설화수 윤조에센스는 누적 판매액이 1조 원을 웃돌았다. 아리따움 모디네일과 아이오페 에어쿠션은1000만 개 이상 팔렸다.

 

특히 최근의 경영 성과가 두드러진다. 이 회사 주가는 2014 12월 초 250만 원을 웃돌기도 했다. 모기업인 아모레퍼시픽 시가총액만 13조 원을 넘는다. 아모레퍼시픽의 성공은 기본적으로 80년 이상 한 우물만 판 끈기와 노력 덕분이다. 하지만 파산의 위기에 처할 만큼 어려웠던 시기도 분명 존재했다. 실제 서경배 대표이사가 회사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던 1990년대 초반 사정은 매우 어려웠다. 197373%에 달했던 시장점유율은 1991 19%까지 떨어졌다. 과도한 외형 확대로 매일 만기가 돌아오는 부채를 상환하기에도 정신이 없었다. 더군다나 화장품 수입 개방으로 1980년대 후반부터는 해외 화장품과의 경쟁도 치열하게 벌여야 했다. 유통망 개방으로 국내 화장품 시장의 30% 가까이를 순식간에 해외 화장품업계에 내줬던 시기다. 하지만 아모레퍼시픽은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며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으며 순간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경기불황과 전반적인 화장품 업계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2014 1∼9월 매출액 28952억 원에 순이익 3411억 원을 기록했다. 2013년에는 매출액 31004억 원과 당기순이익 2674억 원을 기록했다. 아모레퍼시픽의 성장 전략을 DBR이 집중 분석했다.

 

 

본업에 바탕을 둔 외연 확대

1970∼1980년대 한국 산업계의 화두는 사업 다각화였다. 아모레퍼시픽도 문어발식 확장을 꾀했다. 1974년 부동산 관리회사인 장원산업을 세웠고, 1976년 아천개발과 서울악기를 인수했으며, 1977년 태평양금속을 설립했다. 1983년 충무기획을 인수해 동방기획으로 사명을 바꾸고 광고업에도 진출했다. 1983년에는 의약품사업부를 독립시켜 태평양제약을 출범시켰다. 1987년에는 프로야구구단 청보핀토스를 인수해서 태평양돌핀스를 창단했다. 금융업에도 진출했다. 1982년 동방증권을 인수했고 홍일상호신용금고, 동방경제연구소, 동방투자자문, 태평양생명보험을 잇달아 세웠다. 1990년대 초 아모레퍼시픽은 생활문화 소비재와 금융 및 서비스, 기술 및 산업 소재, 육영 및 문화 등 4개 사업군에 걸쳐 25개 계열사를 거느리는 중견 그룹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본업을 뺀 나머지 사업은 대부분 부진했다.

 

계열사들은 적자에 허덕일 때가 많았다. 본사와 계열사는 지급 보증 등으로 재무적으로 연결돼 있었다. 계열사의 어려움은 본사에 즉시 영향을 끼쳤다.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했다. 1991 12월 모기업보다 덩치가 더 크고 3년 이상 흑자를 내던 태평양증권을 팔았다. 당시 증권업은 규제산업이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여겨졌지만 아모레퍼시픽은 이처럼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이어서 1994년 태평양 프랑세아, 1995년 한국써보 등을 정리했다.

 

국내 화장품 업계는 1990년대 초반 큰 변화를 겪었다. 해외 화장품업체들이 본격적으로 국내 시장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후발업체들이 급격하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한국화장품 등 메이저 3사의 시장점유율은 1991 60.6%에서 1995년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아모레퍼시픽은 1995년 태평양돌핀스를 현대그룹에 넘겼고 증자를 해주는 방식으로 돈을 더 얹어서 태평양패션을 1997 1월 거평그룹에 넘기는 것으로 1차 구조조정을 마쳤다.

