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 체인 ‘셰이크섁’ 14년만에 美증시 상장

거래 첫날 두배 폭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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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들에게 ‘쉑쉑버거’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뉴욕의 명물 햄버거로 떠오른 ‘셰이크섁(Shake Shack)’이 푸드트럭 성공신화를 새롭게 썼다. 

2001년 뉴욕 맨해튼 매디슨스퀘어공원과 월가 길거리에서 핫도그를 파는 핫도그 카트(수레)로 시작한 뉴욕의 햄버거체인 셰이크섁 주식이 상장 첫날인 지난달 30일 폭등해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이날 셰이크섁 주가는 장중 한때 사자세가 대거 몰리면서 공모가(21달러)의 2.5배인 52.50달러까지 치솟았다. 이후 차익매물 때문에 상승폭이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공모가 대비 119% 급등한 45.90달러에 장을 마쳤다. 이날 종가 기준으로 셰이크섁 시가총액은 16억3000만달러를 기록해 단숨에 1조7800억원짜리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세인트루이스에서 식당을 경영하다가 뉴욕 맨해튼에 셰이크섁을 설립한 대니 마이어 창업자 지분은 21%로 상장 후 보유 주식가치가 3억4150만달러로 확 늘어나게 됐다. 주가가 주당 매출의 몇 배 정도인지 보여주는 주가매출액비율(PSR) 기준으로 셰이크섁의 PSR는 이날 현재 14.6이다. 이는 성장잠재력이 큰 IT기업 페이스북(16.1)에 육박하는 수치이자 S&P500지수에 편입된 기업중 6번째로 높은 수치다.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에 속해 있는 햄버거를 파는 프랜차이즈업체인 셰이크섁 잠재성장성에 베팅하는 투자자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셰이크섁은 2012년 5700만달러, 2013년 82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 지난해 1~9월 매출은 8380만달러에 달해 이미 전년 수준을 넘어서는 강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상장 첫날 시장에서 성장성을 인정받은 셰이크섁의 모태는 원래 햄버거가 아니라 핫도그였다. 

셰이크섁은 맨해튼 길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핫도그 수레에서 출발했다. 핫도그를 팔아 어느 정도 목돈을 챙긴 마이어 창업자는 2004년 매디슨스퀘어공원에 햄버거를 파는 가게를 열었다. 

맞상대가 불가능한 맥도널드, 버거킹과 같은 햄버거 공룡 프랜차이즈와 맞서기 위해 선택한 전략은 바로 패스트푸드에 꼬리표처럼 붙는 저급한 이미지 탈피였다. 셰이크섁은 햄버거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고기패티 재료로 호르몬·항생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친환경 순살 쇠고기만 썼다. 또 동물복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축산업자에게서만 쇠고기를 납품받았다. 

당연히 단가는 올라갔다. 하지만 다소 가격이 높더라도 친환경과 웰빙을 선호하는 20·30대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셰이크섁의 마지막 단어를 반복해 발음한 ‘쉑쉑버거’에 대해 입소문이 나면서 잔뜩 호기심을 품은 고객들이 몰려들었고 매장 앞에 기다랗게 늘어선 줄은 셰이크섁을 상징하는 대표 이미지가 됐다. 

셰이크섁은 영국 런던, 러시아 모스크바, 터키 이스탄불,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등 전 세계 9개국에 27개, 미국 동부지역에 36개 등 총 63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마이어 창업자는 기업공개(IPO)를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매년 10개씩 매장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뉴욕 = 박봉권 특파원]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5&no=104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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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덕천역 등 2곳서 반납 가능
쏘카 “6월까지 20곳 제공 예정”

도심 차량정체와 대기오염을 줄이면서 싼값에 차량을 빌려 타는 ‘차량 공유 서비스’가 진화하고 있다.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인 쏘카는 21일 “서울에 이어 부산·인천·경기·제주에서 차량을 빌린 곳과 상관없이 도착지 가까운 주차장에 반납하면 되는 편도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쏘카는 2011년 제주를 시작으로 서울과 6대 광역시 등 지방 주요 도시에서 차량 공유 서비스를 하고 있다.

차량 공유 서비스는 차량구입비와 보험·기름값 등 차량관리비 부담을 덜면서 도심 차량 흐름과 대기오염을 개선하기 위해 1990년대 미국에서 시작돼 공유경제의 한 영역으로 자리를 잡았다.

인터넷을 통해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가 출근 또는 장기간 출장 등으로 놀려두고 있는 개인 차량을 필요한 사람한테 소개하고, 차량 주인한테 수수료와 보험료 등을 떼고 사용료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하루 기준 요금을 받는 렌터카 업체와 달리 사용시간 기준 요금을 받고, 업체를 방문하지 않아도 되는 등 대여 절차가 간단하다는 장점이 있다.

국내에도 3~4년 전부터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개인 차량을 돈을 받고 남에게 빌려주는 것이 허용되지 않고 보험상품도 개발되지 않고 있다. 이에 국내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들은 차량을 직접 구입해 영업을 하고 있다.

국내 차량 공유 서비스는 저렴한 요금과 편리성 등에 힘입어 젊은층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차량을 빌린 곳으로 되돌아가 반납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쏘카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9월 서울에서 처음으로 편도 서비스를 시작했다.

편도 서비스는 이용자가 한정돼 있다. 편도 서비스가 가능한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부산은 부산도시철도 2호선과 3호선이 만나는 덕천역과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 등 두곳만 편도 서비스가 가능하다. 또 편도 서비스를 이용하면 차량 회송비 명목으로 5000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 이용자는 택시요금에 견줘 얼마나 경제성이 있는지 비교해보고 편도 서비스를 이용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쏘카 관계자는 “부산은 6월까지 20여곳에 편도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편도 서비스는 택시요금이 많이 나오는 곳에서 출발하려는 이용자에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747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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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도 아끼고 말벗도 생기니 좋죠"


▲ 카풀을 통해 국내 여행을 할 수 있게 하는 소셜 여행 앱 '티카'를 개발한 맥거핀의 이남호(왼쪽), 박정은 대표. 김경현 기자view@

근에서 벗어나 모처럼 주말에 쉬게 된 손 대리(32·가명). 집에만 있기는 싫고 기분전환 겸 가볍게 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런데 혼자서 차를 몰고 가기는 심심하고 기름값도 부담이다. 그렇다고 관광버스 이용한 상품을 이용하자니 왠지 거부감이 든다. 
 
김 대리의 고민을 해결해 줄 서비스가 있다. 맥거핀에서 개발한 소셜 여행 앱 서비스 '티카'는 차량 소유자가 가고 싶은 곳과 인원수를 정해 카풀을 개설하면,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카풀을 신청해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해 준다.
 
지난해 2월 맥거핀을 창업한 박정은 대표(29)와 이남호 기술개발대표(34)가 제일 처음 발표한 것은 KTX 티켓 중고 장터 버전의 티카였다. 3년째 서울-부산을 오가며 장거리 연애를 하는 박 대표의 경험이 아이디어의 원천이 됐다. 

KTX 티켓 중고 사이트로 시작  
카풀 여행 '티카' 서비스로 전환  

서울·부산 등 지역 명소·명물 소개  
동승자 간 여행 경험 공유 장점 


"KTX 할인 카드 제도가 폐지되면서 장거리 연애에 교통비 부담이 커지게 됐어요. 중고나라 같은 데서 저렴한 KTX 표를 찾는데, 찾는 것도 불편하고 쪽지를 확인해서 구매하는 게 불편하더라고요. KTX 티켓 중고장터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박 대표의 예상은 적중했다. 티카는 안드로이드 마켓에서 1만 건이 넘는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하며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런데 추석을 앞두고 열차표 재판매 등을 점검하던 코레일 측이 문제의 소지가 있다며 서비스 중단을 요청해 갑작스럽게 서비스를 접게 됐다. 

그렇게 해서 8월, 맥거핀은 '트래블 앤 카풀(Travel & Carpool)'을 약자로 하는 지금의 티카를 시작했다. 2013년 문화관광부 국민여행 실태조사에 따르면 연간 국내 여행은 30대가 6.69회로 1위를 차지했으며 여행 수단으로는 자가용이 75.8%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여행 경비 또한 35.4%로 1위를 차지한 식·음료비에 이어 교통비가 24.4%로 2위를 차지했다. 즉, 30대는 두 달에 한 번 이상 꼴로 자가용을 이용해 국내 여행을 다니지만, 여행에서 식비와 함께 교통비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것.

