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야후, 네이버 사례를 통해 본 사내갈등과 기업가치의 상관관계
휘황찬란한 대기업 사옥을 보며 가끔 규모와 화려함에 놀랍니다. 나름 최고의 인재들이 모였다는 그 곳, 그 중에서도 높으신 분들, ‘핵심 인재’들은 어떻게 일을 하나 궁금하기도 합니다. 얼핏 생각하기에 이사회와 경영진은 언제나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하며, 하나의 비전을 공유하고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살펴보면 일반 회사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높은 연봉을 받는 만큼 하루하루 실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 살고 있으며, 이해관계에 부딪히는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머리를 굴려야 합니다. 심지어 초등학교에서나 벌어질 만한 왕따나 매도가 이뤄지기도 하는 것은, 그들도 어쩔수 없이 살아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생각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한 가지 흥미로운 주제를 던질까 합니다. “사내 파워게임과 기업가치, 어떤 관계를 갖고 있을까?” 언론보도 등 공개된 자료를 통해 내홍이 심했던 회사의 사례 세 개를 들고, 이를 주가 변화와 비교하는 식으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1. 애플
IT업계에서 진행된 사내 파워게임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일화는 스티브잡스가 ‘스스로’ 창업한 애플에서 쫓겨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1980년, 스티브잡스는 인생 최고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애플2의 엄청난 인기 속에 개인용 컴퓨터시장의 신기원을 열었고, 회사를 상장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경쟁사들이 견제에 나섰고, 스티브잡스의 괴팍한 성미로 인해 주변인들에게 밉보이면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그 일환으로 리사, 매킨토시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맘에 들지 않는 조직원들에게는 수치심과 모멸감을 줬으며, 항상 최고가 돼야 한다는 압박감과 지나친 나르시즘(자기애)에 빠졌습니다. 심지어 ‘경쟁이 최선’이라며 프로젝트팀 간의 갈등을 유도하기도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과 이사회는 점점 그에게 불만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IBM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제휴를 맺고 이른바 ‘애플 잡기’에 나섰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제품인 애플3와 매킨토시가 저조한 판매실적을 보였고, 경영진 간의 갈등은 표면화됐습니다. 결국 스티브잡스는 초기투자자 마이크 마쿨라와 본인이 직접 영입했던 전문경영인 존 스컬리에 의해 방출되고 맙니다.
이후 마이클 스핀들러, 길버트 아멜리오가 차례로 CEO를 맡고, 고급 PC시장을 공략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운영했지만 사정은 썩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마이크로스프트의 윈도우즈95가 나오면서 더욱 강한 잠식효과와 함께 주가하락이 심화됐습니다. 결국 스티브잡스가 복귀하고 강력한 구조조정과 유통 효율화가 추진하면서야 비로소 상황이 호전됩니다. 그리고 1998년 아이맥의 출시 이후, 약 15년가량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의 시대를 바꾼 제품들을 연이어 내놓으면서 ‘잡스의 제국’을 건설하며 주가가 치솟게 됩니다. 비록 잡스가 2년 전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끊임없이 위기설이 나돌기도 했으나 아직까지는 그의 제국이 완전히 무너질 기미는 없어 보입니다. (2013년 9월 현재 주가 약 $467)
2. 야후
야후에게 2005~2006년은 꽤 복잡한 시기였습니다. 당시 야후의 CEO는 ‘테리 시멜’이었습니다. 그는 워너 브라더스를 세계적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키운 주역으로서 탁월한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2001년 야후에 합류했습니다. 그의 사업전략은 야후를 기술기업이 아닌 미디어기업으로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성과가 나온 덕분에 주가는 재임기간 3~4배 수준으로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경쟁사인 구글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기술개발을 홀대한 점이 패착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당시 전문가들은 테리 시멜이 미디어기업 출신으로서 잘 하는 것에 집중하려 했고, 마이크로소프트가 기술기업 넷스케이프를 압살시킨 것에 놀라 우회전략을 모색했다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IT기업에게 기술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야후는 점점 속에서 썩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뚜렷한 성장동력이 없는 대신 광고수입이 안정적으로 나오자 무사안일주의가 팽배해지고, 벤처기업 특유의 모험심이 사라졌습니다. 유능하고 야망 있는 직원들은 회사를 떠났고, 주가는 지속적으로 떨어졌습니다. 결국 테리 시멜은 수천억대의 스탁옵션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아쉬운 게 없다는 듯이 퇴진했습니다.
이 때 구원투수로 온 사람이 창업자 제리양이었습니다. 그는 전임자가 저지른 과오를 수정하고 명확한 비전을 제시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제리양은 스티브잡스가 아니었습니다. 상황은 호전되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이 지분매입과 동시에 경영간섭을 선언했습니다. 칼 아이칸은 자기 사람들을 이사회에 심으려 했고, 회사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인수되길 희망했습니다. 제리양은 이사회 참여는 허락하되 인수 건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끊임없는 이사진의 내부 대립 끝에, 결국 제리양이 1년 조금 넘은 재임기간 끝에 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야후는 끊임없이 외부투자자에게 휘둘렸습니다. 후임으로 캐롤 바츠 오토데스크 이사회 의장이 낙점됐지만 “무능하다”는 이유로 주요 주주이자 헤지펀드인 ‘서드포인트’에 의해 전화로 해고당하는 굴욕을 겪었습니다. 그 다음 바톤을 넘겨받은 페이팔 출신의 스콧 톰슨 또한 ‘학력위조’를 이유로 퇴출됐습니다. 회계학과 컴퓨터공학을 복수 전공했다고 하는데 알고 보니 회계학만 전공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는 구실일 뿐이고, 서드포인트와 이사회 구성원 선임을 두고 충돌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회사는 주가와 함께 수렁 속으로 빠졌습니다.