 

경영진은 흑자기업까지 내다 팔면서 본업에만 충실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현재 흑자를 내며 당분간 큰 문제가 없는 사업이라도 시장에서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결국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었다. 화장품 브랜드 설화수와 아이오페 레티놀 2500 등의 잇단 성공으로 1997년 외환위기를 버틴 아모레퍼시픽은 2차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1차 구조조정이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면 2차 구조조정은 핵심 역량을 강화하는 게 목적이다. 화장품의 사업영역을 다소 확장해서 미와 건강(Beauty & Health) 분야를 뺀 나머지 사업은 모두 정리했다. 한국태양잉크(1998), 동방상호신용금고(1999), 태평양생명(1999), 동방커뮤니케이션즈(2000), 태평양정보기술(2000), 바이오랜드(2004), 태평양금속(2004) 등을 잇달아 정리했다. 태평양정보기술은 구조조정 당시 IT 버블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였다. 바이오랜드는 화장품 관련 원료 기업으로 원료 공급업체이기 때문에 잔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경영진은 원료산업에 강점이 있는 다른 기업과 파트너십을 통해 원료를 조달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2차 구조조정 결과 아모레퍼시픽의 계열사는 아모스, 에뛰드, 빠팡 에스쁘아(향수) 등 화장품 계열 회사와 태평양제약, 퍼시픽글라스, 장원산업(녹차) 등 비화장품 계열 건강 관련 회사 등 6개 기업으로 정리됐다. 모두 미와 건강(Beauty & Health) 분야에 속했다.

 

 

지속적인 브랜드 정체성 확립

1990년대부터 국내 화장품 시장은 공급 과잉 상태였다.  2000년대 들어 IT 혁명이 본격화하면서 시장 상황도 급변했다. 경쟁 강도가 높아지면서 아모레퍼시픽은 강력한 브랜드 자산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글로벌 화장품 업체인 로레알과 에스티로더는 다양한 국가의 화장품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인수하면서 몸집을 키웠다. 관리하는 브랜드만 수백 개에 달했다. 로레알은 2000 Kiehl’s, 2006 The Body Shop, 2012 Urban Decay 등을 인수했다. 에스티로더도 1994 M·A·C, 1995 Bobbi Brown, 1997 Aveda, 2010 Smashbox 등을 넘겨 받았다. 다만 두 기업은 사업구조가 다르다. 로레알은 저가에서 고가까지 모든 제품을 구비하고 있다. 반면 에스티로더는 고가 제품 위주다. 아모레퍼시픽은 시장점유율을 고려할 때 모든 가격대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브랜드 전략을 세우기로 했다.

 

 

아모레퍼시픽은 과거에도 파워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마음만 앞섰을 뿐 브랜드 수명은 1년 반에서 3년 정도에 그쳤다. 무작정 브랜드를 양산한다고 해서 마케팅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브랜드의 고객층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게 아니라서 영역 충돌이 생기기도 했다. 불필요한 경쟁 등 낭비적인 요소도 많았다. 브랜드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먼저 각 브랜드마다 아이덴티티를 명확하게 설정해야 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모든 브랜드를 콘셉트와 고객층, 가격 등에 따라 분류하고 서열을 매겼다. 1999년 외부 마케팅 업체에 의뢰한 결과 기업 브랜드인 태평양과 아모레, 개별 제품 브랜드 등이 뒤섞여서 소비자에게 브랜드 이미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었다. 제품 브랜드인 아이오페와 헤라에는 기업 브랜드가 부정적인 영향까지 끼쳤다. 모 브랜드인 아모레는 기업 브랜드에 가려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콘셉트가 불분명하고, 상호 잠식현상이 발생하며, 매출이 미미한 브랜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또 아모레는 더 이상 제품 브랜드로는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모든 브랜드를 콘셉트와 연령대, 가격대 등으로 분류하고 브랜드 전략 지도를 만들었다. 일부 브랜드는 리뉴얼 작업을 통해 고객층을 바꿨다. 마몽드는 1991 11월 방문판매를 하지 않고 유통점으로만 판매하는 최초의 브랜드로 출시됐다. ‘산소 같은 여자를 광고문구로 내세워 20대 여성을 겨냥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994년 국내 화장품 브랜드 최초로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1994년 고객층이 겹치는 라네즈가 출시되자 매출이 크게 줄었다. 아이덴티티를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두 브랜드 모두 타격을 입을 게 분명했다. 1998년 마몽드는 핵심 고객층을 30대로 높였다. 그 결과 마몽드와 라네즈의 잠식현상이 사라졌고 모두 아모레퍼시픽의 대표 브랜드로 성장했다. 아모레퍼시픽은 2002년 브랜드 전략 지도를 바탕으로 설화수, 헤라, 아모레퍼시픽, 리리코스, 아이오페, 마몽드, 라네즈, 이니스프리, 에뛰드, 미쟝센 등 10개 브랜드만 남기고 나머지는 없애거나 10개 브랜드의 서브라인에 두도록 했다.