티카는 이 점에 착안했다. 카풀을 통해 여행을 함께 떠나면서 운송 수단을 공유하고 경비를 아끼는 것이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블라블라카(Bla Bla Car)'가 이런 여행 카풀 서비스를 통해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투자를 통해 연평균 200% 성장하며 연 66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공공데이터를 이용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티카의 장점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제공한 공공데이터 정보를 활용해 서울, 부산 등의 지역 명소와 명물을 소개한 후 그 아래 카풀 개설하기 메뉴를 달았는데, 이는 지난해 6월 '공공데이터 활용 우수 사례 이달의 앱'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물론 모르는 사람과 여행을 떠나는 것이 염려스러운 면도 있다. 티카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운전면허증 진위 조회 서비스와 소셜인증제도, 전자지급결제 대행서비스를 도입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박 대표는" 카풀을 통해 차량을 공유한다는 점도 있지만, 다른 공유경제 분야와 달리,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경험을 공유하는 서비스라는 점이 티카의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이를 위해 앞으로는 여행이 아닌 시내 드라이브나 국내 서비스 '마이리얼트립'과 같이 지역 주민이 가이드하는 여행 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공유경제라는 분야가 언급은 많이 되고 있지만, 사람들에게는 아직 생소하므로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서비스를 우선 만들고 싶다"면서 "이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고 공유 경제의 문화를 활성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박진숙 기자 true@busan.com


출처: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5012100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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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프로젝트에 적극 참가해 우리도 올해 1등이 돼 봅시다.” 

LG유플러스 사내 게시판에는 그 어느 때보다 의욕에 넘친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LG유플러스가 통신업계 리더로 도약하기 위한 사내 프로젝트에 많은 인재가 몰리는 추세다. 

20일 LG유플러스에 따르면 올해 두 번째를 맞는 아이디어 서포터스 모집(30명)에 100여 명의 지원자가 신청했다. 3대1의 경쟁률을 보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서비스와 사업 경험이 있는 직원이라면 직급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참여의 문을 열어뒀기 때문이다. 서포터스는 1년 동안 임직원의 아이디어 평가, 우수 아이디어 발굴·채택, 아이디어 시각화 등 여러 가지 창의활동을 펼친다. 이들의 아이디어가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실제 서비스로 구현되며, 아이디어가 채택되면 일주일에서 한 달 정도 태스크포스 형식으로 관련 직원들이 해당 프로젝트에 집중하게 된다.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남들보다 먼저 체험해보는 사내 얼리어답터 모집(50명)에도 80명이 몰려들 정도로 인기다. 

사원이나 대리 등 젊은 직원들 위주일 것이란 편견을 깨고 30·40대 과장, 차장, 부장 등 전 구성원이 이 프로그램에 나서고 있다. 두 프로그램에 대한 최종 선발은 이달 중 이뤄진다.  

[이경진 기자]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5&no=64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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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at a Glance – 전략,마케팅 

  

아모레퍼시픽의 성공 요인

1) 미와 건강(Beauty & Health) 등 본업에만 집중했다. 

2) 명확한 아이덴티티를 바탕으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3) 중국 시장에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심었다.

4) 소비자의 트렌드 변화를 미리 읽어서 유통망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이정완(경희대 경제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은 1932년 서성환 창업주의 어머니 윤독정 여사가 개성에서 머릿기름을 만들어 팔면서 출발했다. 서성환 창업주는 1945 9월 서울 남대문시장 부근에 태평양화학공업사를 세웠고 처음으로 상표를 붙인 메로디크림(1948)과 식물성 원료를 사용한 ABC포마드(1951) 등을 팔았다. 경쟁 업체들과는 달리 메로디크림은 해방 후 일본인이 남기고 간 고급 원료를 사용했고 ABC포마드에는 당시 제품에는 드물게 향료를 섞어 제작했다. 제품명도 메로디(Melody)’ ‘ABC’ 등 부르기 쉬우면서도 당시에는 고급스럽게 느껴지는 영어 단어를 사용해서 소비자를 파고 들었다. 1954 8월에는 국내 화장품업체에서는 처음으로 자체 연구실을 만들었다. 1958 8월 국내 최초 월간 미용 정보지 <화장계>를 창간했고 1966년에는 세계 최초의 한방 화장품인 ‘ABC인삼크림을 출시했다. ‘최초의 행진은 경쟁이 치열한 업계에서 강력한 무기였다. 아모레퍼시픽은 초창기부터 꾸준한 자체 제품 개발로 대기업 계열의 화장품회사와 경쟁하면서 오랫동안 업계 1위의 자리를 굳건하게 유지하고 있다. 1997년 출시한 설화수 윤조에센스는 누적 판매액이 1조 원을 웃돌았다. 아리따움 모디네일과 아이오페 에어쿠션은1000만 개 이상 팔렸다.

 

특히 최근의 경영 성과가 두드러진다. 이 회사 주가는 2014 12월 초 250만 원을 웃돌기도 했다. 모기업인 아모레퍼시픽 시가총액만 13조 원을 넘는다. 아모레퍼시픽의 성공은 기본적으로 80년 이상 한 우물만 판 끈기와 노력 덕분이다. 하지만 파산의 위기에 처할 만큼 어려웠던 시기도 분명 존재했다. 실제 서경배 대표이사가 회사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던 1990년대 초반 사정은 매우 어려웠다. 197373%에 달했던 시장점유율은 1991 19%까지 떨어졌다. 과도한 외형 확대로 매일 만기가 돌아오는 부채를 상환하기에도 정신이 없었다. 더군다나 화장품 수입 개방으로 1980년대 후반부터는 해외 화장품과의 경쟁도 치열하게 벌여야 했다. 유통망 개방으로 국내 화장품 시장의 30% 가까이를 순식간에 해외 화장품업계에 내줬던 시기다. 하지만 아모레퍼시픽은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며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으며 순간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경기불황과 전반적인 화장품 업계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2014 1∼9월 매출액 28952억 원에 순이익 3411억 원을 기록했다. 2013년에는 매출액 31004억 원과 당기순이익 2674억 원을 기록했다. 아모레퍼시픽의 성장 전략을 DBR이 집중 분석했다.

 

 

본업에 바탕을 둔 외연 확대

1970∼1980년대 한국 산업계의 화두는 사업 다각화였다. 아모레퍼시픽도 문어발식 확장을 꾀했다. 1974년 부동산 관리회사인 장원산업을 세웠고, 1976년 아천개발과 서울악기를 인수했으며, 1977년 태평양금속을 설립했다. 1983년 충무기획을 인수해 동방기획으로 사명을 바꾸고 광고업에도 진출했다. 1983년에는 의약품사업부를 독립시켜 태평양제약을 출범시켰다. 1987년에는 프로야구구단 청보핀토스를 인수해서 태평양돌핀스를 창단했다. 금융업에도 진출했다. 1982년 동방증권을 인수했고 홍일상호신용금고, 동방경제연구소, 동방투자자문, 태평양생명보험을 잇달아 세웠다. 1990년대 초 아모레퍼시픽은 생활문화 소비재와 금융 및 서비스, 기술 및 산업 소재, 육영 및 문화 등 4개 사업군에 걸쳐 25개 계열사를 거느리는 중견 그룹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본업을 뺀 나머지 사업은 대부분 부진했다.

 

계열사들은 적자에 허덕일 때가 많았다. 본사와 계열사는 지급 보증 등으로 재무적으로 연결돼 있었다. 계열사의 어려움은 본사에 즉시 영향을 끼쳤다.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했다. 1991 12월 모기업보다 덩치가 더 크고 3년 이상 흑자를 내던 태평양증권을 팔았다. 당시 증권업은 규제산업이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여겨졌지만 아모레퍼시픽은 이처럼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이어서 1994년 태평양 프랑세아, 1995년 한국써보 등을 정리했다.

 

국내 화장품 업계는 1990년대 초반 큰 변화를 겪었다. 해외 화장품업체들이 본격적으로 국내 시장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후발업체들이 급격하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한국화장품 등 메이저 3사의 시장점유율은 1991 60.6%에서 1995년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아모레퍼시픽은 1995년 태평양돌핀스를 현대그룹에 넘겼고 증자를 해주는 방식으로 돈을 더 얹어서 태평양패션을 1997 1월 거평그룹에 넘기는 것으로 1차 구조조정을 마쳤다.

