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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이 지난 2일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불쑥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안'을 끼워넣으며 촉발된 논쟁은 국민연금 제도가 자녀와 손주 세대까지 이어지기 위해서 현 세대가 마주쳐야 할 '불편한 진실'을 한꺼번에 일깨워줬다. 수십 년 뒤 후손이 '국민연금 보험료 폭탄'을 맞지 않기 위해 한번쯤 논의가 필요했던 보험료율 인상 이슈가 공론화된 것이다. 다만 지난 일주일 동안 소득대체율 인상 파동이 벌어진 과정에서 나타난 정부와 야당,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의 '아전인수 해석'은 실제 국민연금 제도의 수혜자인 2100만 국민연금 가입자들을 일대 혼란에 빠뜨렸다. 같은 재정 추계치를 놓고 현행 9%인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10.01%까지만 올려도 가능하다고 해석한 쪽(야당)과 현행 보험료율의 2배를 웃도는 18.85%까지 인상이 필요하다는 쪽(정부)이 자기 주장만 고집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야당의 의도가 어찌됐든 이제 국민연금은 세 번째 개혁의 소용돌이 속으로 흘러가는 모습이다. 국민연금과 최근에 벌어진 이슈를 해부해본다.
◆ 노후소득 보장 위한 최후의 보루
국민들의 노후 대비 수단 최우선 순위로 꼽히는 국민연금은 1973년 국민복지연금법이 제정돼 1974년 1월 제도가 시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1973년 말 제1차 석유 파동으로 경제 불황이 닥치면서 무기한 연기됐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1988년 노태우정부 시절에야 도입됐다.
도입 당시 10인 이상 사업장에 근무하는 18~59세 근로자·사업주를 대상으로 소득대체율이 70%로 설계돼 제도가 시행됐다. 부담하는 연금액에 비해 수령액이 후했던 셈이다.
이후 가입 대상이 점점 확대돼 현재는 공무원·사립학교 교원·군인 등 특수직역연금 가입자를 제외한 18세 이상 전 국민 약 3300만명으로 가입 대상 범위가 넓어졌다. 혼자서 준비하기 어려운 노후를 국민들이 공동으로 대비할 목적에서 시행하는 제도인 만큼 국민연금은 '당연 가입제'를 선택했기 때문에 이민이나 사망 같은 이유가 없다면 중도해지를 할 수도 없다.
국민연금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세대 내·세대 간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국민연금 급여는 연금 수급 직전 3년간 전체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평균소득(소득재분배 부분·A값)과 가입자 본인의 국민연금 가입기간 중 평균소득(소득비례 부분·B값)에 각각 5대5 비중을 적용해서 계산한다.
이에 따라 저소득층일수록 본인 기여분보다 많은 연금액을 받을 수 있으며(세대 내 재분배) 현세대 보험료 부담이 후세대에 비해 적게(세대 간 재분배)된다. 소득재분배는 전 세계 모든 공적연금의 핵심 기능에 해당한다.
특히 국민연금은 일반인들 사이에 '내가 낸 보험료보다 훨씬 많은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상품'으로 알려져 있다. 낸 보험료 대비 받는 연금액을 나타내는 수익비는 1.3배가 넘는다. 저소득층은 4~5배가 넘기도 한다. 오래 산다고 전제한다면 국민연금만큼 효율적인 노후 대비 수단이 없는 것이 사실인 셈이다.
예를 들어 월 평균 소득이 200만원인 자영업자 김씨가 지난해 국민연금에 가입해 보험료인 월 소득 9%(18만원)를 2033년까지 20년 동안 납부했다면 그가 국민연금에 낸 보험료는 총 4320만원이 된다. 그러나 김씨가 65세(연금수급)부터 84세(사망)까지 20년 동안 국민연금을 받는다면 매월 42만3110원씩 총 1억154만원을 수급하게 된다. 낸 돈보다 받는 돈이 2배 이상 많은 것이다. 게다가 국민연금은 매년 지급되는 연금액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실질가치까지 보전해 주고 있다.
문제는 근로자 수가 줄고, 노인 인구는 급증하는 인구변화 추세에서 이런 제도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제도대로라면 2057년께 국민연금 가입자와 수급자가 각각 1400만명으로 비슷해지고, 이후부터 국민연금을 내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이 더 많아지게 된다. 근로자 1명이 노인 1~2명을 부양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는 말이다.
◆ '기금 고갈 막아라' 두차례 개혁
낸 돈에 비해 받는 돈이 많다 보니 '아버지의 노후를 위해 자식과 손주 세대의 허리가 휠 수 있다'는 문제는 국민연금 제도 개혁 논의에 늘 따라붙는 주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 보험료를 인상하거나, 연금 수령액을 줄이거나, 연금 수령 시점을 늦춰 재정 고갈 시점을 미룰 수밖에 없다.