물론 이런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뒤에도 위기는 항상 찾아왔다. 마몽드는 2010∼2012, 한율은2011∼2013년 매출이 감소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어떤 브랜드가 될 것인가라는 아이덴티티 차원에서 해법을 모색했다. 마몽드는 2012년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을 내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브랜드 콘셉트와 스토리가 약했고 히트상품도 딱히 없었다. ‘이라는 브랜드 모티브가 소비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브랜드 컬러를 꽃을 연상하기 좋은 노란색으로 바꾸고 매장의 외관과 출입구, 포장 등에 꽃을 배치하거나 적용했다. 2013년 마몽드는 전년 대비 매출액이 13% 성장했다. 한방화장품 한율은 이모 화장품이나 엄마 화장품의 이미지가 강했다. 광고 모델도 40대였으며 용기 디자인은 다소 진부했으며 로고는 궁서체였다.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전래민방(korean medicine), 늙지 않는(ageless), 글로벌(global)로 바꿨다. 20∼30대를 겨냥한 프리미엄 한방 화장품으로 포지셔닝을 하고 젊은 모델을 기용했다. 2014년 한율의 매출이 성장세로 전환됐다. 아모레퍼시픽 경영진은 2014 1월 설화수와 라네즈, 마몽드, 이니스프리, 에뛰드 등 5개 브랜드를 2020년까지 중점적으로 육성할 글로벌 챔피언 브랜드로 선정했다. 5개 브랜드를 중심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한다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이 밖에도 헤라, 아이오페, 려 등 20여 개의 기타 다양한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브랜드끼리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있다.

 

 

프리미엄 마켓부터 공략

아모레퍼시픽은 1964 8월 화장품 20여 종을 에티오피아에 처음 수출했다. 1970년대에는 일본, 홍콩,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 진출했다. 당시에는 수입상을 통한 간접 수출이 대부분이었다.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1986년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등에 현지 지사를 세웠다. 1990년에는 프랑스 샤르트르시 소재 공장을 매입하기도 했다. 해외 시장 진출에 적극적이었으나 1980년대까지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리지는 못했다. 국산 화장품이 선진국에서 인기를 얻기가 쉽지 않았고 아시아 시장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았다. 1994 2월 중국 선양에 태평양보암화장품유한공사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진출했으나 브랜드 인지도가 낮았고 화장품 수요가 예상처럼 커지지 않았다. 1997년 현지 수입 판매상과 독점 계약을 체결하고 판매를 강화했으나 실적은 호전되지 않았다. 판매상이 단기 실적에만 매달려 오히려 브랜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우려해야 할 정도였다.

 

아모레퍼시픽은 발빠른 구조조정으로 1997년 금융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오히려 위기 속에서 성장세를 이어가면서 자신감까지 얻었다. 이후 새로운 도약이 필요했다. 경영진은 본격적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할 시기라고 봤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과 프랑스 등 선진시장은 부담스러웠다. 중국을 다시 바라봤다. 중국의 개방정책이 가속화하면서 100% 외국계 법인의 설립이 가능해졌다. 중국의 화장품 시장은 자본력과 브랜드 파워를 갖춘 로레알, 시세이도, P&G 등 글로벌 화장품 업체들이 공격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치며 2000년 이후 연평균 12.6%(2000∼2009)나 성장했다. 사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는 1980년대 초까지 자본주의의 상징이라고 여겨진 화장품이 엄격한 통제를 받았다. 12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현지 화장품업체인 상하이가화도 1984년 모든 라인을 구비한 브랜드를 겨우 출시했다. 하지만 화장품 산업에 대한 규제가 풀리고 소득이 크게 늘자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중국 시장은 P&G, 로레알, 메리케이, 시세이도 등 상위 10대 글로벌 브랜드 기업들이 중국 전체 시장의 약 55%를 차지하고 나머지 시장을 두고 수천 개의 군소 화장품 브랜드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다. 유통망은 백화점, 대형 슈퍼마켓, 방문판매가 전체 매출액의 70%를 차지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처음부터 고가 정책을 고수했다. 고가 브랜드란 지위를 가져야 이후 중저가 시장으로도 외연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기 때문이다. 중저가 브랜드로 인식된 상태에서 고가 화장품으로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고 봤다. 수익도 고가 화장품이 훨씬 컸다. 하지만 당시 컨설팅업체들은 이런 전략이 위험하다며 우려했다. 브랜드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백화점 중심의 고가 시장 진입 전략의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 봤다. 컨설팅사들은 메이저 화장품 업체들을 피해서 중저가 시장을 먼저 공략하는 게 순서라고 조언했다. 백화점에 매장을 내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울뿐더러 매장을 찾는 고객에게 일일이 브랜드를 설명하고 제품을 팔려면 시간이 꽤나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영진은 고가 시장 선진입 전략을 고집했다. 오래 걸려도 현지 시장에서 생명력을 이어가려면 프리미엄 이미지를 고수해야 한다고 봤다.