 

경영진은 흑자기업까지 내다 팔면서 본업에만 충실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현재 흑자를 내며 당분간 큰 문제가 없는 사업이라도 시장에서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결국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었다. 화장품 브랜드 설화수와 아이오페 레티놀 2500 등의 잇단 성공으로 1997년 외환위기를 버틴 아모레퍼시픽은 2차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1차 구조조정이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면 2차 구조조정은 핵심 역량을 강화하는 게 목적이다. 화장품의 사업영역을 다소 확장해서 미와 건강(Beauty & Health) 분야를 뺀 나머지 사업은 모두 정리했다. 한국태양잉크(1998), 동방상호신용금고(1999), 태평양생명(1999), 동방커뮤니케이션즈(2000), 태평양정보기술(2000), 바이오랜드(2004), 태평양금속(2004) 등을 잇달아 정리했다. 태평양정보기술은 구조조정 당시 IT 버블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였다. 바이오랜드는 화장품 관련 원료 기업으로 원료 공급업체이기 때문에 잔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경영진은 원료산업에 강점이 있는 다른 기업과 파트너십을 통해 원료를 조달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2차 구조조정 결과 아모레퍼시픽의 계열사는 아모스, 에뛰드, 빠팡 에스쁘아(향수) 등 화장품 계열 회사와 태평양제약, 퍼시픽글라스, 장원산업(녹차) 등 비화장품 계열 건강 관련 회사 등 6개 기업으로 정리됐다. 모두 미와 건강(Beauty & Health) 분야에 속했다.

 

 

지속적인 브랜드 정체성 확립

1990년대부터 국내 화장품 시장은 공급 과잉 상태였다.  2000년대 들어 IT 혁명이 본격화하면서 시장 상황도 급변했다. 경쟁 강도가 높아지면서 아모레퍼시픽은 강력한 브랜드 자산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글로벌 화장품 업체인 로레알과 에스티로더는 다양한 국가의 화장품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인수하면서 몸집을 키웠다. 관리하는 브랜드만 수백 개에 달했다. 로레알은 2000 Kiehl’s, 2006 The Body Shop, 2012 Urban Decay 등을 인수했다. 에스티로더도 1994 M·A·C, 1995 Bobbi Brown, 1997 Aveda, 2010 Smashbox 등을 넘겨 받았다. 다만 두 기업은 사업구조가 다르다. 로레알은 저가에서 고가까지 모든 제품을 구비하고 있다. 반면 에스티로더는 고가 제품 위주다. 아모레퍼시픽은 시장점유율을 고려할 때 모든 가격대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브랜드 전략을 세우기로 했다.

 

 

아모레퍼시픽은 과거에도 파워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마음만 앞섰을 뿐 브랜드 수명은 1년 반에서 3년 정도에 그쳤다. 무작정 브랜드를 양산한다고 해서 마케팅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브랜드의 고객층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게 아니라서 영역 충돌이 생기기도 했다. 불필요한 경쟁 등 낭비적인 요소도 많았다. 브랜드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먼저 각 브랜드마다 아이덴티티를 명확하게 설정해야 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모든 브랜드를 콘셉트와 고객층, 가격 등에 따라 분류하고 서열을 매겼다. 1999년 외부 마케팅 업체에 의뢰한 결과 기업 브랜드인 태평양과 아모레, 개별 제품 브랜드 등이 뒤섞여서 소비자에게 브랜드 이미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었다. 제품 브랜드인 아이오페와 헤라에는 기업 브랜드가 부정적인 영향까지 끼쳤다. 모 브랜드인 아모레는 기업 브랜드에 가려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콘셉트가 불분명하고, 상호 잠식현상이 발생하며, 매출이 미미한 브랜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또 아모레는 더 이상 제품 브랜드로는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모든 브랜드를 콘셉트와 연령대, 가격대 등으로 분류하고 브랜드 전략 지도를 만들었다. 일부 브랜드는 리뉴얼 작업을 통해 고객층을 바꿨다. 마몽드는 1991 11월 방문판매를 하지 않고 유통점으로만 판매하는 최초의 브랜드로 출시됐다. ‘산소 같은 여자를 광고문구로 내세워 20대 여성을 겨냥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994년 국내 화장품 브랜드 최초로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1994년 고객층이 겹치는 라네즈가 출시되자 매출이 크게 줄었다. 아이덴티티를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두 브랜드 모두 타격을 입을 게 분명했다. 1998년 마몽드는 핵심 고객층을 30대로 높였다. 그 결과 마몽드와 라네즈의 잠식현상이 사라졌고 모두 아모레퍼시픽의 대표 브랜드로 성장했다. 아모레퍼시픽은 2002년 브랜드 전략 지도를 바탕으로 설화수, 헤라, 아모레퍼시픽, 리리코스, 아이오페, 마몽드, 라네즈, 이니스프리, 에뛰드, 미쟝센 등 10개 브랜드만 남기고 나머지는 없애거나 10개 브랜드의 서브라인에 두도록 했다.


물론 이런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뒤에도 위기는 항상 찾아왔다. 마몽드는 2010∼2012, 한율은2011∼2013년 매출이 감소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어떤 브랜드가 될 것인가라는 아이덴티티 차원에서 해법을 모색했다. 마몽드는 2012년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을 내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브랜드 콘셉트와 스토리가 약했고 히트상품도 딱히 없었다. ‘이라는 브랜드 모티브가 소비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브랜드 컬러를 꽃을 연상하기 좋은 노란색으로 바꾸고 매장의 외관과 출입구, 포장 등에 꽃을 배치하거나 적용했다. 2013년 마몽드는 전년 대비 매출액이 13% 성장했다. 한방화장품 한율은 이모 화장품이나 엄마 화장품의 이미지가 강했다. 광고 모델도 40대였으며 용기 디자인은 다소 진부했으며 로고는 궁서체였다.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전래민방(korean medicine), 늙지 않는(ageless), 글로벌(global)로 바꿨다. 20∼30대를 겨냥한 프리미엄 한방 화장품으로 포지셔닝을 하고 젊은 모델을 기용했다. 2014년 한율의 매출이 성장세로 전환됐다. 아모레퍼시픽 경영진은 2014 1월 설화수와 라네즈, 마몽드, 이니스프리, 에뛰드 등 5개 브랜드를 2020년까지 중점적으로 육성할 글로벌 챔피언 브랜드로 선정했다. 5개 브랜드를 중심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한다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이 밖에도 헤라, 아이오페, 려 등 20여 개의 기타 다양한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브랜드끼리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있다.

 

 

프리미엄 마켓부터 공략

아모레퍼시픽은 1964 8월 화장품 20여 종을 에티오피아에 처음 수출했다. 1970년대에는 일본, 홍콩,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 진출했다. 당시에는 수입상을 통한 간접 수출이 대부분이었다.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1986년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등에 현지 지사를 세웠다. 1990년에는 프랑스 샤르트르시 소재 공장을 매입하기도 했다. 해외 시장 진출에 적극적이었으나 1980년대까지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리지는 못했다. 국산 화장품이 선진국에서 인기를 얻기가 쉽지 않았고 아시아 시장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았다. 1994 2월 중국 선양에 태평양보암화장품유한공사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진출했으나 브랜드 인지도가 낮았고 화장품 수요가 예상처럼 커지지 않았다. 1997년 현지 수입 판매상과 독점 계약을 체결하고 판매를 강화했으나 실적은 호전되지 않았다. 판매상이 단기 실적에만 매달려 오히려 브랜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우려해야 할 정도였다.

 

아모레퍼시픽은 발빠른 구조조정으로 1997년 금융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오히려 위기 속에서 성장세를 이어가면서 자신감까지 얻었다. 이후 새로운 도약이 필요했다. 경영진은 본격적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할 시기라고 봤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과 프랑스 등 선진시장은 부담스러웠다. 중국을 다시 바라봤다. 중국의 개방정책이 가속화하면서 100% 외국계 법인의 설립이 가능해졌다. 중국의 화장품 시장은 자본력과 브랜드 파워를 갖춘 로레알, 시세이도, P&G 등 글로벌 화장품 업체들이 공격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치며 2000년 이후 연평균 12.6%(2000∼2009)나 성장했다. 사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는 1980년대 초까지 자본주의의 상징이라고 여겨진 화장품이 엄격한 통제를 받았다. 12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현지 화장품업체인 상하이가화도 1984년 모든 라인을 구비한 브랜드를 겨우 출시했다. 하지만 화장품 산업에 대한 규제가 풀리고 소득이 크게 늘자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중국 시장은 P&G, 로레알, 메리케이, 시세이도 등 상위 10대 글로벌 브랜드 기업들이 중국 전체 시장의 약 55%를 차지하고 나머지 시장을 두고 수천 개의 군소 화장품 브랜드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다. 유통망은 백화점, 대형 슈퍼마켓, 방문판매가 전체 매출액의 70%를 차지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처음부터 고가 정책을 고수했다. 고가 브랜드란 지위를 가져야 이후 중저가 시장으로도 외연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기 때문이다. 중저가 브랜드로 인식된 상태에서 고가 화장품으로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고 봤다. 수익도 고가 화장품이 훨씬 컸다. 하지만 당시 컨설팅업체들은 이런 전략이 위험하다며 우려했다. 브랜드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백화점 중심의 고가 시장 진입 전략의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 봤다. 컨설팅사들은 메이저 화장품 업체들을 피해서 중저가 시장을 먼저 공략하는 게 순서라고 조언했다. 백화점에 매장을 내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울뿐더러 매장을 찾는 고객에게 일일이 브랜드를 설명하고 제품을 팔려면 시간이 꽤나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영진은 고가 시장 선진입 전략을 고집했다. 오래 걸려도 현지 시장에서 생명력을 이어가려면 프리미엄 이미지를 고수해야 한다고 봤다.