보험료율은 국민연금 제도 시행 첫해인 1988년 3%에서 시작해 5년마다 3%포인트씩 올라 1998년 9%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후 보험료율은 17년째 제자리다. 국민들이 강제적으로 떼가는 국민연금 보험료를 높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높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탄생 10년 만에 단행된 1998년 1차 개혁 때는 명목소득대체율을 70%에서 60%로 낮췄으며, 60세였던 수급 연령을 2013년부터 5년마다 1세씩 늦추도록 했다. 이에 따라 올해 국민연금 수급연령은 61세이며 2033년에는 65세까지 높아지게 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을 기획재정부 장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바꾸고, 5년마다 실시하는 재정계산을 의무화하는 내용도 이때 담았다. 그 결과 2003년, 2008년, 2013년 세 차례에 걸쳐 국민연금 재정 계산 결과가 발표됐다.
2004년에는 '지금 보험료를 내도 내가 늙은 후에는 국민연금을 받지 못한다'는 괴담이 돌았다. 국민연금 폐지를 주장하는 촛불 시위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이후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논의가 다시 시작돼 2007년 두 번째 개혁에 성공했다.
2007년 개혁에서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장기적으로 40%까지 낮추기로 했다. 2008년 소득대체율을 60%에서 50%로 한꺼번에 떨어뜨리고 2009년부터 매년 0.5%포인트씩 낮춰 2028년 소득대체율을 40%에 맞춘다는 내용이다. 정부는 당시 이런 내용을 담은 국민연금법을 개정해 기금 소진 시기를 2047년에서 2060년으로 늦출 수 있었다.
◆ 3차 개혁으로 보험료 폭탄 방지
원래 국민연금법에 명시된 대로 2018년에 제4차 국민연금 재정추계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국내 연금 전문가들은 그때에 맞춰 10년 만에 3차 재정개혁을 해야 한다고 보고 있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도 지난 7일 "2018년 국민연금 4차 재정계산에서 논의가 이뤄진다면 자연스럽게 적정 보험료율에 대해 합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 주장대로 소득대체율을 높인다면 기금 고갈 시기를 앞당기든지, 보험료율을 높여야 한다.
야당에서는 "보험료율을 1.01%포인트만 높이면 2060년으로 추산되는 적립금 소진 시기를 앞당기지 않으면서 소득대체율을 10%포인트 인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은 쌓아둔 적립금에서 연금을 주는 현재의 '부분적립방식'이 2060년에는 해마다 가입자가 낸 돈 안에서 수급자가 받게 되는 '부과방식'으로 바뀌게 된다는 진실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2060년에 20~64세(1996~2040년 출생자)인 가입자들이 자신의 월 소득 중 25.3%를 보험료로 납부해야 하는 상황을 외면한 것이다.
한마디로 1996년생은 2060년까지 월 소득의 10분의 1만 보험료로 내다 갑자기 그 이후에 4분의 1을 보험료로 내야 하는 비극이 벌어질 수 있다. 이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 정재철 박사는 "보험료율 인상은 언젠가는 반드시 해야 할 시기의 문제며, 소득대체율 50% 달성은 경제성장을 통한 임금 상승, 출생률 회복을 통한 노동력 확보 등을 통해서 달성해야 할 일종의 목표 수치"라고 반박했다.
반대로 보건복지부는 자녀 세대뿐만 아니라 손자 세대까지 부담을 주지 않는 연금 재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이태한 보건복지부 인구정책실장은 "기금 소진 시기를 최대한 늦춰야만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저출산 고령화를 겪고 있는 한국 경제와 미래 세대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릴 경우 15.1%(2088년 기금 소진 가정)~18.85%(2100년 이후에도 기금 유지 가정)까지 보험료율을 올려야 한다는 추산치를 제시했다.
아이러니한 점은 야당과 정부 모두 같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주장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을 연구하는 모든 사람들은 2013년 3월 나온 제3차 국민연금 재정 추계 수치를 근거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서 1, 2차 개혁 당시 국민들은 보험료율을 그대로 둬 현 세대의 부담은 늘리지 않으면서 소득대체율은 낮춰 미래 세대 부담도 늘리지 않는 타협점을 택했다. 야당 주장대로라면 3차 개혁은 1, 2차 개혁의 흐름을 뒤집는 셈이다. 1996년생의 비극이 현실화될지는 앞으로 정치권의 논의에 달렸다.
[조시영 기자 / 박윤수 기자]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5&no=4420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