 

 

사실 경영진은 화장품의 품질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다. 화장품은 인종과 현지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인종별로 피부상태가 비슷하고 주로 사용하는 화장품도 비슷할 수밖에 없다. 지역별로 화장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아무래도 같은 문화권의 화장품 업체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실제 동양인들은 스킨 제품을 많이 구입한다. 실제 아시아 화장품 시장에서는 매출의 80%가 피부와 관련된 제품이다. 동양문화권은 전통적으로 피부가 좋은 사람을 미인으로 꼽아왔기 때문이다. 반면 서양인들은 향수를 많이 찾는다. 남미권에서는 손톱, 머리와 관련된 제품의 수요가 많다. 아모레퍼시픽은 국내 시장에서 이미 오랫동안 피부와 관련된 화장품을 숱하게 개발해왔다. 기후조건 등을 고려할 때 동양인의 피부특성에는 어떤 제품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이런 부분에서는 글로벌 화장품 업체보다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경영진은 고가 시장 선진입 전략을 고집했다. 

오래 걸려도 현지 시장에서 생명력을 이어가려면 

프리미엄 이미지를 고수해야 한다고 봤다.

 

아모레퍼시픽은 2000 11월 상하이 현지 법인을, 2002 7월 현지 공장을 세웠다. 당시 전략은 단기 매출 확대보다는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주력하면서 거점 도시의 주요 백화점에 매장을 개설해 라네즈를 고급 브랜드로 자리잡게 하는 것이었다. 2002년 라네즈와 고객층이 가장 유사하다고 분석되는 상하이 팍슨백화점에 1호점을 열었다. 하지만 매장은 판매에 유리한 1층이 아닌 2층에 개설되는 등 낯선 브랜드이기 때문에 푸대접을 받아야 했다. 판매도 매우 부진했다. 타개책은 광고가 아닌 판촉이었다. 품질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사용 기회를 늘린다면 승산이 있다고 봤다. 국내에서 프로모션을 담당하는 직원 5∼6명을 파견해서 하루 종일 프로모션을 열었다. 난타공연, 마술, 춤 등의 프로그램을 메이크업 시연과 함께 보여주자 고객들은 라네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입소문도 퍼졌다. 매장은 곧 1층으로 내려왔다. ‘Made in Korea’의 원산지 효과를 위해서 2004 10월부터 라네즈는 한국에서 생산된 제품을 팔았다. 라네즈는 이후 현지화 전략과 한류 등에 힘입어 2005년까지 33개 도시 83개 백화점에 입점했다. 하루 매출이 5000만 원을 넘는 매장도 등장했다. 2007년부터 흑자를 기록하며 안착했다.

 