 

 

사실 경영진은 화장품의 품질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다. 화장품은 인종과 현지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인종별로 피부상태가 비슷하고 주로 사용하는 화장품도 비슷할 수밖에 없다. 지역별로 화장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아무래도 같은 문화권의 화장품 업체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실제 동양인들은 스킨 제품을 많이 구입한다. 실제 아시아 화장품 시장에서는 매출의 80%가 피부와 관련된 제품이다. 동양문화권은 전통적으로 피부가 좋은 사람을 미인으로 꼽아왔기 때문이다. 반면 서양인들은 향수를 많이 찾는다. 남미권에서는 손톱, 머리와 관련된 제품의 수요가 많다. 아모레퍼시픽은 국내 시장에서 이미 오랫동안 피부와 관련된 화장품을 숱하게 개발해왔다. 기후조건 등을 고려할 때 동양인의 피부특성에는 어떤 제품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이런 부분에서는 글로벌 화장품 업체보다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경영진은 고가 시장 선진입 전략을 고집했다. 

오래 걸려도 현지 시장에서 생명력을 이어가려면 

프리미엄 이미지를 고수해야 한다고 봤다.

 

아모레퍼시픽은 2000 11월 상하이 현지 법인을, 2002 7월 현지 공장을 세웠다. 당시 전략은 단기 매출 확대보다는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주력하면서 거점 도시의 주요 백화점에 매장을 개설해 라네즈를 고급 브랜드로 자리잡게 하는 것이었다. 2002년 라네즈와 고객층이 가장 유사하다고 분석되는 상하이 팍슨백화점에 1호점을 열었다. 하지만 매장은 판매에 유리한 1층이 아닌 2층에 개설되는 등 낯선 브랜드이기 때문에 푸대접을 받아야 했다. 판매도 매우 부진했다. 타개책은 광고가 아닌 판촉이었다. 품질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사용 기회를 늘린다면 승산이 있다고 봤다. 국내에서 프로모션을 담당하는 직원 5∼6명을 파견해서 하루 종일 프로모션을 열었다. 난타공연, 마술, 춤 등의 프로그램을 메이크업 시연과 함께 보여주자 고객들은 라네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입소문도 퍼졌다. 매장은 곧 1층으로 내려왔다. ‘Made in Korea’의 원산지 효과를 위해서 2004 10월부터 라네즈는 한국에서 생산된 제품을 팔았다. 라네즈는 이후 현지화 전략과 한류 등에 힘입어 2005년까지 33개 도시 83개 백화점에 입점했다. 하루 매출이 5000만 원을 넘는 매장도 등장했다. 2007년부터 흑자를 기록하며 안착했다.

 

중국 시장 진출은 한류 바람과 중국의 경제수준 향상과 맞물리면서 성공했다. 하지만 이런 외부 환경의 수혜가 중국 진출의 성과를 모두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LG생활건강 등 다른 국내 화장품 업체들도 중국에 진출했으나 아모레퍼시픽만큼의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좀 더디더라도 고급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고 2010년까지 2개 브랜드만 집중적으로 키웠다. 라네즈는 젊은 층이 선호하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고 마몽드는 라네즈보다는 다소 가격이 싸지만 대중적인 제품보다는 다소 비싼 제품으로 포지셔닝을 구축했다. 또 고급 백화점을 유통망으로 활용해서 절대적인 브랜드 파워를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라네즈는 중국 여성의 최대 관심사인 보습에 착안해 수분 콘셉트를 강화하면서 성과를 이어갔다. 국내 백화점에서 중국인들이 1순위로 구매하는 제품이 라네즈일 정도로 현지에서는 이미 파워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다. 아모레퍼시픽은 2011∼2013년 한방 브랜드인 설화수와 중저가 브랜드인 이니스프리’ 에뛰드를 현지에 출시하면서 중저가까지 모두 포괄하는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또 아직 해외 무대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잠재력을 갖춘 브랜드들도 많이 보유하고 있다. 아이오페와 헤라는 국내 시장에서 매출액이 3000억 원에 가까운 대형 브랜드다. 국내 면세점에서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중국 시장점유율은 아직 2∼3%에 불과하다. 하지만 2014 2분기 매출 성장률은 18.5%에 달한다. 2013년에만 중국에서 3387억 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소비자의 움직임을 미리 읽다

소비자가 선호하는 유통망은 시간과 지역에 따라 바뀐다. 아모레퍼시픽은 새로운 유통망을 선점해서 시장점유율을 높인 사례가 많다. 아모레퍼시픽은 창업 초기부터 소비자들이 어떤 유통망을 선호하는지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였다. 1964 9월 일본의 화장품업체인 폴라의 방문판매를 차용해서 이를 국내에 도입했다. 전국을 행정구역에 따라 잘게 쪼개 화장품 특약점을 설치했고 6·25 전쟁 이후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미망인을 판매원으로 고용했다. 1980년 특약점과 영업소만 664, 판매원은 16571명에 달했다. 1985년은 국내 전체 화장품 매출의 85% 이상이 방문판매를 통해 이뤄졌다. 하지만1977년 대구에 처음 등장한 화장품 할인 코너는 빠른 속도로 방문판매 시장을 잠식했다. 더군다나1984 3월 ㈜럭키( LG생활건강) 드봉 화장품을 출시하고 화장품 사업에 다시 진출하면서 방문판매가 아니라 화장품 할인 코너 등 시장판매에 전력을 투구했다. 당시 시장판매에는 따로 임자가 없었다. 방문판매는 하락세를 걸었고 시장판매는 크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들어 방문판매 매출은 꾸준히 감소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있는 유통망은 아니었다. 여전히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컸다.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가계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여성이 늘었다. 아모레퍼시픽은 하락세의 방문판매를 부활시키기 위해서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설화수, 헤라 등 백화점에서 팔리는 고급 브랜드를 방문판매가 가능하도록 했다. 덕분에 방문판매 매출이 크게 늘었다. 판매원 해외 연수제도 실시, 인센티브 및 운영방식 개선 등에 힘입어 1998년 방문판매에서만 매출 1000억 원을 올렸다. 방문판매는 이후에도 매년 7∼8%씩 성장세를 이어가며 전체 매출액에서 30∼40%를 차지할 정도로 유통에서 큰 몫을 담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2년부터 방문판매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2014년 말 현재 방문판매의 매출액 비중은 전체 매출액에서 18%에 불과하다. 이제는 방문판매를 인위적으로 성장시킬 수 없는 상황이 도래했다는 게 회사 측의 판단이다. 아모레퍼시픽은 방판의 부활을 기대하지는 않고 있다. 대신 현재 방문판매 유통망을 고령화 추세와 맞물려서 시니어 층을 위한 유통망으로 특화할 계획이다. 전통적인 유통망을 새로운 용도로 최대한 활용하자는 취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2년 이후 진행된 방문판매의 부진은 전체 수익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아모레퍼시픽은 면세점과 온라인, 홈쇼핑 등 떠오르는 다른 유통망에 집중하면서 유통망 교체의 과도기를 슬기롭게 대처하고 있다. 최근 면세점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2014년 아모레퍼시픽의 면세점 매출은 6644억 원으로 추산된다. 한국을 찾는 중국 관광객이 크게 늘면서 면세점 매출액이 크게 증가했다. 해외에 진출하지 않은 아이오페 등도 이미 중국인들에겐 선호 브랜드다. 내국인 출국자 증가와 면세 한도 상향 조정, 외국인의 인터넷 면세점 구매 등도 매출 성장을 견인했다. 국내 면세점 매출은 앞으로 6년간 연평균 12% 정도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국내 면세점은 점포 확장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아모레퍼시픽이 주목하는 것은 해외 면세점이다. 2014년 전체 면세점 매출액에서 해외 면세점이 차지하는 비중은 5∼6%에 불과하다. 하지만 해외 면세점은 향후 고성장을 거듭해서 2020년 전체 면세점 매출액의39%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모레퍼시픽은 2013년 해외 면세점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해서2013년에만 100곳의 거점을 확보했다. 최근에는 싱가포르 창이공항과 중국 하이난섬 면세점 등 아시아 최대 규모의 면세점에 입점했다. 2014년 말 현재 120곳의 해외 면세 거점을 보유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미샤, 더페이스샵 등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가 단일 브랜드 매장의 형태로 진출하면서 국내 화장품시장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동네 종합 화장품 매장의 매출액은 감소했다. 동네 화장품 매장을 많이 활용했던 아모레퍼시픽은 위기감을 느꼈다. 당시 중저가 브랜드의 성장세는 대단했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2004년 아모레퍼시픽은 동네 화장품 매장 가운데 좋은 성과를 내고 있던 곳을 하나의 브랜드로 묶어 휴플레이스를 출범했다. 중저가 브랜드가 위세를 떨치면서 당시 상당수 동네 화장품 매장은 생존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들 매장에 인테리어 시설 및 판매사원을 보내 지원하면서 화장품 유통체인인 휴플레이스를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위기를 겪고 있던 많은 화장품 매장들은 아모레퍼시픽의 제안을 수용했다. 과거 동네 화장품 매장은 아모레퍼시픽 제품을 25% 정도만 팔았다. 하지만 휴플레이스로 이름을 바꾸고 나서는 아모레퍼시픽 제품을60% 정도 판매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이어 2008년 휴플레이스를 자체 브랜드 제품만 100% 판매하는 프랜차이즈 체인인아리따움(ARITAUM)’으로 개편했다. 이런 전략은 적중했다. 아리따움은 이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2005년 아리따움과는 별도로 매출액 200∼300억 원대에 불과하던 중저가 브랜드인 에뛰드와 이니스프리의 브랜드 매장을 별도로 세우기 시작했다. 2013년 에뛰드하우스의 매장은600, 이니스프리는 767개까지 늘었다. 매출액도 2013년 에뛰드는 매출액 3372억 원, 이니스프리는 매출액 3328억 원을 기록했다. 경쟁업체인 미샤(에이블씨엔씨)와 더페이스샵의 같은 해 매출액은 각각 4424억 원, 5230억 원이다. 아모레퍼시픽이 국내 중저가 시장에서는 매우 늦게 후발주자로 뛰어들었으나 특유의 마케팅 전략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브랜드 포트폴리오 구축 성공요인 및 시사점