하지만 2012년 마리사 메이어가 여성CEO로 부임하면서, 점차 주가는 회복세를 보이게 됩니다. 바닥을 치솟던 주가는 $30달러 선까지 빠르게 회복되었습니다. 유망 기업들을 과감히 인수해 나가면서 몸집 불리기에 나서고 있는 야후가 마리사 메이어 체제 밑에서 얼마나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3. NHN(현 네이버)
네이버에게 2004년은 잊을 수 없는 해입니다. 지식인의 인기에 힘입어 야후와 다음을 제치고 1위 검색업체로 도약, 장기간 독주체제의 초석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주가는 고공행진을 거듭했고, 마침내 2007년 시가총액 10조원을 돌파하는 데 이르렀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네이버가 만든 벤처신화에 경외감을 표시했습니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조용히 파워게임이 진행됐습니다.
예전 포스팅인 ‘이해진은 어떻게 NHN을 지배하는가?’를 통해 설명했듯이 NHN은 지배구조가 꽤 복잡합니다. 당시에는 크게 두 개의 축이 경영권을 나눠 갖고 있었습니다. 이해진 CSO(최고전략책임자), 이준호 CTO(최고기술책임자, 이후 최고운영책임자로 직책변경)가 주축이 된 ‘네이버파’와 김범수 대표, 천양현 NHN재팬 대표, 남궁훈 NHN USA 대표가 주축이 된 ‘한게임파’입니다.
두 집단은 회사가 성장할수록 사업방향과 비전을 두고 ‘서로 다르다’는 입장만 계속 확인하게 됩니다. 그러다 2005년 김범수 대표가 지분매각을 시작했고, 2007년 회사를 떠납니다. 이어 천양훈, 남궁훈 대표도 사임했습니다. 심지어 네이버 출신이지만 한게임 창업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졌던 김정호 한게임 대표도 지쳤다는 이유로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당시 업계에서는 사내 파워게임이 진행됐으며 지분과 매출규모가 작은 한게임파가 밀렸다는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2008년과 2009년 사이 NHN의 주가를 보면 폭락하는 모습입니다. 10조원를 넘었던 기세는 온데 찾아볼 수 없고 6~7조원 수준까지 쪼그라들었습니다. 그 시기는 웹보드게임 등 규제리스크가 극에 달했고, 딱히 신성장동력이 없다는 시장의 평가가 나왔을 때입니다. 하지만 해당 리스크 요인은 주가를 회복한 2010~2011년에도 존재했으며, 당시 뚜렷한 사업방향이 부재했다는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2010년 이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언론에는 많이 등장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만 내부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모아보면 이번에는 ‘네이버파’ 내부에서 갈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에 따르면 이해진 CSO는 명실상부 1인자로 거듭났고, 김상헌 NHN 대표, 황인준 CFO(최고재무책임자), 최휘영 NBP 대표의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2대 주주인 이준호 COO 또한 자기 나름대로의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또 한번의 충돌이 일어났고, 사내 조직원과 외부투자자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이해진 CSO가 큰 어려움 없이 이겼습니다. 2011~2012년 사이 임원진에서는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는데 이해진 라인의 부상과 이준호 라인의 퇴출로 정리가 됐다는 전언입니다. 당시 보합세에 있던 주가는 내홍이 끝나고 라인이 이끄는 메신저 사업이 해외에서 돌풍을 일으키면서 다시 한번 성장국면에 돌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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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사례들은 크게 세 가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사내 파워게임은 위기와 함께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회사가 성장하고 경기가 좋을 때는 조용하지만 정작 먹을 게 사라지면 경영진은 책임론에 휩싸이고 조직원들은 비전을 찾지 못해 이직을 고민합니다. 실제 애플은 신상품이 부진하면서, 야후는 경쟁사 구글의 약진이 두드러지게 이뤄지면서, 네이버는 신성장동력을 찾지 못하면서 분쟁이 시작됐습니다.
두 번째로 창업자 지분이 턱없이 낮다는 점은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덩치 큰 외부투자자가 들어오면 얼마든지 경영권 간섭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홍 당시 스티브잡스, 제리양, 이해진 모두 10% 미만의 지분율을 갖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특히 야후의 경우 줄곧 헤지펀드에 의해 이사회가 장악되곤 했는데 경영자로서는 운신의 폭에 많은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경영자에게 정치력은 매우 중요한 자질이라는 점을 알려줍니다. 스티브잡스는 철부지 시절 실패사례를 거울 삼아 주주들을 능숙하게 다루며 강력한 리더십을 구축했습니다. 이해진 또한 창업자로서 갖고 있는 상징성과 사내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해 정적들을 효과적으로 제거했습니다. 물론 이들의 진정한 힘은 ‘실적’이었습니다. 직원에게는 냉정하게, 경쟁사에게는 가혹하게 사업을 운영했고 숫자로 성과를 보여줬습니다. 주주들로서는 대안이 없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인간은 정치적인 동물이라고 하지만 도를 넘는 사내정치는 회사를 망가뜨리고 잠재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는 인적자원의 중요성이 매우 높은 IT기업에게는 더욱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본문에서는 사내 파워게임과 기업가치를 연결시켰지만 수긍하지 못할 부분도 충분히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왜냐면 기업가치는 워낙 많은 다양한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내부분열 때문에 주가가 떨어졌다고 말하는 것은 꽤 정교하지 못하다는 의견 또한 있을 수 있습니다만 둘 사이 어느 정도 타당성은 존재하다고 보여지며, 여기서 조금이나마 인사이트를 얻어가셨으면 좋겠군요.
출처: http://undertheradar.co.kr/2013/09/13/46-애플-야후-네이버-사례를-통해-본-사내갈등과-기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