중국 시장 진출은 한류 바람과 중국의 경제수준 향상과 맞물리면서 성공했다. 하지만 이런 외부 환경의 수혜가 중국 진출의 성과를 모두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LG생활건강 등 다른 국내 화장품 업체들도 중국에 진출했으나 아모레퍼시픽만큼의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좀 더디더라도 고급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고 2010년까지 2개 브랜드만 집중적으로 키웠다. 라네즈는 젊은 층이 선호하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고 마몽드는 라네즈보다는 다소 가격이 싸지만 대중적인 제품보다는 다소 비싼 제품으로 포지셔닝을 구축했다. 또 고급 백화점을 유통망으로 활용해서 절대적인 브랜드 파워를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라네즈는 중국 여성의 최대 관심사인 보습에 착안해 수분 콘셉트를 강화하면서 성과를 이어갔다. 국내 백화점에서 중국인들이 1순위로 구매하는 제품이 라네즈일 정도로 현지에서는 이미 파워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다. 아모레퍼시픽은 2011∼2013년 한방 브랜드인 설화수와 중저가 브랜드인 이니스프리’ 에뛰드를 현지에 출시하면서 중저가까지 모두 포괄하는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또 아직 해외 무대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잠재력을 갖춘 브랜드들도 많이 보유하고 있다. 아이오페와 헤라는 국내 시장에서 매출액이 3000억 원에 가까운 대형 브랜드다. 국내 면세점에서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중국 시장점유율은 아직 2∼3%에 불과하다. 하지만 2014 2분기 매출 성장률은 18.5%에 달한다. 2013년에만 중국에서 3387억 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소비자의 움직임을 미리 읽다

소비자가 선호하는 유통망은 시간과 지역에 따라 바뀐다. 아모레퍼시픽은 새로운 유통망을 선점해서 시장점유율을 높인 사례가 많다. 아모레퍼시픽은 창업 초기부터 소비자들이 어떤 유통망을 선호하는지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였다. 1964 9월 일본의 화장품업체인 폴라의 방문판매를 차용해서 이를 국내에 도입했다. 전국을 행정구역에 따라 잘게 쪼개 화장품 특약점을 설치했고 6·25 전쟁 이후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미망인을 판매원으로 고용했다. 1980년 특약점과 영업소만 664, 판매원은 16571명에 달했다. 1985년은 국내 전체 화장품 매출의 85% 이상이 방문판매를 통해 이뤄졌다. 하지만1977년 대구에 처음 등장한 화장품 할인 코너는 빠른 속도로 방문판매 시장을 잠식했다. 더군다나1984 3월 ㈜럭키( LG생활건강) 드봉 화장품을 출시하고 화장품 사업에 다시 진출하면서 방문판매가 아니라 화장품 할인 코너 등 시장판매에 전력을 투구했다. 당시 시장판매에는 따로 임자가 없었다. 방문판매는 하락세를 걸었고 시장판매는 크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들어 방문판매 매출은 꾸준히 감소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있는 유통망은 아니었다. 여전히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컸다.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가계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여성이 늘었다. 아모레퍼시픽은 하락세의 방문판매를 부활시키기 위해서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설화수, 헤라 등 백화점에서 팔리는 고급 브랜드를 방문판매가 가능하도록 했다. 덕분에 방문판매 매출이 크게 늘었다. 판매원 해외 연수제도 실시, 인센티브 및 운영방식 개선 등에 힘입어 1998년 방문판매에서만 매출 1000억 원을 올렸다. 방문판매는 이후에도 매년 7∼8%씩 성장세를 이어가며 전체 매출액에서 30∼40%를 차지할 정도로 유통에서 큰 몫을 담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2년부터 방문판매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2014년 말 현재 방문판매의 매출액 비중은 전체 매출액에서 18%에 불과하다. 이제는 방문판매를 인위적으로 성장시킬 수 없는 상황이 도래했다는 게 회사 측의 판단이다. 아모레퍼시픽은 방판의 부활을 기대하지는 않고 있다. 대신 현재 방문판매 유통망을 고령화 추세와 맞물려서 시니어 층을 위한 유통망으로 특화할 계획이다. 전통적인 유통망을 새로운 용도로 최대한 활용하자는 취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2년 이후 진행된 방문판매의 부진은 전체 수익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아모레퍼시픽은 면세점과 온라인, 홈쇼핑 등 떠오르는 다른 유통망에 집중하면서 유통망 교체의 과도기를 슬기롭게 대처하고 있다. 최근 면세점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2014년 아모레퍼시픽의 면세점 매출은 6644억 원으로 추산된다. 한국을 찾는 중국 관광객이 크게 늘면서 면세점 매출액이 크게 증가했다. 해외에 진출하지 않은 아이오페 등도 이미 중국인들에겐 선호 브랜드다. 내국인 출국자 증가와 면세 한도 상향 조정, 외국인의 인터넷 면세점 구매 등도 매출 성장을 견인했다. 국내 면세점 매출은 앞으로 6년간 연평균 12% 정도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국내 면세점은 점포 확장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아모레퍼시픽이 주목하는 것은 해외 면세점이다. 2014년 전체 면세점 매출액에서 해외 면세점이 차지하는 비중은 5∼6%에 불과하다. 하지만 해외 면세점은 향후 고성장을 거듭해서 2020년 전체 면세점 매출액의39%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모레퍼시픽은 2013년 해외 면세점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해서2013년에만 100곳의 거점을 확보했다. 최근에는 싱가포르 창이공항과 중국 하이난섬 면세점 등 아시아 최대 규모의 면세점에 입점했다. 2014년 말 현재 120곳의 해외 면세 거점을 보유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미샤, 더페이스샵 등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가 단일 브랜드 매장의 형태로 진출하면서 국내 화장품시장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동네 종합 화장품 매장의 매출액은 감소했다. 동네 화장품 매장을 많이 활용했던 아모레퍼시픽은 위기감을 느꼈다. 당시 중저가 브랜드의 성장세는 대단했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2004년 아모레퍼시픽은 동네 화장품 매장 가운데 좋은 성과를 내고 있던 곳을 하나의 브랜드로 묶어 휴플레이스를 출범했다. 중저가 브랜드가 위세를 떨치면서 당시 상당수 동네 화장품 매장은 생존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들 매장에 인테리어 시설 및 판매사원을 보내 지원하면서 화장품 유통체인인 휴플레이스를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위기를 겪고 있던 많은 화장품 매장들은 아모레퍼시픽의 제안을 수용했다. 과거 동네 화장품 매장은 아모레퍼시픽 제품을 25% 정도만 팔았다. 하지만 휴플레이스로 이름을 바꾸고 나서는 아모레퍼시픽 제품을60% 정도 판매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이어 2008년 휴플레이스를 자체 브랜드 제품만 100% 판매하는 프랜차이즈 체인인아리따움(ARITAUM)’으로 개편했다. 이런 전략은 적중했다. 아리따움은 이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2005년 아리따움과는 별도로 매출액 200∼300억 원대에 불과하던 중저가 브랜드인 에뛰드와 이니스프리의 브랜드 매장을 별도로 세우기 시작했다. 2013년 에뛰드하우스의 매장은600, 이니스프리는 767개까지 늘었다. 매출액도 2013년 에뛰드는 매출액 3372억 원, 이니스프리는 매출액 3328억 원을 기록했다. 경쟁업체인 미샤(에이블씨엔씨)와 더페이스샵의 같은 해 매출액은 각각 4424억 원, 5230억 원이다. 아모레퍼시픽이 국내 중저가 시장에서는 매우 늦게 후발주자로 뛰어들었으나 특유의 마케팅 전략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브랜드 포트폴리오 구축 성공요인 및 시사점