명확한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다른 상품과 독특한 차별점을 만들어 소비자와 감성적 교감을 형성한 브랜드는 아우라를 형성한다. 브랜드 아우라는 30년 이상 자체 역사를 보유하고 문화적 차이를 뛰어넘는 보편성과 소비자들과 교감하는 진정성을 가진 글로벌 브랜드에서 나타난다. 특정 브랜드만이 지닌 브랜드 헤리티지는 소비자에게 다양한 이야기로 전달돼 더욱 강력한 아우라를 발산한다. 아모레퍼시픽은 국내 기업 가운데 프리미엄 소비재 시장에서 글로벌 아우라를 확보한 드문 사례로 꼽힌다.

 

브랜드 아우라를 발생시키는 데는 최소한 한 세대, 

 30년이라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아모레퍼시픽은 1945년 창업해서 

70년 이상 줄기차게 한 영역에 몰입한 

한국 화장품 산업의 살아 있는 역사다. 

 

‘아우라 브랜드를 갖추려면 다음의 3가지를 확보해야 한다.

첫째, 기다림의 시간이다. 브랜드 아우라를 발생시키는 데는 최소한 한 세대,  30년이라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아모레퍼시픽은 1945년 창업해서 70년 이상 줄기차게 한 영역에 몰입한 한국 화장품 산업의 살아 있는 역사다. 1978년 뉴욕 현지법인 개설, 1990년 프랑스 공장 인수, 1993년 중국 공장 준공 등 줄기차게 국제화를 추진하다가 2010년 이후 한류바람으로 중국 화장품 시장에서 급성장했다. 아우라는 흔히 시장에서 독특한 포지션을 확보하면서 운을 받아들이는 긍정적 태도(serendipitous attitude)를 가지고 인내하며 기다려야만 발생한다.

 

둘째, 보편성이다. 아우라 브랜드는 한 지역 또는 특정 국가를 뛰어넘는 글로벌 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야 나타난다. 여기에서 글로벌 한 특성은 문화적 차이를 극복해서 전 세계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보편성을 확보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유럽과 아시아, 미주 대륙 등 글로벌 경제의 3대 중심지 중 최소한2곳 이상에서 인지도와 선호도, 일정 수준 이상의 고객 충성도를 확보해야 한다. 특정 지역이나 국가에서만 사랑받고 판매되는 브랜드, 즉 해외에서는 판매하지 않고 특정 국가에서만 1위를 기록하는 로컬 브랜드의 경우 아우라 브랜드라고 부를 수 없다. 아모레퍼시픽은 1997년 프랑스 현지에서 롤리타 렘피카 향수를 출시해서 유럽 시장에서 일정 수준의 성공을 경험했다. 현지 시장에서 글로벌 인력을 보유했으며 그 결과 중국 시장에서 세계 초일류 브랜드들과 어깨를 견주며 성과를 만들었기 때문에 보편성을 확보했다.


셋째, 브랜드 진정성(authenticity)이다. 해당 산업의 역사책에 기록될 만한 수준의 독창성(originality)을 가지고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장인 정신(craftsman-ship)을 보여줘야 한다. 소비자 측면에서는 마니아(mania)문화가 만들어진 브랜드가 아우라 브랜드다. 이 같은 브랜드 진정성이 시간이 흐르고 보편성을 확대해 갈 때 아우라가 발생할 확률이 더욱 높다. 아모레퍼시픽은 창업주가 개성상인의 후손이며 1945년 대한민국 해방 당시 설립됐다는 측면에서 역사적 진정성을 확보했다. 진정성 높은 국내 대표 기업이다. 특히 한방 브랜드 설화수는 진정성이 뛰어나고 충성도가 높은 열광고객을 다수 확보하고 있다. 진정성이 가장 높은 브랜드 라인으로 평가할 수 있다.

 

아우라 브랜드에는 꿈과 스토리가 녹아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브랜드 포트폴리오는 다양한 가격대에 걸쳐 탄탄한 브랜드스토리를 구축하고 있다. 설화수에는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 스토리, 이니스프리에는 한국 최고의 청정 장소 이미지를 보유한 제주 스토리가 녹아 있다. 이 같은 스토리는 해당 브랜드의 독특한 분위기와 매력을 형성해 브랜드 아우라를 더욱 강화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진정성이 있는 스토리텔링은 아우라를 발생시키며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의견을 같이하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호응이 점점 커진다. 이 같은 스토리텔링이 만드는 아우라의 원칙을 사자성어로 찾아보면 같은 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반응한다는 뜻의 동성상응(同聲相應)’으로 요약할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브랜드 아우라 유효기간은 언제까지일까? 기업의 명성(Corporate Reputation)이 하루 아침에 손상되는 것처럼 브랜드 아우라도 호스피탈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지속적으로 현재 소비자와 차세대 소비자,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만족시키려는 노력이 없다면 그 생명력은 점점 약해질 것이다. 결국 설화수, 라네즈, 마몽드, 이니스프리 등 아우라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는 아모레퍼시픽의 미래는 당장 약 3억 명으로 추산되는 1970∼1980년대 출생한 중국인 여성에게 어떻게 지속적으로 아우라를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ygs9964@sm.ac.kr

서용구 교수는 서울대에서 경영학 학사와 석사를 받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한국인 최초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산업연구원(KIET) 수석연구원 등을 거쳐 현재 한국유통학회장을 맡고 있다. 주로 브랜드와 유통산업을 연구한다. <보이지 않는 성장엔진: 디자인, 브랜드, 명성> <브랜드 스타를 만드는 상상엔진: 이데아> <브랜드 마케팅> 등의 저서를 남겼다.


출처: http://www.dongabiz.com/CaseStudy/Article/Article_Sub/article_content.php?atno=1901015401&chap_no=1&sdkey=22812180998&src=email&kw=&access_from=183&click_date=44389530&p=2#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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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틸(기업인), 블레이크 매스터스   이지연   한국경제신문사  2014.11.20

제로 투 원


1. "독점 기업을 만들어라! 0이 아닌 1인 기업을 만드는 것이고, 이를 위해 생각을 시작하라."

     - 경쟁기업: 생존을 위해 싸우고

     - 독점기업: 경쟁 불필요


2. 독점기업

     - 경쟁이 불필요하여, 직원과 제품에 정성

     - 더 큰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에 관심

     - 장기 플랜을 세울 수 있음

     - 구글의 "사악해지지 말자"도 독점기업이기 때문에 가능

     - 거짓말로 독점력을 유지 (예: 존재하지도 않는 경쟁자의 힘을 과정해서 얘기)

        vs. 비독점 기업은 반대 거짓말...시장을 좁게 묘사 (예: 우리가 이쪽 꽉 잡고 있어요)


3. 창조적 독점

     -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고

     - 그 제품을 만든 사람은 지속가능한 이윤을 얻는 것


4. 독점기업은 다음을 가지고 있음

     1) 독자 기술: 중요 부분에서 남보다 10배 뛰어남 

          * 완전히 새로운 것을 고안, 기존 해법의 근본적 개선, 우월한 통합 디자인으로 가능

     2) 네트워크 효과

     3) 규모의 경제

     4) 브랜드 전략


5. 독점기업 전략

     1) 작게 시작해서 & 독점화

     2) 몸집 키우기 (아마존 확장)

     3) 파괴하지 말라 (역공 가능)

     +

     4) 마피아를 만들어라! (공통점, 1인1책임, 컬트)


6. 독점 아이템을 위한 질문

     - "정말 중요한 진실인데, 남들이 당신에게 동의해주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 창의경영의 Orthodoxy와 맥을 같이 함

     - 세상에 아직 파헤칠 숨겨진 비밀이 많이 남아 있다.

     - 불가능하다면 미스테리가 됨


7. 독점 아이템을 찾지 않는 이유

     - 더 이상 물리적으로 개척할 곳이 없음

     - 사회적 트렌드

        1) 점진주의: 학자들도 신영역 개척보다 중요치 않은 논문을 많이 양산함

        2) 위험회피: 틀릴까봐...인생에서 실수하지 않는 것이 목표인 사람들

        3) 무사안일주의: 사회의 엘리트들은 이미 해 놓은 토대 위에서 편안함 추구

        4) 평평화(flatness): 세계는 동질 & 하나의 시장으로 경쟁


8. 회사를 바라보는 시각

     - 소유권: 소유(창업자, 직원, 투자자) 

     - 점유권: 운영(경영자, 직원)

     - 통제권: 통제(이사회)


9. 도산하지 않으려면 다음 질문에 답해 보라

     1) 기술: 점진적 기술이 아닌 획기적 기술이 있는가?

     2) 시기: 사업 시작에 적기인가?

     3) 독점: 작은 시장에서 큰 점유율 확보가 가능한가?

     4) 사람: 제대로 된 팀이 있는가?

     5) 유통: 유통채널이 있는가?

     6) 존속성: 시장에서 현재 위치를 10~20년 방어할 수 있는가?

     7) 숨겨진 비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독특한 기회를 포착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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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돌이나 지났을까요. 아기가 아장아장 앞서 걸어갑니다. 뒤뚱뒤뚱 그 모습이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위태위태합니다. 행여 넘어지지는 않을까. 엄마는 두 팔을 뻗어 아이의 허리를 잡아줍니다. 상체를 잔뜩 웅크리고 아이의 뒤를 졸졸 따라가는 엄마의 모습, 상상이 되나요. 엄마는 아이가 처음으로 두 발로 제 몸을 지탱하던 그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조금은 윤색될지언정, 잊지는 않았을 겝니다. 엄마 아빠의 기억은 아이의 소중한 순간을 담기 위한 그릇을 따로 만들어 뒀을 테니까요.

유한킴벌리의 기저귀브랜드 ‘하기스’에서 카메라를 만들었습니다. 이름은 ‘모멘트캠’입니다. 일반 사용자에게 판매하기 위해 개발한 카메라는 아닙니다. 마케팅에 활용하기 위해 몇 벌만 따로 만들었을 뿐이지요. 그래도 유한킴벌리는 지난 10월 말께 모멘트캠의 기술특허까지 획득했답니다. 엄마의 가슴에 하나, 아이의 배냇저고리에 또 하나. 엄마와 아기가 하나씩 나눠 갖는 모멘트캠은 둘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자동으로 영상을 기록하도록 고안된 특수 카메랍니다. 아이를 보는 엄마의 눈빛과 엄마가 보는 아이의 표정을 동시에 담을 수 있도록 말이지요. 펄프 회사, 기저귀 회사 혹은 육아용품 회사인줄로만 알았던 유한킴벌리. 무슨 사연이 있길래 카메라를 만들고 특허까지 따냈을까요. 유한킴벌리의 얘기를 들어보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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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킴벌리 디지털마케팅팀 장미나 사원, 정진향 팀장, 류민경 차장(왼쪽부터)

“엄마들이 자주 찾는 대형 인터넷 카페가 많아요. 그곳에서 엄마들이 서로 주고받는 내용을 빅데이터로 분석해보니 육아와 행복이 일상 속에서는 잘 어울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엄마가 육아를 하며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 중 90%는 부정적인 것이더라고요.”

유한킴벌리의 모멘트캠 프로젝트는 빅데이터 분석 기술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엄마들이 자주 찾는 대형 인터넷 카페를 선정해 3년치 게시물을 끌어모으는 과정이 출발점이었죠. 유한킴벌리가 엄마들의 속마음을 엿본 셈입니다.

약 500만건의 게시물에서 유한킴벌리가 형태소 분석으로 뽑아낸 키워드는 무엇이었을까요. 퍽 무거운 단어들이 많았습니다. 책임감이 불러오는 압박, 육아에 대한 두려움 등. 아이와 하루를 보내는 엄마의 일상은 뜻밖에 부정적인 감정으로 뒤덮여 있었지요. 아이를 키우는 일, 보통 일은 아니니까요. 일상에서 엄마들이 겪는 어려움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정진향 유한킴벌리 디지털마케팅팀 팀장은 “아이가 예쁜 짓을 하는 모습을 캡처해 엄마가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을 찾아보자는 아이디어에서 모멘트캠을 만들게 됐다”라고 부연했습니다.

모멘트캠의 작동 원리는 간단합니다. 모멘트캠은 두 개가 한 세트로 구성돼 있습니다. 하나는 엄마가 갖고, 다른 하나는 아이에게 채웁니다. 두 카메라에 똑같이 렌즈가 달려 있는데, 카메라와 카메라 사이가 가까워지면 자동으로 녹화를 시작합니다. 엄마와 아이 사이의 거리가 3m 이내로 가까워지면 녹화가 시작됩니다.

카메라끼리 거리를 재기 위해 무선 주파수(RF) 기술도 쓰였습니다. RF 센서가 상대방 카메라를 인식해 자동으로 녹화합니다. 녹화가 시작되는 순간을 동기화하는 것, 화면을 2개로 나누고 하나로 편집해 보여주는 것 모두 모멘트캠의 몫입니다. 유한킴벌리가 특허를 출원한 부분도 이겁니다. 모멘트캠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특허로 정리하는 데는 류민경 차장의 역할이 컸습니다. 유한킴벌리에서 디지털마케팅팀에 합류하기 전 변리사로 활동한 경험을 살린 겁니다.

류민경 차장은 “사실 우리 기저귀나 ‘크리넥스’ 등 우리 제품에도 기술이 들어갈 수 있는 부분이 많다”라며 “제품의 가치를 높일 연구개발을 지속하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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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멘트캠’ 프로젝트 영상 보러가기(링크)

모멘트캠 프로젝트를 직접 경험한 엄마들은 생각보다 더 많은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노상 육아의 고충만 털어놓기 바빴던 엄마들이 사실은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아이의 저고리와 엄마의 셔츠에 달린 모멘트캠은 엄마의 활짝 웃는 표정과 아이의 앙증맞은 모습을 동시에 찍었습니다. 엄마들은 바로 그 순간을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죠.

“실제로 촬영을 할 때는 영상을 만들 것이라고 알리지 않았어요. 그냥 써보시라고만 했거든요. 나중에 모멘트캠이 찍은 영상을 보여드리니, 엄마들 대부분이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본인들이 행복했던 순간을 영상으로 보고 감동을 받으신거죠. ‘아, 내가 아이와 있을 때 저렇게 행복해했구나’, ‘내가 마냥 힘들어했던 것만은 아니었어’ 하고요.”

모멘트캠 프로젝트에 참여한 엄마들을 현장에서 직접 만난 장미나 사원은 “가족이 잊고 있던 행복을 발견하게 된 것이 뿌듯했다”라며 소감을 밝혔습니다.