명확한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다른 상품과 독특한 차별점을 만들어 소비자와 감성적 교감을 형성한 브랜드는 아우라를 형성한다. 브랜드 아우라는 30년 이상 자체 역사를 보유하고 문화적 차이를 뛰어넘는 보편성과 소비자들과 교감하는 진정성을 가진 글로벌 브랜드에서 나타난다. 특정 브랜드만이 지닌 브랜드 헤리티지는 소비자에게 다양한 이야기로 전달돼 더욱 강력한 아우라를 발산한다. 아모레퍼시픽은 국내 기업 가운데 프리미엄 소비재 시장에서 글로벌 아우라를 확보한 드문 사례로 꼽힌다.

 

브랜드 아우라를 발생시키는 데는 최소한 한 세대, 

 30년이라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아모레퍼시픽은 1945년 창업해서 

70년 이상 줄기차게 한 영역에 몰입한 

한국 화장품 산업의 살아 있는 역사다. 

 

‘아우라 브랜드를 갖추려면 다음의 3가지를 확보해야 한다.

첫째, 기다림의 시간이다. 브랜드 아우라를 발생시키는 데는 최소한 한 세대,  30년이라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아모레퍼시픽은 1945년 창업해서 70년 이상 줄기차게 한 영역에 몰입한 한국 화장품 산업의 살아 있는 역사다. 1978년 뉴욕 현지법인 개설, 1990년 프랑스 공장 인수, 1993년 중국 공장 준공 등 줄기차게 국제화를 추진하다가 2010년 이후 한류바람으로 중국 화장품 시장에서 급성장했다. 아우라는 흔히 시장에서 독특한 포지션을 확보하면서 운을 받아들이는 긍정적 태도(serendipitous attitude)를 가지고 인내하며 기다려야만 발생한다.