육아를 막 시작한 엄마는 스마트폰 카메라나 디지털 카메라로 아이의 사진을 담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프로필 사진도 아기 사진으로 바꾸지요. 결혼 전에는 ‘셀카’를 올리던 이들의 SNS는 온통 아기 사진으로 바뀝니다. 아이의 예쁜 행동은 기록으로 남기되, 정작 그 아이를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에는 다소 소홀했던 것은 아닐는지요. 두 개가 한 세트인 모멘트캠이 기록하는 것은 어쩌면 잠시 잊고 있던 엄마의 행복한 모습입니다.

“마케터 입장에선 제품 이상의 가치를 전달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래서 선택한 도구가 기술이 됐던 거죠. 새롭거나 어려운 기술은 아니지만, 일상의 경험을 살려 결합하면 무엇이든 가능할 것이라고 봤어요. 웨어러블이나 사물인터넷(IoT) 등이 대표적이죠. 기술과 기술을 엮는 것이 열쇠였던 것 같아요.”

정진향 팀장은 “기술이라고 하면 유한킴벌리의 강점이 아닐 수 있지만, 사용자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술과 함께 고민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웨어러블과 IoT가 별건가요. 디지털 카메라와 RF 같은 흔한 기술이 한데 섞여 모멘트캠이라는 따뜻한 아이디어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기술이 사람에게 다가간 만큼, 감동으로 바뀌어 돌아온 것입니다.

유한킴벌리의 모멘트캠 프로젝트는 유튜브에서, 페이스북에서 소소한 감동을 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써보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제품으로 양산해 판매해 보는 것은 어떻겠냐는 제의도 많이 받았다지요. 유한킴벌리 쪽에서는 아직 그런 계획은 없다고 하네요. 아쉽지만, 먼저 체험한 이들이 올린 영상을 보며 자신과 아이의 일상을 돌아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지난 10월29일부터 시작된 모멘트캠 프로젝트는 오는 1월 말까지 진행된다고 합니다. 그때까지는 좀 더 많은 체험단 엄마들의 감동적인 영상이 추가로 만들어질 예정입니다.


출처: http://www.bloter.net/archives/216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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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7일  |  By:   |  IT, 경영, 경제  |  No Comment

토요일 새벽 4시 모두가 잠들어있는 보스턴 외곽 지역에서 제니퍼 구이드리 씨는 아침 일찍 일어나 차를 청소합니다. 35세의 구이드리 씨는 스마트폰을 매개로 한 택시 앱 서비스인 우버(Uber), 리프트(Lyft), 사이드카(Sidecar)와 심부름 서비스인 태스크 래빗(Tash rabbit)에서 잡다한 일을 해서 생활비를 벌고 있습니다. 구이드리 씨의 목표는 시간당 평균 25달러를 버는 겁니다. “얼마를 벌 지 예측이 안 되고 하루하루 천지 차이예요.”

최근 뜨고 있는 공유경제(Sharing Economy) 체제에서, 구이드리 씨는 작은 사업가입니다. 무슨 일을 할지, 어떤 능력을 개발할지, 수입에 따라 스스로 결정하죠. 공유경제에서는 교통수단, 잘 곳, 세탁물 날라주기, 장보기, 음식 배달, 요리, 옷장 정리까지 누군가에게 부탁할 수 있습니다. (관련 뉴스 페퍼민트 기사: 테크 업계의 ‘공유의 경제’) “매일 출근하는 사람이 가는 길에 누군가를 한 명 더 태우고 간다면 운전하는 사람은 공짜로 돈을 벌고, 탑승자도 훨씬 싼 값에 필요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죠.” 사이드카 창업자의 말입니다.

그러나 실업률이 높은 요즘 경기에서 구이드리 씨는 ‘작은 사업가(micro-entrepreneurs)’라기보다 ‘작은 노동자(micro-earners)’에 가깝습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주일 내내 쉴새없이 일하죠. 이들 플랫폼을 사용하는 노동자들은 일정하지 않은 수입의 위험성을 상쇄하기 위해 여러 서비스 플랫폼을 넘나들며 다양한 일을 합니다.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게 최고의 보호막이죠.” 프리랜서 조합(Freelancer Union)의 사라 호로비츠 씨의 말입니다. “(물가에 비해) 임금이 좀처럼 오르지 않고, 소득 불평등이 심해지면서 살아남기 위해 이런저런 일을 닥치는대로 하는 겁니다.”

구이드리 씨는 새벽에 일하면 공항에 가는 비즈니스맨들이 대부분이라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고 수요도 안정적이라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일찍 일을 시작합니다. 새벽 4시 반 집을 떠나기 전에 구이드리 씨는 노트북을 열어 태스크 래빗에 들어온 할만 한 심부름이 있나 확인합니다. 그리고 크레이그리스트도 보죠. 그곳을 통해 요리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거든요. 오늘 아침은 우버 요청이 제일 먼저 울렸습니다. 그러나 바로 출발하기 전에 1~2분 정도 기다렸습니다. “출발했는데 손님이 취소하는 것만큼 김빠지는 일이 없거든요.” 오늘은 공항 운전 서비스로 28달러를 벌었습니다. 공항에 한번 더 갔다와서, 구이드리 씨는 아이들 아침이 먹을 아침 식사를 차리기 시작합니다.

공유경제, 피어 경제(the peer economy), 협동의 경제(the collaborative economy), 임시직 경제(the gig economy)라는 신조어가 계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프리랜서 스스로 일을 고르고 일정을 조정하는 이 사회는 노동자 누구나 유연하게 일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합니다. 보스나 권위주의적인 조직에서 벗어나 나같은 사람들(peer)에게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피어 경제는 개인의 독립과 자유를 보장하는 혁명입니다.” “얻어 탄 누군가의 차에서 멋진 사람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재밌는 이야기죠.” 피어의 경제는 실제로 특권층의 전유물이던 운전수, 요리, 비서 서비스를 일반인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러나 노동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찾을 수 없어 이런 임시직에 몰린다고 설명합니다. ‘불안정하다.’(precario)와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를 합친 신조어 프레카리아트(Precariat) 라는 단어도 등장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수입이 넉넉한 지금은 좋죠.” “그러나 지금 어떤 사회가 다가오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겁니다.” 피어들이 거래하는 오픈 마켓에서는 보험이나 복지 혜택 등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노동력을 제공하게 됩니다. 심부름 서비스인 태스크 래빗에서는 가장 낮은 가격에 입찰하거나 실시간으로 응답하는 공급자에게 일이 떨어지죠.

유연한 업무시간이 독이 되어 돌아오기도 합니다. 레스토랑에 고용되어 있으면 일정한 시간에 출퇴근하면서 정해진 보수를 받게됩니다. 그러나 사고가 나거나 병이 나면 유급휴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우버, 리프트, 태스크 래빗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원칙적으로 누군가에게 고용된 것이 아닙니다. 기업들은 그들의 서비스는 이베이 같은 플랫폼이라고 설명하죠. 이곳에서는 복지 혜택, 보험, 연금, 세금, 실직 보험 등에 내는 비용을 절감했습니다.

서비스가 커지면서 대두하는 문제에 태스크 래빗은 최근 3만명 서비스 사용자에게 15달러 최저임금제를 도입했습니다. 일하다 생기는 사고에 대해 보험을 적용하기로 했죠. “프리랜서들이 일하는 경제에 조금씩 맞춰가고 있는 거죠.”

그러나 이들 플랫폼 회사들이 정책을 바꾸면 프리랜서들은 무력합니다. 이를테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30% 서비스 할인을 제공하고 있는 리프트는 운전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이벤트 기간 동안 운전자의 20% 수수료를 면제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운전자를 중시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거든요.” 그러나 바로 그 날, 리프트는 주 50시간 이상 운전하는 사람에게는 완전히 수수료를 면제해주고 그보다 적게 일하는 사람은 5% 수수료를 내는 걸로 정책을 바꾸었습니다. “회사입장에서 가격 정책을 맘대로 정하고, 운전수의 운전 권한을 빼앗을 자격도 있어요.” 리프트의 운전수는 인터뷰에 응하면서 이름을 밝히기를 꺼렸습니다. “아무도 제 뒤를 봐주지 않을 겁니다.”