 

둘째, 보편성이다. 아우라 브랜드는 한 지역 또는 특정 국가를 뛰어넘는 글로벌 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야 나타난다. 여기에서 글로벌 한 특성은 문화적 차이를 극복해서 전 세계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보편성을 확보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유럽과 아시아, 미주 대륙 등 글로벌 경제의 3대 중심지 중 최소한2곳 이상에서 인지도와 선호도, 일정 수준 이상의 고객 충성도를 확보해야 한다. 특정 지역이나 국가에서만 사랑받고 판매되는 브랜드, 즉 해외에서는 판매하지 않고 특정 국가에서만 1위를 기록하는 로컬 브랜드의 경우 아우라 브랜드라고 부를 수 없다. 아모레퍼시픽은 1997년 프랑스 현지에서 롤리타 렘피카 향수를 출시해서 유럽 시장에서 일정 수준의 성공을 경험했다. 현지 시장에서 글로벌 인력을 보유했으며 그 결과 중국 시장에서 세계 초일류 브랜드들과 어깨를 견주며 성과를 만들었기 때문에 보편성을 확보했다.


셋째, 브랜드 진정성(authenticity)이다. 해당 산업의 역사책에 기록될 만한 수준의 독창성(originality)을 가지고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장인 정신(craftsman-ship)을 보여줘야 한다. 소비자 측면에서는 마니아(mania)문화가 만들어진 브랜드가 아우라 브랜드다. 이 같은 브랜드 진정성이 시간이 흐르고 보편성을 확대해 갈 때 아우라가 발생할 확률이 더욱 높다. 아모레퍼시픽은 창업주가 개성상인의 후손이며 1945년 대한민국 해방 당시 설립됐다는 측면에서 역사적 진정성을 확보했다. 진정성 높은 국내 대표 기업이다. 특히 한방 브랜드 설화수는 진정성이 뛰어나고 충성도가 높은 열광고객을 다수 확보하고 있다. 진정성이 가장 높은 브랜드 라인으로 평가할 수 있다.

 

아우라 브랜드에는 꿈과 스토리가 녹아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브랜드 포트폴리오는 다양한 가격대에 걸쳐 탄탄한 브랜드스토리를 구축하고 있다. 설화수에는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 스토리, 이니스프리에는 한국 최고의 청정 장소 이미지를 보유한 제주 스토리가 녹아 있다. 이 같은 스토리는 해당 브랜드의 독특한 분위기와 매력을 형성해 브랜드 아우라를 더욱 강화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진정성이 있는 스토리텔링은 아우라를 발생시키며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의견을 같이하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호응이 점점 커진다. 이 같은 스토리텔링이 만드는 아우라의 원칙을 사자성어로 찾아보면 같은 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반응한다는 뜻의 동성상응(同聲相應)’으로 요약할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브랜드 아우라 유효기간은 언제까지일까? 기업의 명성(Corporate Reputation)이 하루 아침에 손상되는 것처럼 브랜드 아우라도 호스피탈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지속적으로 현재 소비자와 차세대 소비자,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만족시키려는 노력이 없다면 그 생명력은 점점 약해질 것이다. 결국 설화수, 라네즈, 마몽드, 이니스프리 등 아우라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는 아모레퍼시픽의 미래는 당장 약 3억 명으로 추산되는 1970∼1980년대 출생한 중국인 여성에게 어떻게 지속적으로 아우라를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ygs9964@sm.ac.kr

서용구 교수는 서울대에서 경영학 학사와 석사를 받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한국인 최초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산업연구원(KIET) 수석연구원 등을 거쳐 현재 한국유통학회장을 맡고 있다. 주로 브랜드와 유통산업을 연구한다. <보이지 않는 성장엔진: 디자인, 브랜드, 명성> <브랜드 스타를 만드는 상상엔진: 이데아> <브랜드 마케팅> 등의 저서를 남겼다.


출처: http://www.dongabiz.com/CaseStudy/Article/Article_Sub/article_content.php?atno=1901015401&chap_no=1&sdkey=22812180998&src=email&kw=&access_from=183&click_date=44389530&p=2#TOP

Posted by insight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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