아이들 아침을 차려준 구이드리씨는 태스크 래빗을 통해 집안 인테리어를 바꾸는 걸 도와주러 갑니다. “아이를 낳고, 경력이 중단된 상태에서 아이들 봐주는 사람이 있을 때만 일할 수 있는데 그렇게 일정을 조절할 수 있는 직업을 찾는 게 어려웠죠. “ 태스크 래빗은 구이드리 씨가 일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태스크 래빗이 더 빠르게 양쪽의 요구를 연결시켜주기 위해 해당분야 전문가를 추천해주고 30분 이내에 응답을 권장하면서 구이드리 씨에게 들어오는 일의 종류와 보수도 달라졌습니다. 비슷한 이들이 서로 도와주는 품앗이 같은 개념인 피어 경제가 아니라 점점 전문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죠. (관련 뉴스페퍼민트 기사: AirBnB 를 통해 집을 빌려주는 이들, 정말 ‘일반인’ 일까? )

구이드리 씨는 일을 마치고 내일 요리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장을 봐서 집에 돌아옵니다. 그리고 몇 번 더 택시 서비스를 한 후에, 저렴하게 장을 볼 쿠폰들을 정리합니다. 그리고 밤에 클럽에 가는 사람들을 위해 다시 택시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기술은 온라인 오픈마켓을 가능하게 만들고 묵혀진 노동력과 재화를 활용할 기회를 창출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 형태는 장기적인 고용과 보상시스템을 무너뜨릴 겁니다. 피어 경제에서 임시계약직은 사회적 안전망 없이 일하게 됩니다. 최근 태스크 래빗은 이 플랫폼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건강 보험 할인과 회계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리프트는 프리랜서 조합과 함께 운전수들에게 건강보험과 복지 혜택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자유가 좋아요.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죠. 정규직으로 고용되어 있다면 절대 못할 거예요.” “오늘은 돈을 많이 벌었어요.” “하지만 계속 이렇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오늘 구이드리 씨가 한 말입니다. (New York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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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ewspeppermint.com/2014/08/26/sharing-economy-la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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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버의 성공 비결은 경제 불평등
2014년 12월 22일  |  By:   |  경영, 경제  |  1 comment

제 고향은 인도의 뭄바이입니다. 뭄바이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관광명소보다도,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갈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가장 놀랍니다. 전화밖에 없었을 때에도 한 시간 내로 음식, 장보기, 술, 담배, 처방전이 필요한 약, 책, 뉴스, 달걀 한판, 아니 달걀 한 알까지도 주문할 수 있었지요. 콜라 한 병을 실제 가격에 산 적도 있습니다. 서비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제 빨래를 가져가 깔끔하게 다려오는 사람이 있었죠.

이러한 호화 서비스는 최근에야 나타난 게 아닙니다. 우버가 나타난 2009년, 첫 아이폰이 나타난 2007년, 아니 인터넷 케이블이 처음 등장한 1997년 이전에도 뭄바이에는 이런 서비스가 있었습니다. 전화가 처음 등장한 이후 확산되었고 그전에도 비슷한 서비스는 있었지요.

온디맨드(주문형) 경제에서 중요한 건 새로운 기술의 등장이 아닙니다. 기꺼이 일할 가난한 사람들이지요.

지금 지구 반대편에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도 비슷한 서비스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시작은 온디맨드 택시 서비스 우버였지요. 작년 60개 도시에 진출한 우버는 올해 200개 도시로 확장할 정도로 성장세가 엄청납니다. 테크 블로그 Re/code 에서는 “즉시 만족 경제”(the new instant gratification economy) 라 이름 붙이고 비슷한 기업들을 분석하였지요. 우버의 성공 이후로 매일 같이 창업가들이 눈을 반짝이며 찾아와 ‘XX를 위한 우버’ 사업 아이디어를 내놓습니다. “메시지 전달을 위한 우버” “술 배달 우버” “빨래와 드라이클리닝 우버” 식이죠.

이 현상을 흔히 신기술로 설명하지요. GPS 칩과 인터넷 접속이 휴대폰에 들어오면서 모든 산업에서 신기술을 활용해 더 큰 시장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고요.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가장 중요한 요소, 불평등을 빠뜨리고 있습니다.

온디맨드 서비스 경제가 돌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아이폰이 아닙니다. 첫째, 확장 가능한 소비자 니즈, 즉 음식, 빨래, 택시 같은 시장이지요. 충분히 확장 가능한 시장을 공략하지 않으면 부자들을 위한 심부름 서비스일 뿐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소비자가 낼 만한 가격에 중간사업자에게 수수료를 지급한 후 나오는 임금 수준에 만족하며 일할 노동력이지요.

우버는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 창업되었습니다. 브루킹스 연구소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는 2007년에서 2012년 미국 전역에서 가장 크게 불평등 격차가 벌어진 도시입니다. 2012년 샌프란시스코의 불평등 지수는 뭄바이의 불평등 지수보다도 높습니다.

뭄바이는 물론 훨씬 가난한 도시이지요. 인구 절반이 상하수도나 주택의 혜택을 받지 못할 정도로 생활의 수준이 다릅니다. 그러나 가난 말고도 이곳의 온디맨드 경제와 샌프란시스코의 온디맨드 경제에는 다른 점이 또 하나 있습니다. 뭄바이에서 제게 럼 한 병을 배달하는 사람은 술 가게를 드나들면서 이곳의 생리를 익혀 언젠가 본인의 가게를 열겠다는 꿈이 있습니다. 충분히 자금을 모을 수 있다면 언젠가 가게를 열고 다른 배달부들을 고용할 겁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의 배달부들은 이들을 어딘가로 보내는 앱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울 기회가 없습니다. 우버 운전수가 경영진에게 제안할 안건이 있으면 우버 본사로 가는 게 아니라 “운전수 센터”로 갑니다.

편함을 추구하는 서비스가 나타나는 것이나 노동력이 일자리가 있는 곳으로 모여드는 현상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젊은 프로그래머가 “즉시 만족” 경제를 창조하고 있다는 데는 어폐가 있지요. 소비자와 판매자를 이어주는 중간사업자라는 아주 오래된 모델일 뿐이지요. 신기술은 이를 쉽게 만들고,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절박한 실업자들이 아무 일이나 하게 만들었습니다. (Quar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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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ewspeppermint.com/2014/12/21/uber-inequ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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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 핼리버턴, 35조원에 3위 베이커휴스 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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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하락으로 수익성이 급격하게 악화되고 있는 에너지 업체들이 생존을 위한 덩치 키우기에 본격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구조조정 압박이 거세지면서 이미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한 에너지 산업 새판 짜기가 시작된 상태다. 

엑손모빌과 같은 원유개발 업체들에 채굴장비 등을 공급하는 원유장비·서비스업체 핼리버턴은 346억달러에 경쟁업체 베이커휴스를 인수한다고 17일 전격 발표했다. 

원유장비 업체 간 M&A로는 사상 최대다. 핼리버턴과 베이커휴스는 세계 2·3위 원유장비·서비스업체로 합병기업 시가총액은 이날 현재 699억달러(핼리버턴 417억달러, 베이커휴스 282억달러)에 달한다. 이번 합병을 통해 시가총액 1230억달러로 세계 1위 원유장비·서비스 업체인 슐럼버거와 맞상대할 수 있을 만큼 덩치를 키우게 됐다. 데이브 레서 핼리버턴 최고경영자(CEO)는 “베이커휴스 인수를 통해 연간 비용절감 시너지 효과가 2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기대했다. 

시장은 핼리버턴의 베이커휴스 인수가 저유가발 에너지 업체 M&A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셰일혁명에 따른 공급과잉 속에 최근 국제유가가 4년래 최저치로 급락해 에너지 업체들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주가는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큰 에너지업체가 헐값에 경쟁 업체를 인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나고 있다. 핼리버턴이 인수를 밀어붙인 것도 베이커휴스 주가가 지난 1년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저유가로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는 피인수 대상 기업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인수 시도를 받아들이면서 M&A 시장이 활성화될 토대가 마련됐다. 헤지펀드 오펜하이머의 파델 게이트 애널리스트는 “저유가는 항상 원유산업 내 M&A를 초래했다”며 “적자생존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에너지 사업 확대를 노리고 있는 미국 거대기업 GE가 시가총액 309억달러 규모의 대형 에너지 장비업체 내셔널오일웰바르코(NOV)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블룸버그가 전했다. 

GE는 지난해 원유 채굴펌프 제조업체 루프킨인더스트리스를 사들인 바 있다. 원유개발·생산업체 중에서는 라레도 페트롤리엄(LPI)이 인수기업 물색에 나설 것으로 시장은 진단했다. 또 셰일 개발업체 파이어니어내추럴리소시스와 오아시스페트롤리엄도 주식값이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잠재적 매물로 나온 상태다. 

월스트리트저널 온라인 금융매체 마켓워치는 유가 하락으로 10여 개 에너지 장비업체가 잠재적 매물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뉴욕 = 박봉권 특파원]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4&no=1438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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